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자 © 한국농정신문 박홍규 화백




[사설] 쌀값을 누가 책임질 것인가



민중의소리  발행시간 2014-10-15 



누런 황금 들녘에 본격적인 추수가 시작되었다. 올 쌀농사는 심각한 기상재해가 없어 순탄한 풍년농사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기 십상이다. 하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실상은 녹록치 않다. 성장기의 가뭄과 출수기의 때늦은 장마 등으로 겉보기와 다르다는 것이 농민들의 실제 평가다. 여기에 전남과 경남 지역의 극심한 목도열병 피해는 농민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


통계청은 올해 쌀생산량을 햅쌀수요량 400만톤을 약간 상회하는 418만톤으로 예상 발표했다. 지난해에 비해 1.1%가 줄어든 양이다. 단위면적당 생산량은 소폭 상승했으나 재배면적 감소폭을 따라잡지 못했다. 18만톤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대략 보름 정도를 먹을 수 있는 양이다. 세계식량기구(FAO)에서 권장하는 비축량 2개월분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극심한 흉년으로 기록된 3~4년 전에 비하면 형편이 나아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수입쌀을 빼놓고는 원활한 식량수급 대책을 세울 수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 정부가 처한 현실이다.


병충해, 기상재해, 소비량 감소, 가격 하락 등 각종 악조건 속에서 버텨온 국내 쌀농사와 농민들에게 닥친 가장 심각한 재앙은 뭐니 뭐니 해도 박근혜 정부 그 자체이다. 박근혜 정부는 UR, WTO 등의 거센 압력에도 불구하고 지난 20년간 유지해온 쌀에 대한 비관세 장벽을 완전히 철폐하고 쌀시장을 전면개방하고 말았다. 정부가 513%에 달하는 고율 관세를 유지하겠노라 호언장담하고 있고 아직 많은 협상절차와 과정이 남아있지만 정부의 쌀시장 전면개방 조치는 농민들에게는 이미 발등의 불이다.


지금 당장 올가을 쌀값이 걱정이다. 농민들은 최소한 작년 수준에서의 가격동결을 요구하고 있지만 현실은 판이하다. 정부는 공공비축미 수매 우선지급금을 지난해 시중가격보다 4~5천원 낮은 52,000원으로 책정했다. 농협은 여기에서 한술 더 떠 4만원대의 우선지급금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와 농협이 앞장서서 가격하락을 유도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농협의 4만원대 우선지급금은 전국적으로 단일한 양상으로 진행되고 있어 사전모의 또는 담합 정황이 뚜렷하다.


시세와 동떨어진 금액으로 가격에 영향을 끼치지 않겠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지만 농산물 가격지지라는 본연의 임무를 내팽개친 얄팍한 상흔에 불과하다. 쌀값폭락 걱정에 전전긍긍하는 농민들의 동태를 관망하며 홍수출하를 유도하고 최대한 낮은 가격으로 매입하겠다는 전략이다.


지금과 같은 정부 방조, 농협 주도의 쌀값하락 책동으로 쌀값이 폭락하게 되면 이후 우리의 쌀농업은 극심한 혼돈상태에 빠져들 것이 명백하다. 쌀농사로부터의 급속한 농민 이탈은 빈사상태의 한국 농업에 일파만파 치명타를 안기게 될 것이다. 정부는 이로 인한 전사회적 파장과 정치적, 재정적 부담을 각오해야 한다. 농협은 자기 꼬리를 날름날름 잘라먹다 결국 제몸뚱이를 집어삼키는 우둔한 뱀의 처지가 되고 말 것이다. 전북 고창의 한 농협은 지역 특산 고춧가루 가공공장을 운영하면서 다른 한켠에서는 식자재 전문매장을 개설하여 식당 등 대형 소비처를 상대로 중국산 고춧가루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것이 대체 무슨 짓거리인가? 전국적 범위에서 진행되고 있는 쌀값하락 책동은 고창농협의 어리석은 행태와 과연 무엇이 다른가?


청명한 가을 하늘 아래 추수하는 농민들의 근심과 한숨이 먹구름처럼 번져가고 있다. 정부와 농협을 상대로 한 농민들의 추수기 쌀투쟁이 시작되고 있다. 농민들의 요구는 최소한 작년가격이라도 보장하라는 것이다. 단돈 10원이라도 올려받자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이런 투쟁이 어디 있는가? 농협은 쌀값보장에 대한 농민들의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농민조합원과 한편이 되어 정부의 살농정책에 맞서 싸워도 모자랄 판에 농민들 등칠 궁리나 하고 있어서는 안될 일이다. 농협의 대오각성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