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일 경기도 의왕시 한국농어촌공사 인재개발원 강당에서 열린 WTO 쌀 관세 유예 종료 관련 공청회에 앞서 농민단체 회원들이 협상없이 쌀 개방을 선언하려는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 지난 18일 강원도 춘천시 석사동 강원도 여성가족연구원에서 열린 ‘DDA/FTA 농업분야 통상 현안 강원권 설명회’에서 김덕호(오른쪽 두번째 안경 쓴 이) 농림축산식품부 국제협력국장이 설명회를 강행하려고 하자 손팻말을 든 농민들이 김 국장 및 농식품부 관계자에게 설명회 중단을 요구하며 항의하고 있다. <한국농정신문, 한승호 기자>





[사설]쌀 관세화 협상, 투명한 정보공개가 먼저다. 



민중의 소리



정부는 6월말까지 쌀 시장개방 문제에 대한 입장을 결정하겠다고 밝혀왔다. 조만간 정부의 전면개방 입장이 공식 발표될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정부가 쌀 시장 전면개방 입장을 발표한다고 해서 상황이 그대로 종료되는 것은 아니다. 9월말까지 세계무역기구(WTO)에 양허계획서를 제출하고 다른 나라와의 복잡한 협상을 거쳐야 최종적으로 확정이 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국회의 비준동의 과정도 밟아야 한다.


그동안 정부가 공식입장을 발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쌀 개방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대두되지 않았으나 전면개방 입장을 공식 발표할 경우 쌀 개방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농민들의 저항도 더욱 높아지게 될 것이다. 쌀 개방 문제에 대한 본격적인 격돌은 이제부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최종적인 결정을 내려야 하는 시점이 다가온 지금도 많은 국민들은 여전히 쌀 시장개방 문제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그동안 정부가 의도적으로 사실관계를 왜곡하거나 핵심 쟁점을 호도해온 결과다. 이는 핵심 당사자인 농민들조차 예외가 아니다. 많은 농민들이 관세화 개방을 하게 되면 의무수입물량이 없어지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무수입물량이 없어지기 때문에 관세화로 전환하는 것이 국내 쌀 농업에 더 유리하다”는 잘못된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나 관세화로 전환하더라도 의무수입물량은 없어지지 않고 현재 상태 그대로 유지된다.


이와 같은 오해는 정부가 사실관계를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고 모호한 전문 용어를 사용하여 일방적으로 홍보해온 데 따른 것이다. 지금이라도 정부는 쌀시장을 전면개방하더라도 의무수입물량이 없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


또한 정부는 쌀시장 전면개방에 반대하는 농민단체와 전문가들이 의무수입물량을 대폭 늘리는 것을 감수하면서까지 관세화 유예조치를 연장하려 한다고 호도한다. 농민단체와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대안의 핵심은 현상유지(standing still) 전략이다. 현재의 쌀 개방 수준을 도하개발아젠다(DDA) 농업협상이 타결될 때까지 그대로 유지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정부와 개방론자들은 ‘관세화 유예 = 의무수입물량 대폭 증가’라는 허깨비를 만들어 농민단체의 주장으로 호도하고 관세화 개방을 밀어붙이는 자신들의 입장을 정당화하려 한다. 정부는 핵심 쟁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핵심 쟁점은 전면개방 할 것인가, 아니면 지금 이 상태로 현상유지 할 것인가이다.


지난 20일 쌀 개방 관련 공청회가 진행 중인 와중에 관세화를 통한 쌀시장 전면개방으로 정부 입장이 확정되었다는 언론보도가 쏟아져 나왔다. 당시 공청회에 출석한 정부관료는 쌀 개방 문제와 관련하여 관세화로 전면개방하는 것 외에 아무런 협상의 여지가 없음을 강변하고 있었다. 정부는 오로지 쌀 시장 전면 개방만을 염두에 두고 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가운데 관제화된 보수언론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의 기만적인 행태에도 불구하고 쌀 개방 문제에 대한 통상협상은 필수불가결한 절차이다.


정부 주장대로 관세화로 전환하여 쌀시장을 전면 개방하는 경우에도 관세율을 우리 마음대로 정할 수 없다. 관세율을 결정하기 위해서는 협상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더욱이 WTO 농업협정문에 따른 관세율 협상을 거치고 나면, 그 다음에는 자유무역협정(FTA) 및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기다리고 있다. 미국이 한국에 더 많은 쌀을 수출하기 위해서는 미국산 쌀에 대해 관세를 철폐하거나 대폭 낮추는 우대조치(특혜)를 요구할 것이고, 이를 위해 미국은 한미FTA 혹은 TPP를 적극 활용하려 할 것이다. 만약 미국산 쌀에 별도의 우대조치(특혜)를 부여할 경우 중국도 한중FTA와 연계하여 중국산 쌀에 대해 미국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해 올 것은 뻔한 노릇이다.


농민단체의 주장과 같이 현상유지를 선택하더라도 주요 이해당사국과 협상해야 하는 것에는 변함이 없다. 이 부분은 관세화 의무면제를 요청한 필리핀의 사례에서도 충분히 확인된다. 게다가 한미 FTA,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한중 FTA 등과 연계하여 쌀도 협상의 대상에 포함될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결국 쌀 문제는 주요 이해당사국과의 복합적인 ‘협상’을 통해 결정될 수밖에 없는 문제이다.


쌀 관세화는 우리나라가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는 카드이다. 치열한 협상 결과 모든 것이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마지막으로 선택해도 늦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세화로 전환하는 것만을 유일한 선택지로 결정하는 것은 스스로 손발을 묶고 협상에 나서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짓이다. 쌀과 연관된 여러 가지 협상이 예정되어 있거나 혹은 예상되는 상황에서 모든 가능성을 열어 놓고 고차원의 방정식을 풀어가는 고도의 해법과 치밀한 전략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생산자 농민과 쌀밥 먹는 국민 모두가 납득하고 합의할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선행되어야 함을 잊어서는 안된다.


쌀은 주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