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태인전투를 마지막으로 농민군 부대를 해산한 전봉준 장군이 입암산성에서 하루를 머문 날이 11월 29일이라 했다. 

그 시기에 맞춰 입암산을 오른 바 있다. 그런데 중대한 오류가 있었다. 

11월 29일은 120년 전 음력 날짜다.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12월 25일이다. 

왜 이런 혼동이 있었을까? 동학농민혁명기념사업회를 비롯하여 내가 찾아본 대부분의 연표가 당시의 음력날짜를 그대로 기록하고 있으면서도 음력인지 양력인지 표기하지 않고 있다. 

반면 전국 각지에서 진행되는 이러저러한 관련 행사는 양력으로 환산해서 치루고 있다. 

그런데 지난 11월 9일 우금티 전투를 기리는 추모제가 열렸다. 어! 이 날짜가 맞나? 했으나 매년 그렇게 한다는 말을 듣고 아! 하고 말았다. 

그날 이후로 연표에 표기된 날짜가 양력으로 환산된 것이라 생각하고 무심코 지내왔다. 

하지만 우금티 행사 날짜는 당시의 음력 날짜를 그대로 양력에 대입하여 행사를 치르는 중대한 문제가 있다. 

전국 각지에서 치뤄지는 행사들을 따져보니 유독 우금티 행사만 그렇게 치르고 있다. 바로잡을 일이다. 

12월 초순 원평 구미란 전투 전적지와 무명 농민군 무덤을 찾았다가 구미란 전투 추모행사(12월 21일)를 알리는 현수막을 보고서야 잘못을 깨달았다.  

그날 이후 전봉준 장군 일행의 고난에 찬 행적을 따른답시고 늦가을 단풍에 물든 산 속을 할랑할랑 걸어다닌 일을 생각하면 낯이 달아올랐다. 


그래서 다시 나섰다. 입암산성 넘어 백양사까지.. 

때는 마침 12월 25일, 전봉준 장군이 입암산성에 들었던 날이다. 

눈이 많이 내렸으나 날이 풀려 약간의 잔설이 히끗히끗 보일 뿐 밖에서 보는 입암산의 모습은 한달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달라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실제 산에 드니 사정은 완전히 달랐다. 얼마 오르지 않아 산길은 눈에 덮혔고 능선의 눈은 무릎을 넘어 허벅지까지 차오르기 일쑤였다. 

더욱이 상당한 구간이 아무도 지나지 않은 비정규 등산로인 탓에 딱딱해진 눈이 푹푹 빠져 발목을 사정없이 잡고 늘어졌다. 

120년 전 그해 겨울에는 눈이 얼마나 왔었는지 잘 알지 못한다. 

다만 손화중 장군의 나주성 공략(음력 11월 23일)이 강추위로 인해 실패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 무렵의 혹독한 추위와 산중에 쌓였을 눈을 미루어 짐작할 따름이다. 


이번 산행의 출발지는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갓바위와 입암산성 북문 턱 밑의 상부마을 만화제에서 시작한다. 

다만 북문에서 경로를 달리하여 성곽을 타고 입암산 정상을 지나 장성새재, 불바래기 지나 순창새재를 거쳐 백암산 상왕봉. 그리고 백양사에 이르는 것으로 잡았다. 이 경로는 호남정맥에서 분기한 영산기맥을 거슬러올라 순창새재 부근에서 호남정맥과 접선한 후 상왕봉까지 정맥길을 따르는 길이 되겠다.  


산행 초입. 눈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사람 발자욱은 없고 산짐승들이 길을 내놓았다.



북문에 이르러 방향을 왼쪽으로 틀어 능선을 탄다. 

입암산 주릉을 벗어나기까지 줄곧 성곽길이며 장성새재에 이르기까지 비정규 탐방로. 

영산기맥을 종주하는 산객들만이 주로 드나드는 길로 아무도 다녀가지 않아 눈길을 헤쳐가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능선 오목한 소나무 아래가 북문, 그 너머 갓바위.


줄곧 이런 성곽길이다.



정상이라 하나 조망이 트이지도 않고 주위에 그만그만한 작은 봉우리들이 있어 과연 여기가 정상인가 싶은 생각이 든다. 



정상을 지나 조금 더 진행하니 입암산 방면 조망이 트인다. 

지금은 아무도 살지 않는 성안마을이 내려다보이고 입암산 너머 방장산이 듬직하게 솟아 있다. 

입암산 북사면을 비롯한 외벽은 깎아지른 듯한 성채 그대로인데 반해 남쪽으로는 이렇듯 펑퍼짐한 분지를 만들어놓았다. 

천혜의 요새라 할만하다. 

전봉준 장군은 산성 비장 이종록을 찾아 이 곳에서 하룻밤을 유숙하고 백양사 방면으로 향한다. 



다시 조금 더 진행하니 이번에는 내장산 쪽 조망이 터진다. 

내장산 망해봉, 삼성산, 입암산 사이에 굵고 깊은 계곡이 형성되어 있다. 



내장산 신선봉이 우뚝하고 까치봉 부근에서 뻗어내려오는 호남정맥 줄기가 뚜렷하다. 

그리고 잠시 후 내가 걸어가게 될 불바래기, 차고 오를 산등성이와 능선길이 뚜렷하게 가늠된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저 봉우리를 넘어 장성새재로 내려간다.


장성새재에 당도했다. 못들어오게 막아놓았다. 그래서인지 나가기는 쉽네.




장성새재는 정읍 시얌바대(신정리)와 장성 남창계곡을 잇는 고갯길이다. 

고갯마루는 작은 분지가 형성되어 있고 시냇물이 좔좔 흐르고 있다. 

얼마 전까지인지 알 수 없으나 능사를 지었던 듯 논의 형태가 뚜렷이 남아 있다. 마을이 있었겠고 당연히 길손들을 붙잡던 주막도 있었겠다. 

옛 문헌에는 달도 숨어드는 '월은치'로 기록되어 있다 한다. 


평퍼짐한 이 곳에서 불바래기로 가는 길을 찾지 못해 한참을 헤맸다. 

지도상으로는 남창골 쪽으로 좀 내려가다 방향을 꺾는 것으로 되어 있어 그것만 생각하다 길을 놓친 모양이다. 

안내판을 보지 못했는데 없는건지 못본건지 알 수가 없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다 산기슭을 더듬으니 불바래기로 가는 큼지막한 길이 나온다. 

남창계곡 쪽으로 내려올 것이 아니라 고갯마루에 내려서자마자 갈라지는 길을 찾는 것이 맞겠다. 



불바래기 능선, 북으로 가신 고광인 선생님이 1956년 이 부근에서 포로가 되었다 했다. 



불바래기로 가는 길은 넓직하고 순하다. 오고 간 발자국도 많다. 

자잘한 감들이 붙어 있는 키 큰 감나무를 지나니 집이 한 채 있다. 

사람이 있는거여 없는거여 갸우뚱거리며 사진 한방 박고 돌아서는데 개가 짖는다. 음, 사람이 살고 있군.. 뭐 먹고 사시나?

조선 말기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도들이 마을을 이루고 살았다 한다. 천주교 공소가 있었다 하네. 

산중인데도 이리 눈이 없는걸 보면 볕이 잘 드는 좋은 자리임에 틀림없다. 


불바래기를 지나고 나니 사람의 족적이 사라졌다. 등산객들의 것이라 생각했던 발자국들은 불바래기 마지막 남은 주민의 것이었던 모양이다. 

얼마간 길을 가니 계곡이 둘로 나뉘고 길도 사라진다. 눈은 깊고 어디로 가야 할지 자그마한 지도를 아무리 들여다봐도 가늠이 안된다. 

할 수 없이 계곡과 계곡 사이의 산등성이에 달라붙어 능선으로 치고 오른다. 저 능선에 오르면 왼쪽이든 오른쪽이든 순창새재가 나오겠지 싶었다. 

몇개의 무덤들을 지나고 산죽밭을 지나 능선에 올라보니 호남정맥에서 갓 떨어져 나온 영산기맥이다. 

 


무덤가 소나무의 기상이 장하다.


허리까지 빠지는 산죽밭을 헤쳐 나오느라 무쟈게 고생했다.



영산기맥 분기점, 표지기가 많이 붙어 있다. 

여기서부터 정맥길, 6년전 늦가을 형하고 걸었던 길이다. 형은 가고 없는 길을 혼자 걷자니 형 생각이 많이 난다. 

보고잡네. 



누군가 단 한사람이 걸어갔다. 백암산에서 내장산 방향으로..

이 한사람의 발자국이 나에게는 크나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까지 걸어왔던 단 한사람도 지나지 않았던 눈길에 비해 힘이 훨씬 덜 들었다. 

세상 일이라는게.. 그런 거로군..



순창새재에 당도했다. 

정규 등산로는 능선 안부로 나 있어 일반 등산객들은 이 길로 다니겠으나 성격 꼬장한 정맥꾼들은 굳이 능선을 타고 걸었을 것이며, 하여 정맥과 기맥이 나뉘는 분기점을 확인하고 그 많은 표지기들을 매달아놓았을 것이다. 6년 전 형도 그 길을 고집하였다. 

여기 와서 보니 불바래기 지나 순창새재에 이르는 길은 불바래기 지나자 마자 얼핏 보았던 개울 너머 '탐방로 아님'  표지판 앞에서 길을 잡아왔어야 했다는 것을 알겠다. 

하지만 오히려 잘 되었다. 힘은 들었지만 영산기맥이 시작되는 기점을 답사하고 그리하여 6년 전 함께 했던 형과의 산행을 떠올리게 되었으니..

순창새재에서 상왕봉까지는 약 2.5km, 조망이 전혀 터지지 않는다. 그저 한발한발 내딛으며 길을 축낸다.  



상왕봉이 바라다보이는 막판 고바위를 남겨두고 뱃 속을 채운다. 차가운 김밥이 더운 뱃 속을 급속히 냉각시킨다. 

산길을 타다 가장 심난한 일은 건너편 봉우리를 올려다보는 일이다. 더욱이 산행 막바지에 이르면 기력은 떨어지고 날은 저물고.. 

욕이 절로 나온다. "워매~ 저 씨벌놈으 봉우리.." 산이 좋다고 산에 와서 산에다 욕 하면 안되는데..그냥 절로 나온다. 

하지만 한발한발 내딛다보면 어느새 그 봉우리에 올라 있는 나를 본다. 

그 봉우리가 조망이 툭 트이기라도 할 양이면 "하 좋다. 내가 이 맛에 산에 온다고.." 감탄사를 연방 날린다.  

사람 몸땡이 중에 눈이 제일 게으르고 쓰잘데 없이 고급스럽다는 옛 어른들의 말씀을 새길 일이다. 

그래도 너무 구박하지는 말자. 눈이 보배니..





상왕봉 전위봉이라 해야 할까? 쌍둥이처럼 솟은 작은 암봉에 서니 내장 쪽 조망이 시원스럽게 터진다. 

내장산과 백암산 사이 틈바구니에 비집고 들어선 복흥 대가리 마을이 내려다보인다

호남정맥이 말발굽 모양으로 돌아치는 틈새기에 절묘하게 마을이 들어서 있다.  

순창에는 대가리가 두개 있다. 복흥 대가리, 풍산 대가리.. 

마을 전역에 산그림자가 드리웠다. 대가리 사람들 잘 채비 허겄다. 





상왕봉에 서니 입암산 방면 조망이 터진다.  입암산 너머 방장산이 듬직하게 버티고 있다. 

저기 저 멀리 갓바위에서부터 걸어온 길을 더듬는다. 

120년 전 이름도 성도 없이 얼어붙은 대지에 더운 피 뿌리며 쓰러져간 무수한 농민군과, 입암산에 스며들었던 전봉준 장군을 그려본다. 

그 분들의 웅지와 좌절, 고난과 역경, 그리고 마지막 순간까지 놓지 않았을 혁명에의 열정을 가슴 깊이 새겨 넣는다. 

사흘 후 피노리에서 피체된 전봉준 장군은 훗날 그 여정이 "서울의 내막을 상세히 알기 위해 상경하는 길이었다"고 말한다. 



선원은 무슨 놈의 선원. 

들어오지 말라 문 걸어놓고 속세로 나가는 문은 활짝 열어놓았다.

 행여 미끌어질세라 눈 한무데기, 얼음 한조각 없이 잘도 치워놓았다. 




하늘에는 초승달 뜨고, 백학봉은 말 없이 세상을 내려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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