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도연맹 동지들과 함께 농업연수라는 이름으로 제주도를 방문하였다. 
짜여진 단체 일정으로 하여 낮에는 별도의 짬을 낼 수가 없기에 공식일정이 시작되기 전 새벽시간을 이용하여 숙소 인근의 오름을 올랐다.  
숙소는 지난 정월대보름날 올랐던 족은대비오름 바로 옆의 아로마 리조트, 아직 잠들어 있는 제주도연맹 동지의 트럭을 타고 족은대비오름 앞을 스쳐 가까이 있는 오름들 중 만만한 대상을 물색하여 접근하였다.
사료작물이 심어진 새파란 밭에는 한라산 노루들이 어지러이 뛰어다니고 꿩들은 길가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호별방문 잘하는 모 종교단체에서 나눠주는 책자에서 본 풍경이 떠오른다. 
아직 이름을 알 수 없는 오름 아래 차를 대고 빠른 걸음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한라산 너머로 밝아오는 여명이 발걸음을 몹시 재촉한다.
중턱쯤에 이르니 해가 솟기 시작한다.
짐작하기에 해는 백록담 화구벽 오른쪽 진달래밭 대피소 어간으로 떠오른다.
희미하게나마 남아 있던 어둠이 사라지고 천지사방이 삽시간에 밝아온다.

카메라로는 대적할 수 없을만큼 해가 솟아오르자 따스한 햇살을 받은 오름은 온통 황금빛으로 물이 든다. 
바람탓인지 매우 낮은 키의 할미꽃들이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찬란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능선에 오르니 움푹 패인 굼부리가 포근하다.
사방 거칠것 없이 펼쳐지는 시원한 조망이 가슴을 탁 트이게 한다.
서쪽에서 바라보는 한라산의 면모와 서부해안이 한눈에 보이는 듯 하다. 

멀리 나란히 솟은 세 봉우리가 보인다.
'른오름의 두 봉우리와 마주 앉아 셋이 오순도순 다정한 이웃을 이루고 있다. 셋 가운데 제일 높고 몸매도 날씬하다.'
(김종철 '오름나그네')
믜오름(개오름)에 대한 설명이 이런 것으로 보아 가장 오른쪽의 것이 믜오름으로 보인다. 
른오름의 ''은 '쌍둥이, 나란하다, 비슷하다'라는 의미를 지닌 제주말이다. 
른오름은 쌍둥이오름인데 멀리서 보면 별개의 오름으로 보이지만 자락이 맞대어져 있는 하나의 오름, 두개의 봉우리라고 한다.
'하나의 오름, 두개의 봉우리',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통일방안과 흡사하다.
꼭 한번 가보고 잡다.

이웃한 정물오름. 두 오름의 사이가 서귀포시와 제주시의 경계가 된다.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
제주도에서만 불 수 있는 묘를 둘러싼 울타리(산담)는 세가지 정도의 의미가 있다.
망자의 유택, 방목 우마에 의한 묘지 훼손 방지, 들불로부터의 방화벽이 그것이다.
그리고 그 두께와 높이가 어떠한지를 보고 그 집안의 재력을 가늠해볼 수 있다 한다.
여간 보기 힘든 갓 쓴 비석까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인근의 부호였던 모양이다.

멀리 산방산이 섬처럼 떠 있고 그 앞쪽으로 도너리오름(돌오름)이 보인다.
도너리오름 쪽으로 길게 꼬리를 늘어뜨리고 있다.

굼부리 너머 능선이 부드럽다. 엄마품이 생각난다.

내리막길에서 본 솜나물, 많이 피어 있으나 워낙 키가 작아 담기가 힘들다.
지천으로 피어 있는 산자고는 이미 지고 있고 솜방망이가 꽃대를 올릴 준비를 하고 있다.
조만간 솜방망이 천지가 될 듯 하다.

잡목 속에서 청아하게 울어대는 휘파람새를 잡아보고자 렌즈를 바꿨으나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저 말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한라산을 당겨보았다.

돌아오는 길, 원경으로 담았다.
집에 돌아와 확인하니 당오름이다.
당오름이라는 이름으로 보아 큼직한 '당'이 있었음직 하나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길이 없다 한다.
자락에 봉긋봉긋 솟은 봉우리들이 다섯개이고 시루를 엎어놓은 것 같아 '시루오봉'이라 부른다고 한다.

2009/02/14 - [볼거리,여행] - 족은대비오름(족은대비악)을 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