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나는 약골이었다. 

가을에서 겨울, 겨울에서 봄 사이면 여지없이 독감을 앓아야 했고 배앓이도 자주 했으며, 하도 넘어지기를 잘해 무릎이 성할 날이 없었다. 

그러던 내가 어쩌다 오늘날과 같이 상당한 건강 체질이 되었는지는 잘 알 수 없다. 

그 옛날 심하게 앓고 나 기력이 없고 입맛이 돌아오지 않았을 때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것이 있었으니 부추 계란탕이다. 

원기를 북돋는데 좋은 음식이었던 모양이다.  

 

우리 동네에서는 부추를 솔이라 한다. 

텃밭 한켠 은행나무 아래 어머니가 정성을 다해 관리하던 두세 평쯤 되는 솔밭이 있었다. 

그야말로 솔잎처럼 가는 조선 솔이었는데 우리 식구는 물론 동네 아짐들까지 다 나눠먹기에도 충분해서 바구니 들고 와서 잘라가곤 했다.

어머니는 솔밭에 늘 재를 뿌려주시곤 했는데 이제는 흔적조차 찾을 길이 없다. 

나는 참 불효 막심한 놈이다. 

 

마트에서 우연히 집어온 부추 한 단에 옛날 생각이 난다. 

그 시절 먹었던 부추 계란탕을 상기하며 한번 만들어 본다는디..

결과는 신통지 않았지만 먹을 만은 했다. 

 

 

 

멸치 다시물에 적당히 자른 솔과 양파, 청양고추를 넣고 잠깐 끓이다가 잘 풀어놓은 계란 두 개를 넣고 한바탕 더 끓였다. 

소금으로 간 하고 다진 마늘 넣고.. 끝. 

 

 

찜과 탕과 국의 경계는 무엇일까? 

국물 양의 차이, 간의 차이, 음식의 성격 차이 등이 있겠으나 계란을 주 재료로 하는 경우 국물 양에 따라 찜과 탕, 국의 영역을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다 하겠다. 

가물거리기는 하나 어머니가 해주시던 것은 찜과 탕의 경계에 모호하게 걸쳐 있었다 생각된다. 

자르지 않은 가느다란 조선 솔이 투가리에 빡빡했고 계란과 솔이 적당하게 엉켜 있어 먹기에 좋았다.  

오늘 내가 만든 계란탕은 여러모로 어머니가 해주시던 것과 다르다. 

복원 가능할지..  

 

'먹고 놀고.. > 먹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간단 곤드레나물볶음  (0) 2016.05.23
집에서 먹는 곤드레밥  (2) 2016.05.18
목이버섯 들깨탕은 왜 없을까?  (0) 2016.05.13
목이버섯볶음  (0) 2016.05.10
5분완성 양상추샐러드  (0) 2016.05.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