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농민회 전라북도연맹 이광석(59) 의장은 1950년 전북 옥구군에서 태어난 평범한 농부의 아들이었다. 그리고 서른살 때 농민운동을 시작, 1987년 군산농민회를 조직한 뒤  현재는 전북도연맹 의장을 맡고 있다.
한평생을 농민으로 살아온 이광석 의장에게 ‘논’은 삶 그 자체였고, 농사는 인생의 사명감과도 같은 의미다. 누구보다 농촌과 농민을 아끼는 그 이기게 최근 불거진 쌀직불금 논란과 어려운 농촌현실에 대해 할 말이 많다.
도내에서 쌀직불금으로 새어나간 돈이 200억인지 18억인지를 두고 설왕설래가 이뤄진 17일 국정감사 다음날, 도연맹 이광석(59) 의장을 만나 쌀직불금 논란을 되짚어보고, 우리나라 농촌과 농민의 현실에 대해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나눴다. 인터뷰는 군산시 옥서면 그의 자택에서 이뤄졌다. /편집자

“쌀직불금 부당지급? 어제 오늘 일 아니다”

최근 쌀직불금을 부당 수령한 고위공무원과 언론인 등에 대한 이야기가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농민들의 민심은 어떤가.

온통 그 뉴스가 도배를 하고 있다. 하지만 농민들 입장에서 보면 사실 그 문제는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임대를 해서 농사를 짓는 농민의 경우 지주가 대신 돈을 가로채도 말하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지주 눈에 거슬리면 농사를 주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참아왔는데, 이렇게 공론화되고 보니 울컥하고 쏟아져 나오는게 지금 농민들의 심정이다.

요즘 농민들은 땅을 못산다. 땅을 사는 건 고위 공무원이나 돈 있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또 농사를 짓지 않는다. 결국 농민들과 지주들이 합의를 해서 농사를 짓기 마련이다. 때문에 쌀직불금을 가로채는 일은 알게 모르게 진작부터 이뤄져 왔던 것이다.

그렇다면, 제도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지주들이 제도의 허점을 비집고 들어와 중간에서 가로채는 것 같은데, 이는 어떻게 보완해야 하나.

제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를 집행하는 관계기관과 행정의 문제, 그리고 지주들의 약탈근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쌀직불금은 토지 소유쥬와는 상관없이 실질 경작자에게 지불되도록 돼 있다. 누가 실제로 경작하는지는 심사하면 다 나온다. 하지만 행정에서 눈 감아 버리니 이렇게 문제가 커진 것이다.

또 농사를 지으려는 농민들은 많고, 땅은 한정돼 있어 발생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앞서도 얘기 했듯이 지주는 다른 사람에게 농사를 맡기면 그만이다. 하지만 농민은 농사를 짓고 못 짓고 하는 게 곧 생존권이다. 농민은 지주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는 약자인 것이다.

쌀직불금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얼마 전 전라북도 의회에서는 도에서 쌀직불금 지급을 의무화하도록 하는 조례를 제정했다. 어떻게 평가하나.

우선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직불금 조례제정은 김완주 도지사의 선거공약이기도 했다. 지금까지는 추경예산으로 편성해서 지급을 해왔지만 이를 의무토록 해 일반예산으로 배정하는 것은 차이가 크다. 2년 전부터 오은미 의원과 전농에서 조례제정을 위해 노력해 왔는데, 이번에 통과돼서 참 다행이다.

하지만 아직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과연 집행부가 이를 수행할 의지가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조례제정 전까지 전북도는 ‘쌀직불금 조례는 시기상조다’ 하면서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 도내 다수 농민들의 뜻인 만큼 집행부에서도 의지를 가지고 실행해 줬으면 좋겠다.

일부에서는 쌀직불금에 들어가는 돈을 농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키는데 투자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경쟁력 있는 쌀을 생산하고, 농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것은 좋다. 물론 그렇게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경쟁력을 키우기 전에 농사를 지어야 할 농민들이 다 없어지면 안되지 않나. 우선은 농사를 계속 지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 쌀 직불금도 그런 요구 중 하나다.

미국은 농가당 평균 경작 면적이 100ha이고, 우리나라는 1.3~1.4ha다. 이걸 어떻게 경쟁력으로 풀 수 있겠나. 우리나라는 가정농, 소농 중심이다. 경쟁논리나 선택과 집중으로는 풀 수 없는 우리나라 농업의 특수성이 있는 것이다.

“특단의 대책 없이는 농업문제 풀 수 없어”

농가부채나 생산비 보존 등 농업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요즘 추수철인데, 실제 농촌의 현실은 어떤가.

농가 부채의 경우 노인들은 부채가 별로 없다. 다만 이제 농사를 시작하려는 사람이나 향후 10~20년 농사를 계속 지어나가야 하는 40~50대 중심으로 부채가 악순환 되는 꼴이다. 농기계를 새로 구입해야하고, 농사를 지으면 본전도 안남고, 거기에 자녀 교육비와 생활비는 늘어가고…. 한번 부채가 생기기 시작하면 전업을 못한다. 아마 농가부채만 해결해 준다면 전업한다는 사람 상당히 많을 것이다.

생산비 경우는 쌀 80kg 기준으로 20만원이 들어간다고 본다. 쌀 80kg를 만들기 위해서 벼 40kg짜리 3가마가 필요하다. 벼 한가마당 6만원을 받고 직불금으로 1만원 보존을 받아야 생산비를 겨우 맞추는 상황이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한가마당 4만 5~6천원에 수매를 하고 있다.
출하거부 투쟁이 계획돼 있다고 들었다.

정부에서 공비로 사들이는 가격과 실제 생산비랑 너무 차이가 난다. 그래서 수매를 거부하는 것이다. 추수철에는 출하량이 많아서 값이 싼 편이지만 익년 2월까지 수매를 안하고 기다리면 값이 좀 오른다.. 하지만 그래도 5만 1~3천원 사이에 가격이 책정돼 수지가 안 맞는 건 여전하다.

그것도 여유가 있는 농민들의 얘기다. 돈이 급한 농민들은 수확을 하고 바로 팔아야 한다. 때문에  손해 보는 것을 알면서고 싼값에 수매를 하는 것이다.

뭔가 대책이 필요할 거 같은데….

특단의 대책밖에는 없다. 일시적인, 한시적인 대책으로는 소용이 없다. 우선 식량 자급률 목표치를 설정하고 그에 맞추기 위해 노력하는 가운데에서 국민과 합의되는 농업정책을 만들어야 한다. 경제적인 논리 접근이 아니라 논의 담수능력이라든지, 자연환경과 같은 가치를 국민들에게 알리고 인정받는 가운데 농업정책이 만들어져야 한다.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은 없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후보시절 내세웠던 농가부채특별법과 같은 법제화도 기대해볼 수 있겠다.

“농사와 농민운동은 내 사명 이었다”

화제를 돌려, 개인적인 질문을 드리겠다. 현재 전농 도연맹 의장을 맡고 있는데, 처음 농민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어렸을 적부터 집에서 농사를 지었고, 농사짓고 사는 것을 당연스럽게 생각했다. 아버지가 마흔 살에 첫아들인 나를 낳았는데, 내가 스무살 때 아버지는 60이었다. 연로한 아버지 대신 내가 농사를 도맡아 지어오게 됐다.

그러던 중 79년 가톨릭농민회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이른바 의식화 교육이었다. 하하(큰 웃음). 교육을 받고 났더니 사회과학적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니 다 잘못돼 있더라. 그때부터 농사와 농민운동을 사명으로 받아 들였다.

군산농민회를 만든 주역으로 알고 있는데 당시 상황이 어땠는지.

그때가 1987년도였다. 사실 그 시절은 노동자는 노동운동하고, 농민은 농민운동 하던 시기였다. 근처 사는 친구 둘과 함께 우리도 한번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유인물 같은 거 돌리다가 경찰에 쫓기도 했고, 그만두라는 엄포와 회유 등을 이겨내 지역 농민운동의 발판을 마련했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현재 전농 도연맹 의장으로서 지역 농민운동의 현주소를 되짚어 본다면.

점점 어려워진다. 우리는 전문 운동가도 아니고 농사를 짓고 살아가는 농민이다. 그런데 우리는 요구받는 게 많다. 민주노총과 함께 사회변혁운동의 중심에 서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이 없다. 농민들은 점점 늙고 지쳐가고, 생활은 고단해져가고, 돈도 말라간다. 현장에 사람이 없고, 각 시군농민회에 인원 충원이 안된다. 지도부의 집행력과 기획력도 떨어져 간다.

예전에는 농민대회 하면서 한번 모이자 하면 지역에서 1~2만명은 모였다. 지금은 몇 천 모이기도 힘들다. 동력은 쇠퇴해 가는데, 해야 할 일은 점점 더 많아지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지난해 도내 농민단체들로 결성된 ‘농민연합’이 일체감을 갖고, 도내 농업현실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고민하겠다.
#취재후기

인터뷰가 진행된 이광석 의장의 자택은 군산시 옥서면의 한 농촌마을이었다. 전후좌우를 둘러봐도 황금물결밖에 보이지 않는 논 한가운데의 집이었다. 인터뷰가 이어지는 내내 마을 사람들은 콤바인을 돌리며 가을걷이에 한창이었다.

1년 농사를 마무리 짓는 추수철의 풍경하면 으레 시끌벅적한 동네와 수확의 기쁨을 함께 누리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떠오르지만, 의외로 마을은 조용했다. 쓸쓸함이 감도는 황금빛 물결의 들녘은 우리 농촌의 현주소였다.

농업문제에 있어 다른 대안은 없고 오직 ‘특단의 대책’만이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이광석 의장은 답답한 듯 연신 담배를 태웠다. 마치 타들어가는 농민의 마음을 보여주듯이….

/박창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