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TO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대체할 새로운 규범을 만들어내기 위해 시애틀, 칸쿤, 홍콩 등지에서 각료회의를 거치는 동안 전 세계 민중들은 격렬히 저항하였다. 이에 더해 회원국들 간의 첨예한 이해관계의 충돌로 WTO(DDA 협상)는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난파선이 되어 장기 표류해왔다. 이 투쟁의 와중에서 한국 농민들은 이경해 열사를 반세계화 투쟁의 재단에 바쳤으며, 홍콩에서의 빛나는 투쟁을 역사에 기록하였다.   

WTO가 이렇듯 전 세계 민중들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한 것은 ‘예외 없는 상품화’ 속에 내재된 철저한 반민중성에서 기인한다 하겠다. 

난파선이 된 WTO는 생명이 다 한 것으로 보였다.

 

 

 

2013년 12월, 발리에서 WTO 각료회의가 열리고 ‘발리 패키지’라는 무슨 신혼여행 상품 같은 이름으로 WTO가 부활을 시도한다는 소식에 접하였다. 하지만 발리 각료회의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협상 타결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은 탓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자유무역협정(FTA)의 격랑 속에서 개최되는 WTO 각료회의가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철 지난 ‘차부(terminal) 패션’ 정도로 여겨진 탓이다. 

이런 조건에서 오직 농민들만의 원정투쟁단이 구성되었다. 여기에는 WTO의 부활 조짐을 우려하며 차제에 숨통을 끊어놓지 않으면 안 된다는 국제 농민조직 비아 캄페시나의 호소가 크게 작용하였다. 

 

주로 동남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원정투쟁단과 인도네시아 현지 투쟁단 총 2천여 명이 발리에 모여들었다. 투쟁단은 각료회의 개최와 때를 같이하여 국제 행동의 날을 선포하고 별도의 집회와 행진을 벌였다. 한국투쟁단은 상여와 풍물패를 앞세우고 행진하였다. 한국투쟁단의 상여와 풍물, ‘remember 이경해’. ‘down down WTO!’ 등의 구호는 각국 투쟁단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투쟁단의 활동은 인도네시아 정부의 철저한 봉쇄에 직면하여 협상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진행되었다. 이와 별도로 협상장 내부에서 활동한 그룹이 있으나 소수였다.  투쟁단과 무관하게 각국 정부 협상대표들은 안락하고 평온한 조건에서 각료회의에 임할 수 있었다. WTO를 끝장내자는 투쟁단의 의지는 충만했으나 실제 협상에 대한 직접적 위협과 압박 요소가 되지 못했다.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투쟁단은 협상장 내부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으나 그 누구도 협상 타결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았다. 

 

 

 

한국 투쟁단은 각료회의가 폐막되기 전에 일정을 마치고 귀국하였다. 

많은 발리 투쟁단이 비상시국대회에 참가하였다. 비상시국대회가 종로 가두시위로 번지고 “박근혜 정권 물러가라”는 구호가 자연스레 터져 나올 즈음 발리 각료회의 협상 타결 소식이 뉴스속보를 타고 전해졌다.  당초 협상 기일을 하루 연장한 끝에 극적으로 타결되었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언론보도는 WTO 출범 이후 첫 협상 타결이라는 것과 이를 계기로 WTO가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될 것이라는 데 집중되었다. 언론보도만으로 협상의 구체적 결과가 무엇인지, 핵심 쟁점이 어찌 처리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파악하기는 어렵다. 다만 WTO에 새 숨결을 불어넣기 위한 그들의 노력이 어떠했을까를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그들의 바람대로 ‘발리 이후’ WTO가 새로운 통상규범을 만들어가는 중심에 서게 될지 여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농민 투쟁단은 승리를 쟁취하지 못했다. “end WTO!"라는 전 세계 농민들을 불러들인 투쟁의 기치는 좀 더 강고한 국제연대와 지난한 투쟁을 요구하는 미완의 과제로 남았다.  

 

박근혜 정부는 발리 각료회의에서 무엇을 했는가?

산업통상자원부 윤상직 장관은 “무역원활화 협정을 타결한다면 전 세계적으로 큰 경제적 이익을 가져올 것이며, 농업이슈 일부에서의 성과는 작을지라도 의미 있는 한걸음이 될 것”이라는 기조연설로 발리 패키지의 조속한 타결을 역설하였다. 연설에서 언급한 ‘농업이슈’는 농업에 대한 보조금 감축과 중단에 관한 것이었다. 한국 정부는 ‘농업포기 개방 확대’라는 전통적인 통상전략을 더욱 심화시켰다. 농업보조금 지급 중단을 완강히 거부한 결과  농업보조금 감축 및 중단을 유예할 것과 유예기간을 별도로 명시하지 않는다는 타협안을 이끌어낸 인도 정부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다른 한편 박근혜 정부는 발리 각료회의 직전 TPP 참가를 공식 선언하고 한-호주 FTA 타결을 선포하는 등 TPP로 가는 잰걸음을 시작했다. 박근혜 정부의 TPP 행보가 농업에 대한 추가적 양보와 희생, 쌀과 쇠고기 시장의 전면적 개방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한국 농업과 농민들에게는 매우 큰 위험이 아닐 수 없다. 

지금 우리는 자고 나면 하나씩 타결되는 FTA를 넘어 TPP라는 이름의 미국 주도 다자간 FTA까지 참여하는 바야흐로 FTA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WTO, FTA, TPP..  얽히고설킨 듯 복잡해 보이지만 본질은 명료하다. 박근혜 정부의 통상전략은 박정희의 수출 지상주의 경제정책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박정희 정권과 미국으로부터 유래된 수출 지상주의 경제정책은 절대다수 노동자, 농민, 서민의 고통과 희생을 담보로 수출 대기업만을 기형적으로 성장시켜 대한민국을 재벌공화국으로 만들었다. 오늘날 박근혜 정부의 미친 듯한 FTA 추진과 TPP 참여 결정은 오직 미국과 특정 재벌, 소수 기득권층의 이익에 부합할 뿐이다. 

통상절차법 등 법적 절차를 깡그리 무시하고 군사작전 펼치듯 급속 추진되는 박근혜 정부의 통상 정책은 정치에서의 독재회귀, 유신독재 부활과 긴밀하게 맞물려 있다. 민주 없이 민생 없다는 만고의 진리를 되새기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이 일부 농민단체 대표들을 불러들인 자리에서  "무역으로 먹고사는 우리 입장에서 FTA와 같은 시장개방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라 말했다. 이는 일제 식민통치가 조선을 근대화시켰다며 식민통치를 정당화하는 친일파의 논리와 다를 바 없다. 

“부정선거로 당선된 박근혜 정권의 퇴진이야말로 역사의 필연이자 피할 수 없는 숙명”임을 깨닫게 해야 한다. 

우리 농민들이 차가운 여의도 칼바람을 맞받아치며 박근혜 정권에게 빼앗긴 쌀과 민주주의를 되찾겠다고 싸우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