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올여름 릴레이 개인전 '전녹두 어서 오게나'에서 선보인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게 왜 후천개벽도일까 하며 큰 감흥 없이 그저 그렇게 봤다. 

그런데 이번 전시회에 다시 걸면서, 그리고 작품집을 준비하면서 새로운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 작품은 '집강소'와 집강소에서 내건 '폐정개혁 12개 조항'을 같이 들여다보고 그 역사적 의미와 맥락을 되새기면서 봐야 한다. 

내 경험이지만 그리하면 그림이 완전히 새롭게 보인다. 

 

박홍규, 후천개벽도 40×94cm, 목판화

집강소

전주화약 이후 호남 일대 각 고을에는 집강소가 설치되었다. 농민군은 집강소를 통해 탐관오리 징계, 신분제 폐지와 같은 반봉건적 과제를 수행해나갔다. 집강소는 우리 역사상 최초로 민중이 국가권력의 지배에서 벗어나 자치와 자립의 민주주의를 실현했던 기구다. 집강소는 본래 동학혁명 이전부터 향리에 있던 민간의 자치 기구였다. 이러한 집강소가 농민군 무력의 힘의 우위 속에서 수령의 권한을 대체하는 민중권력 기관으로 변화되었다. 집강소의 폐정개혁 12개 조항은 백성들에게 천지가 개벽하는 것과 같은 환희와 축복으로 받아들여졌다.  

 

폐정개혁 12개 조항

도인과 정부는 묵은 감정을 버리고 서정에 협력할 것. 탐관오리의 죄목을 조사하여 하나하나 엄징할 것, 횡포한 부호들을 엄징할 것, 불량한 유림과 양반들을 징벌할 것, 노비문서는 불태울 것, 칠반천인의 대우를 개선하고 백정의 평양립을 벗길 것, 청춘과부의 개가를 허용할 것, 무명잡세를 폐지할 것, 지벌을 타파하고 인재 위주로 관리를 채용할 것, 외적과 내통한 자는 엄징할 것, 공사채를 막론하고 지나간 것은 모두 무효로 할 것, 토지는 평균으로 분작하게 할 것.

 

집강소와 폐정개혁 12개 조항을 잘 읽어보시고 그림을 찬찬히 들여다보시라. 

그리고 당신의 상상력을 불어넣어보시라. 

등장하는 인물들 한 분 한 분이 어떤 의미로 새겨진 분들인지, 이 분들이 왜 하나같이 행복한 표정들인지.. 

이 분들은 집강소에서 내건 폐정개혁 12개 조항이 적힌 방을 들여다보고 있는 모양이다. 누군가 그 내용을 말해주고 있겠지..

혹시 아는가? 전라도 각 고을을 돌며 집강소의 형편을 살피고 개혁을 독려하던 전봉준 장군의 연설을 듣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세상은 바로 여러분들이 주인되는 세상이올시다."

민중이 주인되는 세상, 이것이야말로 후천개벽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