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략 5년 전쯤의 일이다. 

당시 나는 송기숙 선생의 장편소설 '녹두장군'을 읽고 그 충격과 감동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괜스레 고창과 정읍 일대에 흩어져 있는 유적지를 찾아다니기도 하고 관련 책들을 뒤적거리기도 했다. 

그러던 중 이제 몇 년 후면 다시 갑오년이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이와 관련한 최초의 대화를 홍규형과 주고받았다. 

"이제 몇 년 후면 갑오년 2갑자요. 예술인으로서 형님이 큰 역할을 해야 되겠고 전농 차원에서도 뭔가 대담한 계획이 있어야지 않겄어요?"

대략 이런 이야기였다. 홍규형이 크게 공감을 해주었다.  

그 후 나는 전농에 올라가 일하게 되었고 2013년도 사업계획 속에 '갑오농민전쟁 120주년 기념사업 준비위원회' 구성 사업을 끼워 넣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한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하고 1년이 가버렸고 올해 다시 전북도연맹에서 같은 일을 맡았다. 

그리고 지금 갑오년이 저물고 있다.  

홍규형은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했다. 

'우금티를 넘어 한양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대중운동의 큰 바람을 일으켜 서울을 들썩거리게 하자는 계획은 머릿속에서만 맴돌고 말았다. 

120년 전 선조들의 노래가 가슴을 후벼 판다.  

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리..


이제 잠시 후에 홍규형을 모시고 장흥에 간다. 

동학농민혁명 120주년을 기리는 홍규형의 작품이 반향을 일으켜 농민군 최후 격전지 장흥에서 전시회가 계획되고 있다. 

충남 전시회도 모색되고 있다. 

전주 역사박물관에서는 앞으로 한 달간 전시회를 열게 되었고, 황토현 기념관에는 일부 작품을 상설 전시하는 것으로 일이 추진되고 있다. 

이런 생각이 든다. 

홍규형 목판이라도 들고 한양으로 쳐들어가야 되는 거 아니여?

갑오년이 다 가기 전에..

 

바람 앞에 서다 2014, 45 ×105cm 목판화

 

을미년 3월 29일 2014, 50 ×45cm 목판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