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 한미FTA 4차 협상이 제주에서 열리고 이에 대응한 대규모 원정투쟁이 진행된 바 있다. 

4.3항쟁 이후 제주 사람들과 육지 사람들이 함께 치른 최대 규모의 투쟁이 아니었을까 싶다. 

신혼여행 이후 10년이 넘도록 단 한번도 제주에 갈 일이 없었던 나는 그 투쟁 이후 제주와 급격히 가까워지게 되었다.  

제주 사람들한테 또 왔냐 소리를 들을 정도였으니..


2007년 12월 전농 지도부 한 기수를 마감하는 회의를 제주에서 마치고 그날 저녁 말 한마리 잡아먹고 아침 일찍 한라산에 올랐다. 

12월 7일 새벽이다. 없어진줄 알았던 그 사진이 외장하드 속에서 발굴되었다. 

사진 속 은일이는 건강하다. 말고기 양껏 먹고 술에 취해 새벽녘에야 잠든 우리를 깨워 한라산으로 몰고 간 것도 은일이다.  

귓전에 대고 속삭이던 은일이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삼삼하다. 

"한라산 안갈꺼우꽈? 일어납서" 

잠은 퍼뜩 깼으나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간신히 자리를 털고 일어나 관음사로 향했다. 

한라산은 난생 처음길이다. 

술을 얼마나 마셨던지 백록담에 거의 이르러서야 술이 깼다. 



도연맹에서 함께 일하던 승재하고 제주사람 은일이가 함께 사진기 앞에 섰다. 

은일이는 서귀포 중문단지 인근 예래동에 살고 있는데 우리 원정투쟁단을 골프장 비밀통로를 통해 협상이 열리던 신라호텔까지 인도했던 사람이다. 

이로 하여 전북과 충북 농민투쟁단이 혐상장 가장 인근에까지 진출했는데 좀 더 과감히 싸우지 못한 것이 몹시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이처럼 팔팔했던 은일이가 막대한 음주로 지금은 건장을 잃고 말았다. 

지금도 가끔 전화질을 해댄다. 

"언제 한번 안올꺼우꽈? 바당에 가고 싶네.."

지금도 물질을 하시는 연로하신 어머니를 닮아 물질에 능하다 했다. 

그려 한번 가야지.. 너 보고 잪어서도 한번 가야 쓰겄다. 




산 아랫쪽은 살짝 이슬비가 뿌렸던 것 같다. 

뿌연 안개 속에 고도를 올릴수록 장엄한 눈꽃 세상이 펼쳐진다. 



정상 부근에 이르니 싯푸른 하늘이 나오고 구름바다가 발 아래 깔린다. 



성판악 방면에서 올라오는 산객들 뒤고 서귀포 바다가 하얗게 펼펴져 있다. 




꽁꽁 얼어붙은 백록담, 흰사슴은 보이지 않았다. 

이날 이후 몇차례 백록담에 올랐지만 날이 이처럼 좋았던 적이 한번도 없다. 




하산길은 늘 아쉽다.  



한라산 밀림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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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고잡다. 한라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