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 마늘, 양파, 무, 배추, 감자,..
지난 한해 농민들은 거의 모든 농산물이 평년 가격의 절반 혹은 그 이하로 폭락하는 극심한 가격폭락 사태를 겪었다. 전국 각지에서 생산비는 고사하고 종자값조차 건지지 못하여 수확을 포기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였다. 그런데 그 악몽같은 가격폭락 사태가 해가 바뀌어서도 진정되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제주산 월동 무를 시작으로 양배추, 대파 가격이 폭락하여 농민들이 밭을 갈아엎어 산지폐기에 나서고 정부의 책임있는 대책을 촉구하며 투쟁하고 있다. 정부는 기상여건 호조에 따른 과잉생산을 가격폭락의 원인으로 꼽고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무분별한 농산물 수입개방 때문이다. 모든 농산물이 자유롭게 수입되어 국내 시장을 급격히 잠식하고 있는 현실에서 농민들은 조금이라도 나은 농사를 찾아 동분서주하지만 그럴수록 사태는 악화될 뿐이다. 값싼 수입농산물이 차고 넘치는 시장 상황은 일상적이고 구조화된 가격폭락을 불러오는 근본 요인이 된다.

오늘날 이와 같은 비극적 상황을 초래한 주범은 다름 아닌 정부다. 역대 정부는 예외 없이 미국 등 선진강국의 부당한 농업시장 개방압력에 무기력하게 굴복해왔으며, 정권 안위를 위한 농산물가격 파괴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하고 강화해왔다.

가격폭락 사태에 맞선 농민들의 투쟁은 정부와 농협, 지자체를 상대로 한 생산비 보장투쟁으로 전개되고 있다. 산지폐기, 시장격리, 긴급수매 등 정부가 꺼내드는 대책에서 근본문제는 생산비 보장 여부에 있다. 생산비가 보장되지 않는 한 그 어떤 대책도 농민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하지만 농민들의 투쟁은 산발적으로 진행되거나 급한 불 끄고 나면 해산해버리는 단발적 투쟁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제 농민들의 투쟁은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쟁취를 목표로 뚜렷하게 모아지지 않으면 안된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는 생산비 보장과 가격안정, 식량자급 실현을 목표로 하고 있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의 근본요구는 생산의 주인인 농민과 소비의 주체인 국민에게 가격결정권을 부여하고 정부가 이를 법적, 제도적으로 보장하여 농산물 가격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주적인 전국단위 품목별 농민조직의 건설이 필수적이다. 관제화되지 않은 자주적 조직이라야 생산비 보장을 위한 농민의 근본요구를 들고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며 농민을 배제한 일방적 가격결정 구조를 혁파할 수 있다. 농민들의 자주적 조직은 투쟁 속에서 건설된다. 가격폭락에 맞서 투쟁하는 농민들은 국가수매제 실시를 전면에 내걸고 해당 품목의 전국조직 건설을 통해 본격적인 대정부 투쟁에 나서야 한다. 대정부 투쟁의 핵심은 정부 정책결정과 수매가 결정에 주체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지위와 권리를 쟁취하는 것이다.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는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발의한 ‘국민기초식량보장법’이라는 이름으로 국회 농해수위 법안소위에 상정되어 있다. 지난 한해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실시를 촉구하는 지자체와 지방의회의 결의안이 전국 각지에서 빗발쳤으며, 급기야 새누리당 의원에 의해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실시 법안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이는 농산물 가격문제의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해결방안으로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가 정치권에서 폭넓게 수용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를 놓고 보더라도 통합진보당과 김선동 의원을 지키기 위한 투쟁이 대단히 중요하다 할 것이다.

다른 한편 농민들은 6.4 지방선거에 즈음하여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의 지방판이라 할 농산물 최저가격 보장 조례제정 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할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올 한해 가격문제 해결을 위한 투쟁이 농촌 현장에서, 국회에서, 선거에서 다양하게 전개될 것이다. 이 투쟁의 정점에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가 놓여 있다. 2014년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 실현을 위한 농민투쟁의 큰 발걸음을 기대해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