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농촌 없는 도시 없고 농민 없는 국민 없다



민중의소리  2014-09-17   

 

 


정부가 쌀시장 전면개방을 선언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정부는 “쌀시장을 완전히 열더라도 고율관세를 부과하면 국내 쌀 산업에는 아무런 피해가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하였다. 정부 발표는 2004년 쌀 재협상에 따른 의무이행 기간이 10년 만에 만료되는데 따른 것이다. 2004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결과 쌀시장에 대한 부분적 개방이 시작된 지 20년 만에 박근혜 정부가 쌀시장을 완전히 열어젖히는 조치를 단행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20년 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의 의제는 모든 농산물에 대한 ‘예외 없는 관세화’, 달리 말하면 비관세 장벽을 없애는 것이었다. 협상이 타결됨에 따라 모든 농산물에 대한 수입자유화 조치가 단행되었다. 다만 쌀에 대해서는 ‘관세화 유예’라는 이름으로 부분개방하게 되었다. 당시 김영삼 대통령은 “직을 걸고 쌀은 지키겠다”는 공약을 내걸었으나 이를 지키지 못하고 쌀시장 개방의 문을 열었고 국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4년 쌀 협상이 기간 만료됨에 따라 새로운 협상이 시작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향후 10년간 MMA(최소시장접근물량) 물량을 배로 늘려주는 조건으로 협상을 타결지었다. 쌀시장 개방 폭이 배로 늘어난 것이다. 추가적인 쌀시장 개방을 반대하는 농민들의 격렬한 저항에도 아랑곳없었다. 정부에 항의하던 두 명의 농민이 여의도 광장에서 국가공권력에 의해 희생되는 참사가 일어났다.


2014년 박근혜 정부는 쌀시장 전면개방을 선언하였다. 고율관세를 부과하면 되니 협상도 필요치 않다고 한다. 세월이 흘러 협상의 의제가 ‘예외 없는 관세화’에서 ‘예외 없는 관세철폐’를 다투는 FTA의 시대가 되었음에도 가당치도 않게 고율관세 운운하며 국민을 속이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심지어 FTA는 숙명이라는 사람들이 말이다. 필시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조차 파악이 안 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박근혜 정부는 9월 말까지 쌀시장 전면개방 입장을 WTO에 통보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반면 이를 협상조차 포기한 백기투항으로 보는 농민들은 반드시 이를 저지하겠다고 투쟁을 준비해왔다. 정부가 쌀시장 전면개방을 선언한 지 딱 두 달이 되는 9월 18일 전국의 농민들이 일제히 동시다발 농민대회를 여고 정부청사 앞 노숙농성에 들어가며, 27일 전국 농민대회와 범국민대회를 잇따라 연다.


모든 농산물이 수입 자유화되고 쌀시장 개방이 시작된 지난 20년 사이 농업 농민과 관련된 모든 통계 지표가 악화되었다. 몰락에 몰락을 거듭해온 우리 농촌은 이제 지팡이를 짚거나 유모차에 의지하지 않고서는 온전히 설 수조차 없는 지경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인구가 줄어들고 비중이 낮아졌다 해서 농업을 포기할 수는 없다. 오히려 한 나라가 온전하게 식량을 자급하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식량주권의 중요성이 날로 증대되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농업 농촌이 겪고 있는 전반적 어려움만큼 농민운동의 현실도 변화되었다. 농민들의 투쟁이 과거에 비해 폭발적이지 않고 양적으로 축소되고 있는 현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농민투쟁의 내용과 질조차 변화되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농민들은 향후 10년, 아니 한국 농업의 미래를 좌우할 중차대한 전환기적 투쟁에 나서고 있다. 농촌 없는 도시 없고 농민 없는 국민 없다. 쌀시장 전면개방 저지와 식량주권 수호를 위한 농민들의 투쟁에 더욱 굳게 연대해야 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