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쌀조차 자급하지 못하는 나라가 정상인가



민중의소리 2015-02-04


쌀을 둘러싼 국내외 동향이 심상치 않다.


한국 정부가 제시한 쌀 관세율 513%에 대한 미국, 중국 등 여러 나라들의 이의제기에 따라 관련 협상이 이미 시작되었다 알려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협상 속도가 빨라진 TPP(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 정부가 4월 가입을 확정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TPP 협상이 타결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함은 그간 최대 걸림돌이었던 일본의 쌀과 쇠고기 등 농업 분야에서 상당한 협상 진전이 있었음을 의미한다. 최근 보도에 따르면 일본은 쇠고기와 돼지고기에 대한 관세를 향후 10년간 단계적으로 철폐하고, 수 만 톤에 이르는 미국산 식용쌀을 추가로 특별 수입하는데 합의했다 한다.


정부는 ‘TPP 4월 가입’ 보도에 대해 부인하고 있지만 이를 믿을 사람은 없다. 최근 FTA 전도사라 일컬어지는 한덕수 무역협회 회장이 TPP 조기가입을 역설하고 나선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한덕수는 TPP가 국내 경제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신대륙이라도 되는 양 선동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조선일보는 <재고 쌀 운동장서 썩는데 쌀농사 늘려야 하나>는 사설(2월 2일)을 통해 쌀농사에 대한 보조를 없애고 생산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더 이상 정부가 쌀 문제에 집착하는 쌀 위주의 농정을 펼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내 쌀 문제가 근원적으로 불편부당하게 도입되는 수입쌀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은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종합하면 이미 시작된 쌀 관세율 협상에서 정부는 쌀 관세 513%를 반드시 지켜내서 국내 쌀시장을 보호해야 한다. 그리고 경제도약을 위해 TPP에도 가입해야 한다. 그런데 이 둘은 양립할 수 없다. 어찌할 것인가? 둘 다 성취하기 위한 정부의 선택지는 ‘밀실협상’과 ‘이면합의’ 말고는 없다.


앞으로 지키는 척하고 뒤로 내주면 된다. 관세율 513%를 유지하되 미국, 중국 등 쌀 수출국의 핵심 이해관계가 도사린 식용쌀 쿼터를 실질적으로 보장해주면 된다. 이를 위해 식용쌀 수입예산까지 확보해놓지 않았는가? TPP와 관련해서는 미국에 대한 추가 배려가 가능하다. 이미 일본의 선례가 있다.


문제는 국내에 있다. 지난해 쌀 투쟁을 통해 농민들과 도시 소비자들의 연대기구인 <식량주권 과 먹거리 안전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까지 구성되어 있는 마당에 농민들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고 쌀 문제에 관한 국민적 여론을 돌파하기가 쉽지 않다. 한덕수의 TPP 선동과 조선일보의 사설 도발은 진퇴양난에 처한 박근혜 정부를 구하기 위한 어설픈 양동작전에 다름 아니다.


이미 무수히 많은 나라들과 FTA를 체결한 한국이 TPP 가입을 통해 얻을 것이 무엇인가? 오히려 값비싼 가입비 지불을 강요당할 뿐이다. 그 핵심에 쌀이 있다. TPP가 경제 신대륙이라는 한덕수의 선동은 철지난 부채질이다.


조선일보는 “쌀 하나 자급한다고 해서 식량 문제가 해결되는 시대는 이미 끝났다”고 말한다.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주식인 쌀조차 자급하지 못하는 대한민국이 과연 정상적인 나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