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밥쌀용 쌀 수입과 관세율 이면합의의 음모



민중의 소리



2004년 이후 우리나라는 쌀을 수입함에 있어 30% 이상을 밥쌀용으로, 나머지를 가공용으로 들여와야 했다. 그 양이 매년 늘어 40만 8천톤에 달한다. 이는 2004년 쌀 협상 결과 시장을 완전히 열지 않는 대신 받아들인 의무조항이었다. 이 협상안에 대한 국회비준 과정에서 두 명의 농민이 국가공권력에 의해 타살 당했다. 이로 하여 국내 쌀 시장은 조금만 풍년이 들어도 쌀값이 폭락하는 커다란 혼란 상태에 빠져들었다.


10년이 지난 올해 정부는 쌀시장 전면개방 방침을 WTO에 통보하면서 ‘쌀 수입량을 나라별로 배정하는 국별 쿼터와 30% 이상 밥쌀용 수입 의무규정을 삭제했다’고 밝혔다. 이는 WTO 규정에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정부가 밥쌀용 쌀 수입 예산 700억원을 별도 편성한 것이다. 이유를 따지는 의원들의 질타에 이동필 농식품부 장관은 “수입쌀 소비처가 있어 시장상황을 봐가며 결정하겠다”는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궁지에 몰린 정부는 밥쌀용과 가공용의 경계를 없애고 ‘수입양곡대’라는 명칭으로 예산을 통합했다. 하지만 “밥쌀용 쌀 수입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은 끝내 하지 않았다.


올 농사가 풍년 들어 소비량 대비 24만톤이 초과 공급되었다는 정부 발표도 있는 마당에 밥쌀용 쌀 수입 예산을 편성한 의도와 ‘시장상황’ 운운하는 이동필 장관의 말을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우리쌀이 넘쳐난다면서 피 같은 세금을 밥쌀용 쌀 수입에 투여할 하등의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에 대해 농민들은 관세율 협상에 대비한 ‘이면합의용’ 예산이라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은 우리나라에 가장 많은 밥쌀용 쌀을 수출해왔으며, 특히 미국은 자국에 할당된 쿼터량의 84.5%를 밥쌀용 쌀로 채워왔다. 미국과 중국은 향후 관세율 협상에서 핵심이 되는 협상 대상국이다. 국별 쿼터와 밥쌀용 쌀 수입 의무규정이 폐지됨으로써 이들이 누려온 기득권이 사라져버린 조건에서 513% 고율관세에 대한 거센 공격을 예상한 한국 정부가 무엇으로 감당하려 하는가? 밥쌀용 쌀 수입예산이 관세율 협상에서 상대국의 이익을 은밀하게 보장해주는 이면합의를 염두에 둔, 다름 아닌 미국과 중국을 배려한 예산임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쌀용 쌀 수입 예산은 국회 심의 과정에서 밥쌀용과 가공용 수입예산을 통합 운용하는 것으로 하여 버젓이 살아남았다. 눈 가리고 아웅 하자는 정부 전략에 국회가 놀아난 꼴이다. 밥쌀용 쌀 수입을 철저히 차단하는 것은 악화된 조건에서 그나마 국내 농업과 농민을 보호하는 핵심 조치였음에도 농해수위에서 다수를 점하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 소속 의원들은 위기에 처한 농업과 농민의 운명을 놓고 힘을 다하여 싸우지 않았다.


앞으로 벌어질 쌀 관세율 협상에서 앞으로는 지키는 척 하고 뒤로는 다 내주는 이면합의를 철저히 차단하고 정부가 약속한 513% 고율관세를 관철하는 것은 쌀 뿐만 아니라 한국농업을 지키는 데서 당면한 과제로 등장하였다. 새누리당은 쌀 관세화를 통보하면서 ‘우리쌀을 지키겠다’는 현수막을 온 나라에 내건 바 있다. 일말의 양심이라도 있다면 최소한의 협상 의지도 포기한 채 벌이는 이면합의 음모를 그만둬야 한다.


또한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농민들이 요구하고 있는 저율관세할당(TRQ)에 따른 쌀 수입물량을 투명하고 민주적으로 운용하기 위한 ‘TRQ 쌀 민관 협의기구’ 구성에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먼저 발 벗고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