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그토록 잊고 살았을까?  10년은 폴쌔 지나부렀으니 까맣게 잊었다 할 만하다. 

별 얘기 아니다. 시데부데한 먹는 이야기. 

그때만 해도 콤바인 옆구리에 매달려 푸대자루 잡아가며 나락 벨 때다. 

아마도 11월 초였을 것이다. 

눈발 날리는 무쟈게 추운 날 마지막 타조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수리잡 바람 휘몰아치는 방죽 두럭을 걸어오는 세 아이를 발견했다. 

엄마 아빠 찾아가겠다고 길을 나선 우리 집 애들이다. 

큰 놈이 초딩 초년병이었을 것이고 막둥이는 인자 말문 터져 한참 종알대던 시절..

녀석들은 꽁꽁 얼어 있었다. 

죄다 감기 제대로 걸리겠다 싶어 차에다 싣고 바로 흥성 회관으로 달려가 볼테기탕을 먹였다. 

당시에는 가끔 가던 식당이었던 모양이다. 

다행히 한놈도 감기에 걸리지 않고 무사했다.  

볼테기탕 시켜놓고 기다리는 시간 우선 입맛이나 다시라고 준 군님석거리를 보고 "야~ 볼테기다!"하고 손뼉 치던 막둥이의 환호성이 귓전에 쟁쟁하다. 

배꼽을 잡고 웃었더랬다. 

막둥이는 나오면서 회심의 한마디를 더 날렸다. 

"볼테기야 안녕~"

 

그러고는 다시 그 집에 간 기억이 별로 없다. 

누가 가자 한 사람도 없었고 그곳에 식당이 있다는 것도 잊은 채 무심하게 지나다니기만 했다. 

왜 그랬을까? 참 의아하다.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그 집에 다시 가게 되었다. 

이 집이 아직도 장사를 하는구나 생각했다. 

변함없는 식단 볼테기탕을 먹자니 당시의 미각이 되살아난다. 

그래.. 이 맛이었단 말이지..

참으로 맛나다. 

 

 

병길이 형님을 모시고 다시 갔다. 

병길이 형님은 농사짓겠다고 고창에 내려와 맺은 첫 번째 인연, 고창군 농민회가 맺어준 첫 동지다. 

밥을 먹으며 시국과 관련한 유쾌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러면서도 항상 밥값을 치러주는 든든한 물주. 

 

볼테기탕 작은 것을 시켰다. 

정성껏 다듬은 숙주너물이 정갈하고 들깨가루를 넣은 하얀 국물이 인상적이다. 

미나리가 낫지 않을까 싶은데 굵직한 솔을 얹어 놓았다. 

미나리 향이 탕 본연의 맛을 흐리게 할 것을 염려한 선택이 아닐까 짐작해 본다. 

 

 

구수하면서 아삭하게 씹히는 숙주너물이 참 좋다. 

퍼걱거리지 않고 졸깃한 볼테기 살도 먹을 만큼 들어 있다. 

 

 

들깨를 갈아 넣어 진덤진덤하면서도 시원하고 구수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기품 있는 맛, 밥을 말아먹는다. 

 

 

밥만 먹기로 하면 작은 것 시켜 둘이 먹는데 모자람이 없겠는데 술을 한잔 곁들이자니 좀 모자란다. 

모자라서 1인분을 추가했다. 술꾼들은 중간 크기로 먹어야 맞겠다. 

가짓수 많지 않은 반찬도 좋긴 한데 볼테기탕 먹느라 바빠 젓가락질할 틈이 별로 없다. 

 

흥성 회관은 선운사로 가는 길목, 흥덕면에 있다. 

지나는 길에 밥때가 되어 굴픗해지거든 들러보시라. 

후회하지 않을지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