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70% 반대하는 쌀시장 개방 강행 안된다



민중의 소리



우려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기습적으로 강행된 박근혜 정부의 쌀 관세화 선언은 일견 예상된 일이었다. 하지만 다른 것도 아닌 쌀을 이토록 가볍게,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처리하리라곤 그 누구도 생각지 못했다.


“농업을 직접 챙기겠다”던 박근혜 후보의 약속이 대통령이 된지 1년 반만에 쌀시장을 완전히 개방하겠다는 선언으로 변질되었다. “대통령직을 걸고 쌀만은 지키겠다”던 김영삼 대통령이 관세화 유예라는 이름으로 쌀시장을 개방하기 시작한지 20년만의 일이다.


농민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광화문 정부청사에 쌀이 뿌려진다. 분노한 농민들이 수확을 포기하고 논을 갈아엎는가 하면 박근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화형식의 불길이 타오른다. 새누리당을 제외한 정치권은 일제히 정부 발표에 반발하여 철회와 시정을 요구하고 있다. 농민들의 투쟁은 더욱 확산될 것이며 여야 정치권의 충돌은 보다 치열해질 것이다.


이 또한 충분히 예견된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쌀시장 개방 선언을 강행한 정부의 속셈은 무엇이겠는가? 강대함을 보여주고 싶었을 것이다. 정부는 아직 강력하며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하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정부의 계산대로라면 농민들은 자포자기할 것이며 야당은 사분오열돼 변변한 대응도 못한 채 지리멸렬하고 말 것이다. 결국 정부의 뜻대로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박근혜 정부의 몽상에 불과하다. 시장을 활짝 여는 대신 높은 관세로 빗장을 치겠다는 허무맹랑한 말장난을 믿을 사람은 없다. 긴급하게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정부의 일방적 선언에 대한 반대가 70%에 달하며, 이 가운데 56%는 쌀은 식량주권의 문제이므로 개방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인 것으로 확인됐다.


쌀 관세화 기습선언은 박근혜 정부의 초조함에서 비롯된 것이다. 국정 운영 전반에 깊이 침투한 극단적 사대주의는 외교통상 분야에서는 한없는 굴종으로, 국내정치에서는 폭압과 불통으로 표현된다. 협상조차 지레 포기하고 막무가내로 농민들을 겁박하는 박근혜 정부는 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상실감과 두려움에 떨고 있다. 겁에 질린 개가 무모하게 짖는 법이다.


박근혜 정부의 쌀 관세화 선언은 비단 쌀을 포기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문제가 아니다. 조상전래의 민족농업을 송두리째 파헤치는 것이며, 오늘날 국가주권의 핵심으로 부상한 식량주권을 팔아넘기는 매국행위의 결정판이다. 부패무능한 권력이 나라를 판다.


대통령이야 다시 뽑으면 되겠지만 무너져버린 농업을 되살리고 한번 팔아넘긴 식량주권을 다시 찾는 일이란 쉬운 일이 아니다. 영영 불가능할 수도 있다. 농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라 전체 온 국민의 문제이다. 지금 이 시각 재보궐 선거를 포함한 우리 사회 모든 분야에서 박근혜 정권을 단죄하는 투쟁에 하나같이 떨쳐나서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나라가 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