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늦게까지 쏟아지던 눈이 그치고 아침해가 쨍 하고 솟았다. 

이른 아침임에도 짚시랑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기 시작하고 햇살을 머금어 무거워진 눈이 비닐 하우스를 묵직하게 쓸어 내리며 눈보라를 일으킨다. 

공음, 무장 쪽 비닐 하우스들이 꽤나 찌그러졌다는 소식이 들린다.

눈은 정읍이 더 왔다는데 왜 그짝 하우스들이 무너지는지 모를 노릇이다. 

이래저래 농민들 시름은 가실 날이 없다. 


그나 눈 왔는데 뭐 하나? 산이나 가야지..

길바닥 눈은 아직 녹지 않았다. 바퀴에 채워놓은 체인은 아직 풀지 않아도 되겠다. 

부안면 사는 선홍이를 싣고 선운사로 간다. 

아직 그 누구도 가지 않았을 경수봉을 오른다. 

경수봉은 선운사를 휘감아 도는 산군들 중 최고봉으로 인냇강 너머 소요산과 자웅을 겨룬다. 

하지만 산세도 밋밋하고 오르는데 시간이 적지 않게 걸리는 탓에 아주 맘 먹고 능선 종주를 계획한 사람들 말고는 잘 찾지 않는다. 




산길 초입 외딴집 개망에 갇혀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배 곯은 강아지들이 애처롭다. 

사람이 지나가니 겁나 반가운 모양인데 줄 것이 없다. 




이 녀석도 배 곯았나 보다. 

유리딱새 한마리 뭐라도 달라는 듯 자꾸 사진기 앞에 들이대는데 미안하지만 너한테도 줄 것이 없다. 

한파에 폭설, 사람이나 짐승이나 힘들기는 매일반이겠다. 




오르고 또 올라 능선에 올라서고도 한참을 가니 이윽고 조망이 터지는 바위가 나타난다. 

바위에 올라서니 곰소만 너머 변산반도의 산줄기가 늘어선다. 

바다 가운데 섬 하나, 내죽도가 보인다. 

저래보여도 사람이 살고 있는 유인도, 고창군에 속해 있다. 

물이 빠지면 드넓은 갯벌이 드러나고 걸어서 들어갈 수 있다. 



부안면 선운리와 송현, 봉암 일대에 펼쳐진 간척지와 양식장, 같이 간 선홍이 사는 동네다. 

예전엔 사람 사는 마을과 자그만 땅조각을 제외하고는 이 일대 전체가 갯물이 드나드는 바다였다. 

그러니 사리 때 해일이 일면 바닷물이 삽짝을 밀고 들어와 안마당까지 넘볼만 했겠다.  



인냇강 너머 삼각 봉우리가 소요산 정상이다. 

둘다 444m, 경수봉과 높이가 거의 같다. 

곰소만으로 흘러드는 작은 강줄기를 사이에 두고 지척에서 마주보고 있지만 산줄기만 타고 넘나들기 위해서는 굵직한 고창 산줄가는 다 밟아야 한다.

지리산에서 광양 백운산으로 가려면 호남 땅을 다 밟아야 하듯..

산줄기란 그런 것이다. 

 

소요산은 전봉준 장군의 태몽에도 등장한다. 

전봉준 장군의 아버지가 소요산을 한 입에 삼키는 태몽을 꿨다 전해진다. 



이번에는 선운산 안쪽 고라당을 굽어본다. 

도솔천 깊은 계곡은 아직 전모를 드러내지 않았고 멀리 꽁꽁 얼어붙은 하얀 도솔제가 보일 뿐이다. 




아무도 가지 않은 초행길, 무릎을 넘나드는 첫눈을 헤치는 능선 산행이 상쾌하기 그지 없다 .



저 멀리 방장산 굵은 줄기가 병풍처럼 늘어섰다. 

그 앞에 화시산 능선.

무장에서 기포한 농민군이 화시봉 자락 나즈막한 굴치 고개 넘어 고부로 짓쳐 나갔다. 

흰옷의 물결, 천지를 진감하는 함성 소리 들리는 듯..



경수봉



심원면 연화동 계곡, 저 멀리 칠산바다..

동호 앞바다에 외죽도 떠 있고 가물가물 위도가 보인다. 

아무리 뚫어지게 쳐다봐도 사진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제아무리 첨단 사진기라도 사람 눈을 못따라가는군.. 




햇볕이 그새 황혼빛을 머금었다.  

같이 간 선홍이 다리에 문제가 생겼다. 

봉우리 하나 터넘으면 마이재가 나오겠는데 그냥 계곡으로 하산한다. 

눈 앞에 화시봉이 듬직하다. 

언제 한번 가봐야 쓰겄다. 




계곡을 더듬어 내려서니 아까 올랐던 산행 초입 원점에 도달한다. 

짤막한 겨울 해는 산 너머로 폴쎄 넘어가부렀다. 

다리에 탈이 난 선홍이가 막판에 고생했다. 

술 고만 먹고 체력단련하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거듭했더랬는데 두고 볼 일이다. 



'산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선운산 천마봉 풍경  (0) 2016.05.21
명불허전 소백산 칼바람  (2) 2016.02.02
눈 덮인 하얀 방장산을 가로질러 온천탕으로..  (0) 2016.01.21
고부 두승산  (0) 2016.01.14
선운산 낙조대에서..  (1) 201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