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쌀 전면 개방, WTO 통보로 끝이 아니다


민중의 소리    


박근혜 정부가 쌀 양허표 수정안을 WTO에 제출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관세율 513%로 우리쌀을 지켜낼 것이며, 앞으로 모든 통상 협상에서 쌀을 제외하겠다고 호언장담하지만 이를 믿는 사람은 없다. 그 말이 진심이라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약속하고, 고율관세 유지를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라는 농민들의 요구를 회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정부의 쌀 관세화 통보는 WTO 출범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됐던 쌀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완전히 허무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농촌에 만연한 농산물 가격폭락 사태는 전면적 시장개방에 따른 것이다. 이로 인해 농민들은 생산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적자영농에 신음하고 있으며, 우리 농산물은 시장에서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지난 20년 사이 절반이 넘는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하였고,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세계 최하위로 곤두박질쳤다. 이대로 간다면 마지막 남은 쌀마저 다른 농산물과 똑같은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며 그나마 쌀이 지탱해주던 식량자급률은 더욱더 곤두박질치고 말 것이다.


쌀이 무엇인가? 누천년 이어온 우리민족 전래의 주식이자 마지막까지 버텨온 한국농업의 버팀목이다. 쌀을 포기하는 것은 식량주권을 포기하는 매국행위와 다를 바 없다. 김영삼 정부는 쌀 개방을 원천적으로 막아내지 못한 결과로 대통령이 직접 사과하고 국무총리와 농림부·외무부 장관이 퇴진했다. 노무현 정부 쌀 재협상 과정에서는 두 명의 농민이 공권력에 희생되는 참극이 빚어졌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쌀을 완전히 개방하겠다고 WTO에 공식 통보했다.


정부는 협상조차 해보지 않고 우리 민족의 생명줄과 같은 쌀을 포기하고 말았다. 모든 경우의 수와 협상의 여지를 배제한 채 오직 관세화 개방만을 유일한 방안으로 강행했다. 농민이나 국민들과의 의사소통은 배제됐고 야당의 요구 역시 철저히 무시됐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만고에 없는 사대매국행위를 자행하였다. 오죽하면 농민들이 닭대가리를 들고 새누리당을 찾았겠는가?


어제 열린 국회보고에서 쌀 관세화와 관세율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발표한 것에 대해 이동필·윤상직 장관이 사과했다 한다. 천연덕스럽기 짝이 없다. 의원들의 행태 또한 다를 바 없다. 적당히 호통치고 질타하면서 결국 정부의 일방적 행위를 묵인, 동조하였다.


오늘날 쌀 문제는 박근혜 정부에 의해 자행되는 민주주의 유린의 연장선에 있다. 이제 국민들이 나설 차례다. 우리쌀을 지키는 힘은 노동자, 농민을 위시한 쌀밥 먹는 모든 소비자, 전체 국민의 단결된 의지에서 나온다. WTO 통보는 쌀 개방의 끝이 아니다. 위기에 처한 식량주권과 우리쌀을 지키기 위한 농민들의 투쟁은 쉽게 수그러들지 않을 것이다. 농민들의 투쟁을 나라의 식량주권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범국민적 연대투쟁으로 발전시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