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시작된 쌀 전면개방 2라운드



민중의소리 



정부가 WTO에 통보한 쌀 관세율 513%에 대해 미국과 중국 등 5개국이 공식적으로 이의를 제기해옴에 따라 쌀시장 전면개방 2라운드가 시작되었다. 이제 한국 정부는 이의를 제기한 나라들과 하나하나 양자 협상을 진행해야 한다. 다만 협상과 별개로 정부가 WTO에 통보한 쌀 관세화에 따른 조치는 1월 1일부터 그대로 시행되게 된다. 그 주요내용은 쌀 관세율 513%, 관세율 5%가 적용되는 저율할당관세(TRQ) 물량 40만 8700톤 도입, 국별 쿼터 폐지, 발쌀용 쌀 의무수입 폐지 등이다.


지난해 정부는 농민을 비롯한 국민들의 저항과 반발에도 불구하고 쌀시장 전면개방을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새누리당은 전국 각지에 현수막을 내걸고 “관세율 513%는 반드시 지키겠다”는 대국민 약속을 한 바 있다. 농식품부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관료들 또한 관세율은 물론 “향후 모든 통상협상에서 쌀을 제외하겠다”고 약속했다. 과연 이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인가? 이제 정부는 새로운 시험대에 올라서게 됐다. 정부는 자국민이 아닌 미국, 중국 등과의 국제협상에서 그 능력을 입증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은 지난해 말 비공식 협상테이블에서 쌀 관세율이 100~200%가 적당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한다. 관세율 200%는 우리쌀과 수입쌀의 가격차이가 없어지는 수준이다. 한마디로 날로 먹겠다는 심보에 다름 아니다. 이들의 속내는 무엇일까? 이들 나라는 할당된 국별 쿼터에 따라 대량의 밥쌀용 쌀을 안정적으로 판매해오던 나라이다. 미국, 중국과 함께 이의를 제기해온 호주, 태국, 베트남 역시 국별 쿼터를 배정받아 우리나라에 쌀을 수출하던 나라들이다.


그런데 한국 정부가 제출한 관세율 513%, 국별쿼터와 밥쌀용 쌀 의무도입 규정 삭제 등은 WTO 규정을 적용한 것일 뿐이다. 무슨 대단한 결심과 결단을 발휘한 결과가 아니라 쌀시장을 전면개방 하는 데 따른 당연한 권리일 따름이다. 이에 비춰보면 한국의 쌀 관세율에 이의를 제기해온 나라들의 속셈은 쉽게 간파된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지난해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문제가 된 ‘밥쌀용 쌀수입 예산 700억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전농 등 농민단체와 야당은 향후 전개될 관세율 협상에서 미국, 중국을 달래기 위한 이면합의용 예산이라 지목하고 삭감을 요구한 바 있다. 불행히도 이 예산은 수입양곡 예산으로 통합되어 버젓이 살아남았다.


한국의 쌀 관세율에 대해 이의를 달고 나온 나라들의 속셈과 이에 대응한 한국 정부의 협상전략이 어떠할지 눈에 빤히 보인다. 실제 협상에서는 관세율 외에도 국가별 쿼터, 밥쌀용 쌀 비중, 해외원조 권리 등이 주요한 협상의 대상이 될 것이다. 정부의 순진한 예상과는 달리 미국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도 쌀 문제를 연계시키려 할 것이다. 중국도 쌀 관세율을 빌미로 다른 것의 양보를 요구할 것이다.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513% 관세율을 지키는 것을 정부에게만 맡겨두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같다.


관세율 513%를 지키기 위해서는 FTA, TPP 등 모든 통상협상에서 쌀을 제외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이를 확고히 하기 위해서는 말이 아닌 법으로 제도화되어야 한다. 쌀 관세율 관련 통상협상에 대한 국회 사전보고, 협상결과에 대한 국회 동의 절차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쌀 관세율 결정에 관한 특별법안’이 이미 국회에 발의되어 있다. 쌀의 고율관세를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에 따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이 제안하고 야당 의원들이 수용하여 발의되었다. 쌀 관세율 513%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확고하고 모든 통상협상에서 쌀을 제외하겠다는 약속이 거짓이 아니라면 정부가 이를 반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