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시장 전면개방에 대한 정부의 거짓말


민중의 소리       


정부는 올해 쌀 관세화 유예가 종료되기 때문에 당연히 관세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쌀시장을 완전히 개방하자는 것으로 우리 국민의 생명줄과 다름없는 쌀을 초국적 곡물기업의 손아귀에 내맡기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정부는 쌀시장을 완전히 열더라도 높은 관세를 부과하게 되면 수입물량이 늘어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한 헛된 망상에 불과하다는 농업계의 폭로와 반박에 부딪치자 그렇게 내세우던 고율관세를 더 이상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다. 정부의 논리가 거짓이었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궁지에 몰린 정부가 이번에는 필리핀 사례를 들고 나왔다. 지난 4월 9일 필리핀의 쌀 협상안이 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부결되자 보도 자료까지 뿌려가면서 한국도 ‘관세화 유예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쌀 시장 전면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부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필리핀은 지난 2012년 6월 30일로 관세화 유예시점이 종료되었다. 정부 말대로라면 필리핀은 약속을 이행하지 않는 불량국가가 되어 국제적 지탄과 각종 규제, 고립, 왕따의 대상이 되어야 맞다. 하지만 그 어느 나라도 필리핀을 상대로 정치 경제 군사적 압박을 가하고 있지 않다. 협상이 타결되지 않고 있는 가운데 필리핀의 쌀시장 개방규모는 2012년 6월 30일 시점을 기준으로 그대로 묶여 있다. 한국 농민들이 주장하는 ‘현상유지’ 상태가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필리핀의 사례는 ‘관세화 유예가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끈질기게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자국의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끈질기게 싸우고 있는 필리핀의 적극적인 협상자세를 배워야 마땅한데도 되레 사실을 왜곡해 거짓말까지 하고 있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한편 정부는 필리핀이 관세화 유예조치를 지속시키기 위해 의무도입(MMA)물량을 2.3배나 늘리는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주장하는데, 이 또한 사실 왜곡이다. 그것은 필리핀의 현실에 입각한 협상전략일 따름이다. 필리핀이 의무도입 물량을 2.3배 늘린다 하더라도 전체 소비량 대비 6.2%를 넘지 않는다. 의무도입 물량이 전체 쌀 소비량의 8.3%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낮은 비율이다. 더구나 필리핀은 의무도입량을 더 늘여야만 국내 소비량을 충당할 수 있는 현실이다. 그런 현실을 은폐한 채 필리핀 정부의 응당한 협상전략을 값비싼 대가 운운하며 사실을 왜곡하는 것은 대국민 사기다.


정부는 인도의 사례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인도는 2013년 9월 국민식량보장법을 제정하였고 이 법에 따라 농민들로부터 최저지지가격 이상으로 식량을 수매하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통합진보당 김선동 의원이 입법 발의한 ‘국민기초식량보장법’의 기초농산물 국가수매제와 맥락이 같다. 이로 인해 인도는 농업보조금총액(AMS)을 초과했고, 이는 WTO 농업협정문을 명백히 위반하는 것으로 되었다. 미국의 재제 요구와 압박이 있었으나 인도 정부는 굴하지 않았다. 적극적인 통상협상을 통하여 모든 회원국들로부터 보조금 문제에 대한 ‘영구적 해결방안을 마련할 때까지 문제 삼지 않겠다’는 특별 동의를 받아냈다. 지난해 WTO 발리 각료회의가 당초의 협상시한을 하루 연장해서야 겨우 합의에 이른 속사정이 여기에 있다. 인도의 사례는 설사 WTO 협정을 위반하더라도 정부의 의지에 따라 자국의 식량주권은 충분히 지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해서는 눈을 감고 입을 다물고 있다.


우리와 같은 WTO 회원국이면서도 필리핀과 인도는 적극적인 협상으로 관세화 유예라는 현상유지를 지속하고 있으며, WTO 협정을 위반하면서까지 자국의 식량주권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런데 유독 우리 정부만 전면적인 쌀시장 개방이 불가피하다고 고아대고 있다. 스스로 국가주권을 포기하는 대단히 불온한 주장일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형평성과 호혜성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이제 한국 정부도 WTO 농업협정문이나 분쟁, 제소문제를 운운하기 전에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안전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세월호 참사로 ‘이게 나라인가?’ ‘과연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라며 온 국민이 울분에 차있다.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것은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포기하는 일이며, 국민을 포기하는 나라는 나라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