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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한라산 해맞이

농사꾼 조선낫 2018.01.08 12:29

새해 해맞이를 어디서 할 것인가를 놓고 여러 생각이 많았다.
그러다 떠오른 한라산, 해가 바뀌고 매우 이른 새벽 나는 한라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주차장이 모자라 길가에까지 길게 늘어선 차량 행렬, 차량보다 더 많은 사람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새해 새 해를 보자고 산을 오른다. 
사람으로 인한 산길 정체까지 고려하면서 너무 이르거나 늦지 않게 산정에 도착하는 것이 일이 되겠다. 

03:30 성판악 휴게소, 사람들로 북새통.
휴게소 매점에 들어가 몇 가지 행동식과 얄포롬한 장갑을 장만하고 길을 나선다.
그놈의 장갑은 발이라도 달린건지 자꾸만 사라진다. 
산길이 그리 어둡지 않다. 동짓달 보름달이 구름 속을 들락날락.. 
다른 이들 불빛에 달빛까지 더하니 등은 꺼내지 않아도 되겠다.
아이젠은 진달래밭 대피소에 가서나 착용할 요량이다.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오르되 휴식 없이 진달래밭까지 직행한다.  

04:50 진달래밭 대피소, 사람들로 더 북새통. 
정말 사람 많다. 함께 온 영길이 컵라면 사묵자 하더니 늘어선 줄을 보고 포기하고 돌아온다. 
끓여온 커피에 연양갱 하나 묵고 어떻게 시간을 죽여야 하나 고민한다. 
불현듯 똥이 마렵다. 출발 전에 싸고 나왔는데 어제, 그제 먹은 술과 다량의 감귤이 효력을 발휘하나 보다. 
사람이 많다 보니 똥 마려운 사람도 많다. 이 새벽 높고 깊은 산중에 똥 마려운 사람들의 줄이 길게 늘어섰다. 
내 앞의 젊은이 무지하게 떤다. 춥냐 물었더니 추워 죽겠단다. 
두꺼운 다운파카를 입고도 이리 떠는 것을 보면 필시 속옷이 땀에 젖은 모양이다. 
역시 그렇다. 이미 두시간 전에 대피소에 도착했다는데 너무 일찍 출발한데다가 땀 흘리며 발길을 재촉한 탓이다. 
산중이 이럴 줄  꿈에도 생각 못했다 한다. 그러고 보니 신발도 등산화가 아니다. 
산꼭대기는 여기하고는 또 다른 세상일거라 했더니 새파랗게 질린다. 
그래도 몹시 젊으니 포기하지 말라 했는데 어찌되었는지 알 수 없다.
짐을 지키던 영길이마저 똥 싸러 가는 통에 시간 죽이는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됐다.  

05:50 진달래밭 대피소 출발.
환상적인 눈꽃 터널을 지난다. 
공연스레 급해지는 마음을 억누르며 천천히 오른다. 
벌써 내려오는 사람들이 이따금 보이더니 갈수록 많아진다. 
시간 조절과 체온 관리에 실패한 사람들이다. 옷차림이 허술하거나 두꺼운 일상복 차림에 몹시 지친 얼굴들..
새해 첫날부터 이게 왠 개고생이냐 싶을 것이다. 해맞이는 고사하고..
산을 너무 히피 본 탓이다. 

07:00 
6시 40분 무렵부터 먼동이 트기 시작하더니 제대로 붉어졌다. 
나무들 키가 급격히 낮아지고 구름이 발 아래 깔리기 시작한다. 
마음이 무지하게 급해지지만 역시 참고 천천히 오르는게 상수다. 
줄이 앞뒤로 길게 늘어섰다. 그야말로 장사진..

07:16 정상 도착
정상에서부터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를 잡고 해가 솟기를 기다린다. 
기왕지사 예까지 왔는데 정상으로 가야지..  마지막에는 인파를 헤치며 걸었다. 
아무튼 딱 밎촤서 정상에 도착했다. 잠에서 깨어나는 순백의 백록담이 인상적이다. 

07:35 해가 솟는다. 
구름바다 저 멀리 해가 솟는다. 실로 장엄무쌍하다. 
일시에 탄성이 터지고 덕담이 오간다. 
우리 민족의 앞날에 영광 있으라!

08:00 하산 시작
정상 날씨는 너무 좋았다. 
바람이 무척 불기는 했지만 못견딜 정도는 아니었고 햇살은 따스하기조차 했다. 
백록담도 들여다보고 사람도 둘러보고 해도 쳐다보고.. 
이제 내려가야 한다. 온 길 되짚어갈 수는 없는 일, 관음사 쪽으로 길을 잡는다. 
눈을 뒤집어쓴 구상나무 숲으로 접어든다. 
꼿꼿한 기상이 일품인 구상나무는 오직 한반도에서만 자생하는데 한라산이 최대의 서식처다.
'쿠살낭'이 구상나무가 된 사연, 우리 고유종임에도 구상나무에 대한 특허권을 미국놈들이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검색된다.  
온난화로 인해 숲이 생명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슬픈 이야기까지..

영길이

09:00 용진각대피소 터
산을 내려오다 보면 늘 드는 생각 하나.. 이 짝으로 올라가지 않기를 정말 잘 했군..
그 생각을 하면서 내려왔다. 좋았다는 말이다. 

11:30 관음사 도착
용진각 대피소터를 지나고 나면 산길은 한결 부드러워진다. 
삼각봉 대피소를 지나면 이제 눈조차 사라지기 시작하고 그야말로 지루한..
이 산길 언제나 끝나나 하는 오직 한가지 생각으로 그저 인내심으로 걷게 된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다. 
관음사 주차장, 가시리 사는 석대가 마중 나왔다. 아직 술이 깨지 않아 내가 운전한다. 예까지 나온 게 용타.  
성판악 들러 차 회수하고 다시 가시리로..
보말국에 한라산 한병 마시고 낮을 밤 삼아 잠자리에 든다. 

17:20 가시리에서 본 한라산
한 세시간 잤나 보다. 주인은 어디 가고 없다. 참으로 잘 잤다.
이제 서귀포로 간다. 무밭 너머 한라산이 떠 있고 그 외약짝으로 해 넘어간다. 
가시리에서도 한라산 보인다 했더니 제주도 어디서나 한라산이 보인다고 한다.   
음.. 그렇군.

산록도로 참 좋다. 
나는 지금 서귀포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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