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색이 농사꾼 블로그에 농사짓는 이야기가 통 없다. 

작년 여름 콩 심어놓고 '가물에 콩 나듯 한다'는 한마디 던져놓은 것이 마지막이다. 

작년 콩 농사는 완전히 망쪼나서 수확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다. 

대신 갈아놓은 밀이 그럭저럭 잘 되었다. 

농사짓는 이야기가 통 없으니 이거이 진짜 농사를 짓는 사람인가 어쩐가 의심하는 분도 계시리라. 

다소 게으르고 해찰하기 좋아하지만 나는 분명 농사꾼이다. 

그래서 지금부터는 농사짓는 이야기를 비교적 자주 해볼까 한다. 

 

나는 영농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손이 많이 가는 농사보다는 홀랑하게 지을 수 있는 농사를 추구해왔다.

농민회 활동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상은 돌아다니기 좋아해서다. 

홀랑한 농사를 짓는 탓에 돈이 영 돌질 않는다. 

올 봄 찾아든 돈 기근은 지금도 가실 줄을 모르고 있다. 

이번 연휴 지나고 나면 빚이라도 좀 낼까 고민중이다. 

 

홀랑해서 선택한 농사중의 하나, 잔디농사가 있다.  

올 봄 일찌감치 출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잔디는 아직도 떠내지 못했다.  

그간 얼마나 건성으로 잔디농사를 지었던가 하는 생각에 후회가 막심하다. 

해서 오늘은 잔디농사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한다. 

잔디농사를 시작한지 15년이 되었다. 

당시에는 어머니도 살아계셨다. 

"어무이 나 뙤돈 한번 벌어볼라요" 하고 잔디 농사를 시작했다. 

 

잔디밭
이른봄 잔디, 이때 출하하려 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내 잔디농사 규모는 대략 3,200평쯤 된다. 

잔디농사의 가장 큰 매력은 한번 심어놓고 나면 그저 관리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잔디는 떠내고 나면 남아 있는 뿌리가 뻗어 다시 밭을 채운다. 이른바 '죽 떠먹은 자리'..

그러니 거름 주고, 풀관리하면서 자주 깎아주면 된다. 

너무 가물면 물 주고 장마통에 배수관리나 하면 되는 것이 잔디농사다. 

그리고 과일이나 채소처럼 출하시기 때문에 애달아할 필요가 없다. 

썩거나 무르는 것 아니니 그저 속 편히 먹고 장사꾼을 기다려 시세에 맞게 출하한다. 

시세가 너무 형편없으면 출하를 늦출 수도 있다. 

 

나는 잔디농사를 이렇게 지어왔다. 

더욱이 처남이 잔디 도매를 하고 있어 팔아먹는 문제로도 고민해본 적이 별로 없다. 

떠가면 떠갔는갑다, 돈 들어오면 들어왔는갑다..

15년을 이렇게 살아왔으니 잔디농사에 아무런 발전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문제가 발생했다. 

이런저런 이유로 처남하고의 관계가 단절되었고 잔디값은 폭락했다. 

 

크게 노력하지도 않았지만 새로운 거래선을 찾는데 1년을 허비했고 새로운 거래선은 질 좋은 잔디를 요구했다. 

지금 나는 잔디농사를 새로 배우고 있다. 

정성과 노력 없이 그저 세월에 맡겨온 농사법으로는 더이상 어디 가서 잔디농사 짓는다 말하지 못하겠다. 

잔디농사 제대로 한번 지어보련다.

 

승용 잔디예초기

 

잔디농사 제대로 지어보겠다 맘 먹고 잔디깎는 기계를 외상으로 샀다. 

지금껏 쓰던 트렉터 부착용 작업기는 노후되기도 했지만 질 좋은 잔디 생산에 부응하지 못한다.   

 

푸른 잔디밭

 

지금 현재의 잔디 모습. 

그간 두차례 깎아주고 요소도 두번 뿌려주었다. 

거의 새로 키운 기분이다. 

앞으로 전개될 잔디농사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시라. 

그나 잔디를 봐서도 비가 한번 와줘야 하는데 요즘 너무 가물다. 

잔디를 제때 출하하지 못하니 돈가뭄 또한 극심하다. 

도싯사람 살림살이같으면 진작 어긋났을 것이다. 

 

'농업, 농민, 농사 > 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잔디 이야기 2  (0) 2015.06.30
가뭄이 너무 길다.  (0) 2015.06.09
가물에 콩 나듯..  (1) 2014.07.08
나락을 벤다.  (0) 2013.10.07
나락 목아지가 늘어지면 농민들 목은 길어진다.  (0) 2013.09.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