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시산제
시산제
2021.01.191월 17일 오늘은 시산제, 산으로 간다. 그 시절 산으로 간 사람들, 아직 돌아오지 못한 숱한 영령.. 만나 뵐 수 있을까? 오전 8시 백무동 주차장, 시간 반을 달려 딱 맞춰 왔다. 날이 몹시 차다. 장갑 속 손가락이 따락따락 아리다. 산으로 든다. 두터운 얼음짱에 갇혀 다소곳해진 한신계곡, 속삭이듯 재잘대며 흘러간다. 삐걱대던 몸이 산에 적응해간다. 걸음에 탄력이 붙는다. 눈이 많아지는가 싶더니 상고대가 나타나고 본격적인 깔크막이 시작되었다. 옷을 벗었다 입었다, 모자를 썼다 벗었다 하며 체온을 조절한다. 겨울 산에서는 땀을 흘리지 않는 것이 좋다. 탄성과 한숨이 교차하는 고빗사위, 타박타박 묵묵히 산을 오르는 사람들. 이쯤 되면 산길은 수행 길이 된다. 저기만 지나면.. 따스한 햇살에 휩싸인 잔돌..
바래봉에서 지리를 보다.
바래봉에서 지리를 보다.
2021.01.10바래봉을 오른다. 지난겨울 오르다 작파했던 바로 그 길, 이번엔 뜨는 해 말고 지는 해를 보자는 것이다. 팔랑 마을에서 바래봉 오르는 길은 매우 수월하다. 팔랑치에 오르면 지리 주릉과 서북 능선이 한눈에 잡힌다. 구름짱 두터운 곳, 그곳에 천왕이 있다. 운봉고원 너머로 해가 뉘엿뉘엿, 동학 농민군의 비원이 서린.. 저 멀리 고리봉, 그 너머 만복대가 살짝 전라도에서는 반야가 주봉이다. 구상나무 조림지를 지나.. 바래봉을 오른다. 살래 사람 살래 보고 있겄지. 험악허네.. 살래 사람들 살기 팍팍허겄다. 나는 저 산만 보면 피가 끓는다. 눈 쌓인 저 산만 보면 지금도 울리는 빨치산 소리 내 가슴에 살아 들린다. 해 넘어가고.. 내려왔다.
지리에서 智異를 보다.
지리에서 智異를 보다.
2020.12.26산에 안긴다. 산에 드는 건 산을 더 잘 보고자 함이라.. 여긴 어디 나는 누구? ㅋㅋ 좀 더 일찍 올랐어야 했다. 해님이 벌써 중천에 계시니.. 하늘로 올라간 마을 농평 불무장등, 황장산 너머 구름 모자 쓴 세석, 남부 능선 거친 산길을 간다. 지리 주릉이 한눈에 잡히고.. 우리의 후손들이 태어난 후에 전설처럼 우리를 이야기하리라. 반야봉, 토끼봉, 명선봉, 형제봉.. 세석 너머 천왕은 구름 속에 계시고.. 그때는 찢겨 피 묻은 깃발이나마 해방의 강산 위에 나부끼리라~ 아~아 오늘도 우리는 간다 선배들의 핏자욱 서린 이 길을.. 지리 주릉은 구름의 거처 천왕은 끝내 자태를 드러내지 않았다. 노래 부르며 서로를 일으키면서.. 신비주의에 휩싸인 대반야 끝내 안 보여 주더라. 왕시루봉 남해로 가는 섬진강 불..
지리산 만복대
지리산 만복대
2020.08.26징한 장마를 보내고 정령치에서 만복대 구간을 여러 차례 찾았다. 섣부른 탓이었을까? 만복대는 매번 비구름 속에 자신을 감추고 나를 박대했다. 내 지리산에 크게 잘못한 게 없다 생각했는데 그리 살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러던 차, 드디어.. 내가 만복대에 처음 이른 것은 5년 전이었다. 인생 반백년을 돌아본답시고 나섰던 백두대간 북상길, 때는 2월이었으니 지리산은 아직 겨울이었다. 짙은 운무에 싸인 만복대에서 20여분 개기고 버텨 반야봉을 영접하고 다시 길을 나섰더랬다. 얼마나 추웠던지, 지금 생각해도 뼈가 시리다. 이 날 이후 만복대는 내 머릿속 중요한 곳에 영롱하게 각인되었다. 그리고 5년이 지났다. 세월 참 속절 없이 빠르다. 나의 대간 북상길은 충북과 경북 어간 문경 부근에 머물러 있다. 그래서일까?..
지리산 달맞이
지리산 달맞이
2019.09.15달 보러 간다. 이북 출신 빨치산들의 비원이 서린 달뜨기 능선, 나에게는 그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겠다는 약간 오래된 바람이 있다. 달뜨기 능선 위로 떠오르는 보름달을 보자면 '조개골과 쑥밭재 언저리에 마련한 비트'를 찾아야 되겠는데 그럴 수는 없겠고 쑥밭재 부근 혹은 쑥밭재 지나 두류봉에 이르는 능선 어디 조망 터지는 곳에 시간 맞춰 당도하는 것이 일이 되겠다. 열사흗날 뜨는 달을 봤더니 정동쪽에서 남쪽으로 한참 치우쳐 동남쪽에서 떠올랐다. 하니 쑥밭재 부근이면 달은 과연 달뜨기 능선 위로 떠오르겠더라. 이짝 길은 하봉, 영랑대 지나 한번 내려와 본 적이 있으나 짙은 운무 속에서 길을 여러 차례 놓치기도 하였고 청이당터니 쑥밭재니 하는 곳을 확인하지 못한 채 지나쳐 자신감이 다소 떨어진다. 이래저래..
사량도 지리산
사량도 지리산
2019.01.20오래 전 어느 해 겨울 통영에서 석달살기를 했더랬다. 손 꼽아 헤아려보니 무려 16년 전.. 통영에서 하룻밤, 이런 저런 옛 생각에 감회가 새롭다. 분에 넘치는 잠자리 박차고 어둔 새벽길 달려 사량도행 배에 몸을 실었다. 장엄한 아침 노을, 뜨는 해를 보며 사량도에 도착. 배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버스가 곧바로 출발한다. 섬의 서쪽 돈지에서 내려 산줄기를 밟아 다시 선착장으로 돌아오면 된다. 나는 콩사탕이 싫어요 주먹 불끈 쥔 이승복 어린이 의연한, 사량초 돈지분교를 지나 산길로 접어든다. 폐교된 지 무려 7년, 절반 나마 찢겨 너덜너덜해진 태극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다. 매화가 방긋, 객을 반긴다. 높지 않은 산, 금새 능선에 당도한다.남해 방면 능가도, 수우도..이리 보니 산중, 횡간성령측성봉 원근..
지리산에서 새해를..
지리산에서 새해를..
2019.01.07해를 보러 갔다, 지리산으로.. 날마다 뜨고 지는 해 뭐가 다를까만 해가 바뀌는 시점이니.. 해가 진다. 담박질쳐 부여잡았다. 허나 어쩌랴.. 한 해가 저문다. 새해가 밝아온다. 구름짱 속에서 조각달 빛난다. 촛대봉 동트는 산하 새해가 밝았다. 반야봉 백운산 대성골 남부능선 칠선남릉에 들다. 눈발이 날린다. 서설이라 본다. 새해를 축하함
늦가을 지리산
늦가을 지리산
2018.10.30저무는 가을, 날이 깨지더니 비가 오락가락.. 주릉에는 눈이 내렸다네. 겨울 채비 단단히 하고 오라는 전갈에 가슴이 뛴다. 살래에서도 한참을 들어왔으니.. 저 아랫동네가 음정인갑다. 입구를 틀어막고 선 것은 아마도 바래봉..어둠이 내리고서야 대피소에 도착. 그리고.. 잘 잤다. 이른 새벽 대피소 마당에서 구름을 벗어난 달을 보았다. 음.. 일출이 기대된다. 명선봉에서 해를 기다린다. 천왕봉은 구름 속에 들었다. 문 일 날 것 같은 이런 하늘 참으로 좋다. 명선봉 상고대, 대략 1,500미터를 경계로 상고대가 피어난 듯.. 이쁘기도 하다. 해가 올라온다. 저 멀리 세석고원, 남부능선이 시작되는 지점에서 해가 올라왔다. 해를 맞이하는 사람들무슨 말을 할까? 그저 장엄하여라.구름 장막 사이 열린 하늘에서 빛이..
지리산에서 보름달을..
지리산에서 보름달을..
2018.07.31오늘을 고대했다. 달뜨기 능선 우로 떠오르는 달을 보자는 것이 이번 산행의 이유가 되겠다. 보름을 넘겼지만 달은 오히려 더 둥글어졌을 것이다. 여기는 윗새재 마을, 치밭목에서 하룻밤 머물고 천왕봉 들렀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계획이다. 그런데.. 비가 내린다. 지리산에 비가 내린다. 기나긴 가뭄 통에 귀하신 비를 만나다니.. 기이한 인연이로다. 달을 볼 수 있을까?소나기가 맞나 생각될 무렵 비가 잦아든다. 때는 지금이다. 산으로 든다. 가다 맞는 한이 있더라도 출발은 상쾌해야 써. 무재치기 폭포 부근 조망대에서 다리쉼을 한다. 비는 그쳤으나 숲은 흠뻑 젖었다. 땀이야 비야 나도 젖었다. 마음도 흠뻑 지리산으로 젖어든다. 치밭목에 이르는 다소 가파른 구간에서 아들녀석 허벅지에 문제가 생겼다. 쥐가 난단다...
산청 웅석봉
산청 웅석봉
2018.06.29"동무들, 저기가 바로 달뜨기요!" 영화 '남부군', 내 기억 속에 남은 유일한 대사.. 그리고 펼쳐지는 지리산의 웅자. 그 날 이후 나는 달뜨기를 찾았다. 하지만 찾을 수 없었다. 그러고 얼마나 지났을까 최근년에야 '달뜨기 능선'을 알게 되었다. 그 이름에 얽힌 사연까지.. 천왕봉에서 바라보는 웅석봉과 달뜨기 능선은 실로 장쾌하였다. 달뜨기는 웅석봉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능선을 지칭한다. 그곳에 가고 싶었다. 벼르고 벼르던 그곳, 달뜨기 능선을 간다. 산행 기점은 밤머리재, 고갯마루 못 미쳐 약수터에서 물을 받는다. 오랜 가뭄에도 물은 마르지 않았다. 방울방울일지언정.. 그러니 약수다. 웅석봉.. 지리산에 가렸을까? 봉우리 이름만 있을 뿐 별도의 산 이름이 없다. 지리산 웅석봉, 혹은 산청 웅석봉이라..
아.. 지리산! 섬진강!
아.. 지리산! 섬진강!
2018.03.18산을 오른다. 숙취, 해장술 발걸음이 무겁다. 배 속은 꿀렁거리고.. 섬진강을 보여준다 했다. 그러니 믿고 오른다. 한 땀 한 땀 쉬엄쉬엄 짐이 되어버린 주렁 정이 들었나? 차마 버리지 못하는데 문득 시야가 트이고 드디어 보여준다. 섬진강. 강 건너 백운산, 천리길을 에돌아온 호남정맥 백두대간을 마주한다 '산자분수령' 산은 물을 낳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산에 사는 사람 지금 오면 뭘 보겠냐 타박하지만 새벽에 오라는 말이겠지만 좋기만 하다. 섬진강 아.. 섬진강 고개 돌려 힐끗 보니 세석, 남부 능선.. 그 너머 천왕봉 눈 앞, 피아골 너머 하늘로 올라간 동네 농평이로구나. 92년 대선 이후, 술을 먹다 먹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 몸 만들어 내려오자 찾았던 동네 농평에서 더 들어가는 높은 터, 묵은터에..
지리산 잣까마귀
지리산 잣까마귀
2017.08.18새재 마을에서 치밭목 거쳐 천왕봉을 오른다. 간간이 비가 내리고 산은 온통 구름과 안개에 갇혔다. 중봉에 다다를 무렵 앞서가던 등산객 우는 새소리 뭐냐 묻는다. 까마구 소리 아니냐 무심코 답하고 나니 까마구 아니다. '잣까마귀로구나!' 내심 이 녀석을 보게 되리라는 기대가 없지 않았다. 부리나케 렌즈를 갈아끼워 놈을 겨냥한다. 몇 해 전 이 녀석들을 보겠다고 설악산을 오른 적이 있다. 줄기차게 쏟아지는 굵은 빗줄기를 뚫고 오른 대청봉, 비에 젖은 흑백 사진으로 간신히 알현했던 잣까마귀.. 너하고 나는 어찌하여 뿌연 안개 속 흑백사진으로만 만나게 되는가? 다행히도 사람을 그리 경계하지 않는 녀석들, 가까이 다가와 나와 마주한다. '잣까마귀'라는 이름자는 깃털에 박힌 잣 모양의 흰 반점에서 비롯되었음이 분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