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마신 술로 몸이 해장을 요구한다.

순창가는 길, 전주 인근을 벗어나니 사면팔방에서 산이 달려든다. 

산모탱이를 도는 맛도 물길을 따르는 멋도 없이 그저 일직선으로 뚫린 새 도로에는 자연을 거스르는 폭력만이 낭자하다.  

왜놈들이 뚫어놓은 신작로를 걷는 옛 어른들 맘이 이랬을까 싶다.



30여분을 달려 도달한 산골 마을에는 곳에 따라, 때에 따라 눈발이 날리고 있었다. 

임실에 속한 강진, 장터로 들어가는 다리 아래로 산에서 내려온 물이 흐른다. 

강진장터 국수집 행운집을 찾아들어간다. 



국수 마는동안 공것으로 나온 머릿고기에 자동으로 막걸리가 따른다. 

막걸리잔을 내려다보는 홍규형의 그윽한 표정에서 꽤 오랜 세월 덧쌓인 격조높은 내공이 엿보인다. 

"술은 술로 푸는 것이여" 거진 도인의 지경이다.



행운집 국수는 장인들의 고집과 수고가 만나 맛을 빚어낸다. 

햇볕에 말리는 전통적 자연건조의 수고로움을 마다않는 국수쟁이와 그 국수를 알아주는 국수집 아짐의 인정많은 손맛이 만났다. 

속이 잘 풀린다. 


비빔국수도 시켰는데 생전 안준다. 

"많이 디랬응게 오늘은 그것만 잡숫고 다음에 또 와게.. 머릿고기나 더 디리까?" 

이 냥반 장사는 돈 벌자는 것이 아닌듯 조금의 아쉬움도 없다. 

입맛만 쩍쩍 다시면서 나오는 수밖에.. 그나 배는 부르다. 



순창에서 돌아나오는 길 구림 소재지 너머 회문산이 보인다. 

아! 회문산.. 그 시절 산사람들을 생각한다. 



강진 태복장, 오래된 중국집에 들어선다. 

정성스런 손글씨로 새겨넣은 버스 시간표를 보라. 

 이 정성을 봐서라도 차시간 바꾸면 안되겠다. 

임실, 순창, 정읍 어간에 자리한 강진은 대처 전주로 나가는 길목이면서 산골짝 동네로 들어서는 관문이기도 하다. 




밀가루 반죽을 탕탕 두들기며 국수를 뽑아낸다. 

뒷모습 정정한 할아버지가 뽑아준 새콤달달한 그야말로 짜장, 느끼하지 않고 담담하다. 

옛날 짜장맛이 이랬던가 싶다.    



눈이라도 한바탕 올랴는가? 맵짠 바람이 볼태기를 때린다. 

억센 산기운을 가슴 깊이 흡입하며 그 시절을 치열하게 살다 가신 산사람들을 다시 한번 생각한다. 

청신한 이 느낌, 산사람들이라도 내려올 듯한 분위기가 상쾌하기 그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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