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가 옆 간척지 논에 도요새들이 가득하다.
메추라기도요, 학도요, 흑꼬리도요, 청다리도요, 알락도요, 꺅도요..
수천 킬로미터에 달하는 장거리 여행, 북상 중인 도요새 무리들은 영양보충에 여념이 없다. 
귀한 손님 안 계시나.. 휘리릭 둘러보는 눈길 저 멀리 호사도요 한쌍 눈에 들어온다. 
단언컨대 어지간해서는 좀처럼 집어내기 어려운 거리, 하지만 나는 호사도요만큼은 금세 찾아낼 수 있다. 
있기만 하다면..

5월 7일, 부안면 수앙리 갯논


호사도요와 나의 인연은 길고도 각별하다.
10여 년 전 논에 앉은 황로 무리 사이에서 우연히 발견한 호사도요 암컷,  참 특이하게 생긴 오리가 다 있다 싶었다. 
두어 달간의 망각기를 지나고서야  오리 이름이 궁금해졌고 탐조 사이트에 문의한 바 오리가 아니라 몹시 귀하게 관찰되는 도요류임을 알게 되었다. 

그로부터 1년 후 고창천, 갈곡천, 동림 저수지 등지에서 많은 개체를 한꺼번에 관찰하게 되었다. 
호사도요를 보겠다고 전국의 수많은 탐조가들이 고창을 방문하고 나는 그들과의 만남을 거듭하면서 탐조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게 되었다.
호사도요는 나를 탐조의 세계로 안내한 길잡이인 셈이다.  

5월 9일, 짝짓기
짝짓기 후의 독특한 행동

호사도요의 월동, 봄맞이, 짝짓기, 포란, 육추, 성장..
나는 호사도요의 생활사 전반을 관찰하고 기록한 경험을 가진 흔치 않은 사람이다.

은신하는 패턴까지도 너무나 익숙해서 이제는 숨을수록 더 잘 보인다. 

호사도요 수컷
 

호사도요는 암컷이 수컷보다 크고 화려하다.
사진 속 암컷은 아직 번식 깃으로 완전히 갈아입지 않았다. 
일처다부제, 한 마리의 암컷이 자신의 세력권 안에 여러 마리의 수컷을 거느린다. 
육추는 오직 수컷이 담당하며 암컷은 그저 알을 낳아줄 뿐 번식과 관련한 대부분의 일과 무관하게 살아간다. 
그래서 얻은 이름 호사도요, 호사도요는 암컷을 위한 이름이다. 
이 논에서는 두 마리의 암컷과 너뎃 마리의 수컷이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좀처럼 보여주지 않는 비행 모습

5월 13일

다시 찾은 논, 모내기를 위한 써레질이 진행 중이다. 
논을 떠나야 하는 자신의 운명을 직감한 듯 암컷 한 마리 외로이 서 있다.
이후 모내기를 위해 말끔히 단장된 논에서 더 이상 호사도요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모내기 마치고 다시 찾아보자 마음먹었으나 그러지 못했다.
벼들도 크고 모든 것이 무성해진 지금 호사도요를 다시 보기는 어렵겠다.
녀석들은 장소를 옮겨 어디선가 번식을 마쳤을 것이고 지금쯤은 꽤 성장한 새끼들을 거느린 수컷의 은밀한 육추가 진행 중일 터이다.   

과거 길 잃은 새 '미조'로 분류됐던 호사도요는 이제 '일부 지역에서 적은 수가 번식하고 월동하는 드문 나그네새'로 기록된다. 
하지만 고창지역과 그 인근에서 관찰된 호사도요의 관찰 빈도와 다양한 생활사, 농민들의 증언을 고려하면 텃새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렇다고 '고창 지역의 텃새'라 주석을 달 수는 없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