입암산성 넘어 청류암까지 녹두장군의 발자취를 더듬기 위한 2차 시도에 나섰다. 

입암산성에 들기 전 묵었던 곳은 입암산에서 그리 멀지 않은 대흥리 차치구의 집이었다 한다. 

대흥리에서 거의 직선으로 가 닿을 수 있고 막바로 산을 넘어 산성에 들 수 있는 곳은 임암산 턱 밑 마을 만화동이다. 

만화동을 출발하여 산성 북문을 넘는 직등길이 정읍 방면에서 입암산성에 드는 가장 가차운 길이 되겠다. 

그리고 입암산성에서 청류암으로 가는 길은 남창계곡을 거의 다 내려간 지점에서 몽계폭포 쪽 하곡동 골짝을 더듬어 올라 백암산 사자봉을 거쳐 청류 계곡으로 내려서는 것이 가장 빠르겠다.  

 

그 길을 가 보는디..

 

 

 

 

만화동 위 농로가 끝나는 지점이 곧 산으로 드는 입구가 된다. 

북문까지 1.5km,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주릉으로 오르는 된비알이 나타나고 그저 나 죽었소 하고 땀을 쏟다 보면 어느새 북문에 도달한다. 
입암산의 북사면은 거의 깎아지른 산세여서 그 자체로 거대한 성곽과 다를 바 없다.  

북문은  문이 있었다는 흔적조차 찾기 어렵다. 

 

 

 

 

북문을 넘어서자마자 산세가 완전히 달라진다. 

분문에서 남문에 이르는 지역은 평탄한 분지여서 예전부터 마을이 있고 군수창고, 무기고, 별장 숙소 등과 같은 이러저러한 건물들이 있었다 하나 지금은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 

입암산성에 처음 와봤던 90년대 초, 중반만 해도 허물어져가는 집이며 깨진 세간살이를 볼 수 있었다. 

성 안의 물을 가두었던 해자, 농토 등이 그대로 묵어 습지로 변했다. 

출발이 늦은지라 남문을 지나 은선골 삼거리를 경유하여 몽계폭포 방면 하곡동골 입구까지 발걸음을 재촉한다. 

청류암이 있는 백암산 방면으로 가는 하곡동골 골짝길은 산을 거의 다 내려와 무슨 기도원 건물 바로 위쪽에서 왼편으로 이어진다. 

 

 

 

 

입암산성에서 새재를 거쳐 상왕봉을 지나 청류암에 이르는 길이 있으나 그림에서 보듯 배 이상을 에돌아가는 길이다. 

녹두장군 일행이 그 길을 타고 가지는 않았을 것으로 판단된다. 

 

남창계곡을 벗어나 몽계폭포에 이르는 길은 다소 거칠고 가파르지만 몽계폭포를 지나고 나면 편안해진다. 

능선 사거리에 이르는 막바지 오르막을 제외하고는 꿈꾸듯 편안하게 걸을 수 있다. 

오전에는 맑았던 하늘이 시나브로 흐려지더니 빗방울이 한 방울씩 떨어지고 소소리바람이 일 때마다 낙엽이 그야말로 비처럼 쏟아진다.  

이른 봄 나무에 새싹이 돋아날 무렵이면 바닥에 이러저러한 야생화가 피고 들꿩이 따땃한 봄볕을 쬐며 한가하게 걸어 다닐만한 길이다. 

꽃피는 봄날 다시 와서 할랑할랑 걸어 다니다 양지바른 푹신한 낙엽 위에서 한숨 자고 나가야겠다.  

 

 

 

 

능선에 서니 바람이 것게 몰아친다.

 

 

능선 사거리에서 사자봉을 오르는 길은 불과 200여 미터를 전진하며 고도를 60미터가량 높여야 하는 매우 가파른 길이다. 

하지만 사자봉에 오르고 나면 툭 터진 조망에 그깟 고생쯤은 금방 잊게 된다. 

날이 흐려 아쉽긴 하지만 주변 산세를 가늠하며 충분히 쉰 후 다시 길을 나선다. 

옹달샘 삼거리까지 능선을 타다 도집봉과 가인봉 사이의 청류동 계곡길로 내려선 후 한동안 계곡길을 걷다 보면 청류암에 다다른다. 

 

 

사진 왼편 봉우리가 가인봉, 청류암은 그 왼쪽 자락에 있다. 

 

 

능선에서 내려와 도달한 계곡에 60여 년 전 산사람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전반적으로 편안한 계곡길을 걸어 내려와 청류암에 이르니 벌써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다. 

청류암은 예스런 분위기가 전혀 나지 않는다. 

새로 지은 으리으리한 건물 옆 관음전이 그나마 오래된 건물인 듯한데 이 또한 고색창연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도 그 시절 녹두장군의 방문을 영접했던 건물이 아닐까 싶다.

청류암을 바라보고 왼편 자그마한 계곡에 장군샘이 있다. 

쫄쫄쫄 흐르는 샘물이 양은 적지만 맛이 좋다. 산길을 오래 걸어온 사람이라면 가히 감탄할만하겠다. 

샘 옆 바위에 물 맛에 탄복한 녹두장군이 부지깽이로 휘갈겨 썼다고 전해지는 '남천감로'라는 한자가 음각되어 있다. 

사실 여부를 떠나 촌각을 다투는 위급한 상황에서 마신 한 모금 물이 얼마나 달게 느껴졌을까를 생각하며 물맛을 재삼 음미해본다.  

 

 

 

 

청류암을 뒤고 하고 내려오는 길, 산 아래 가인마을의 불빛이 따뜻하게 흔들린다. 

입암산성에서 청류암까지 녹두장군의 발자취를 따라나선 나의 발걸음은 가인마을이 종착지가 되었다.  

 

임암산성과 청류암에 이르는 녹두장군의 행적은 어찌 된 일인지 관군의 첩보망에 쉽사리 노출되었다.  

일행이 떠난 후 입암산성에 토포대가 들이닥치자 산성 별장 이종록은 백양사로 사람을 보내 이 사실을 알리고 장군 일행은 차려놓은 밥상을 뒤로하고 담양 방면으로 황급히 떠났다 한다. 

그리고 하룻밤을 어디에선가 보내고 그 이튿날 순창 피노리에서 옛 부하 김경천의 밀고로 피체되고 만다. 

태인 전투를 마지막으로 농민군 본대를 해산한 후 만 닷새만인 1894년 12월 2일(음력)의 일이다. 

12월 1일을 어디에서 보냈는지는 밝혀지지 않아 백양사에서 피노리로 가는 여정은 파악할 길이 없다. 

훗날 심문 과정에서 전봉준 장군은 자신의 잠행이 서울의 내막을 알아보기 위해 한양으로 향하는 여정이었다고 밝혔다. 

단순히 몸을 숨겨 목숨을 부지하기 위함이 아니라 정세의 변화를 예리하게 판단하여 다시금 재기할 큰 뜻을 여전히 품고 있었음을 짐작케 한다. 

 

11시 10분 만화동 - 12시 20분 북문 - 1시 30분 은선골 삼거리 - 2시 30분 몽계폭포 - 3시 30분 능선 사거리 - 4시 30분 옹달샘 삼거리 - 5시 10분 청류암 - 가인마을 5시 50분

도상거리 약 12km

 

 

2014/11/24  입암산성에서 녹두장군의 발자취를 더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