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史曰 朝鮮音潮仙 因仙水爲名 又云鮮明也 地在東表日先明 故曰朝鮮

《동사》에 이르기를 조선(潮仙)이라 소리나는 ‘朝鮮’은 선수(仙水)로 말미암아 이름을 삼음이요

또한 이르기를 선명(鮮明)한 것이라, 땅이 동쪽에 있어 해가 뜰 때 먼저 밝아오므로 조선이라 한다 하였다.


山經云 崑崙一枝 行大漠之南東 爲醫巫閭山 自此大斷 爲遼東之野

《산해경》에 이르기를 곤륜의 한 갈래가 대막(넓은 사막)의 남동으로 가 의무려산이 되고 이로부터 크게 끊어져 요동 벌판이 되었다.


漉野起爲白頭山 爲朝鮮山脈之祖 山有三層 高二百里 橫亘千里 其巓有潭 名謂達門 周八百里 南流爲鴨綠 東分爲豆滿

마른 벌이 일어나 백두산이 되니 조선산맥의 시조다. 산은 셋으로 층졌는데 높이는 200리, 가로는 1000리에 걸쳐 있으며,

그 산꼭대기에는 못이 있어 이름은 달문이라 하고 둘레는 800리이며, 남으로 흘러 압록이 되고 동으로 나뉘어 두만이 된다.


山自分水嶺 南北逶迤 爲燕脂峰小白山雪寒等嶺 鐵嶺一枝 東南走起 爲道峰三角 而漢水經其中

산은 물을 가르며 남북으로 구불구불 이어져 연지봉 소백산 설한 등의 재가 되고,

철령의 한 갈래가 동과 남으로 달려 일어나 도봉과 삼각이 되니 한수가 그 가운데를 지난다.


蓋我東邦域 三面際海 一隅連陸 周一萬九百二十里 凡三海沿一百二十八邑 總八千四十三里

우리 동방 강역은 3면이 바다에 접하고 한 모퉁이가 육지에 이어져 있으며, 둘레는 10920리이며, 세 바다 연안은 도합 128읍에 총 8043리이다.


兩江沿總二千八百八十七里 鴨綠江沿二千四十三里 豆滿江沿八百四十四里 其延袤廣狹 北自慶興 南至機張 三千六百一十五里

두 강의 연안은 총 2887리로, 압록강 연안은 2043리, 두만강 연안은 844리이며, 그 길이와 너비는 북쪽 경흥부터 남쪽 기장까지 3615리,


東自機張 西至海南 一千八十里 南自海南 北至通津 一千六百六十二里 西北自義州 南至通津 一千六百八十六里

동쪽 기장에서 서쪽 해남까지 1080리, 남쪽 해남에서 북쪽 통진까지 1662리, 서북 의주에서 남쪽 통진까지 1686리이다.


漢陽處其中 輻湊山河 經絡星緯 野分箕尾 析木之次 北鎭華山 南帶漢江 左控關嶺 右環渤海

한양은 그 가운데 있어 이를 중심으로 모인 산하가 경락과 성위를 이루며 벌판은 기와 미를 나눠 석목의 위차하니

북으로 화산을 누르고 남으로 한강을 두르고 좌로 관령을 당기고 우로 발해를 에운다.

 

域民以太平之仁 習俗有箕壇之化 況均四方來廷之道 正亥坐南面之位 實猶周之洛陽

非東西關 三京所可比也 其爲天府金城 誠億萬世無疆之休也 歟嗚呼偉哉

백성은 태평의 인으로써 습속에 기자 단군의 교화 있어 사방에 내정의 도가 고루 미치고,

정해좌 남면지위가 실로 주나라 낙양과 같으니, 동서관 삼경이 가히 비할 바가 아니다.

그 천부 금성이 되어 삼가 억만세 무강지휴라, 아아 훌륭하도다.




백두산 장군봉에서 지리산 천왕봉에 이르기까지 물을 건너지 않고 오직 산길로만 이어진 줄기가 있으니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 군데군데에서 가지친 줄기가 한반도 구석구석에 미치니 1정간 13정맥이다. 

물을 건너지 않고 오로지 산으로만 이어지는 줄기야말로 말 그대로의 산줄기, 산맥이 된다. 

이것이 우리 조상들의 전통적인 산맥 개념인 바, 여기에서 핵심은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이다. 

산자분수령, '산은 스스로 물을 가른다'. '산으로부터(산으로 하여) 물이 갈린다', '산이 곧 분수령' 등으로 해석할 수 있겠다. 

'분수령'은 강의 유역을 나누는 경계, 즉 산맥의 봉우리를 이은 선에 해당한다. 

때문에 함부로 물을 건너거나 강에 의해 줄기가 잘린다면 온전한 산맥이라 할 수 없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산은 물을 낳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 

강물이 끊이지 않고 바다에 이르듯 섬을 제외한 우리나라의 모든 산은 강에 의해 끊기는 일 없이 백두산에 맥을 잇대고 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는 방장산에 이르는 산줄기만 잘 더듬어 찾아내면 손쉽게 백두산 가는 길을 찾을 수 있다.  

영산기맥에 속한 방장산은 입암산 지나 순창새재에서 호남정맥에 닿고 호남정맥은 장수 장안산을 지나 무령고개 넘어 영취산에서 백두대간에 닿게 된다. 

때로는 논두렁 밭두렁 밟고 동네 고샅길을 지날수도 있겠으나 물을 건너지 않고 백두산에 이르는 길은 반드시 있고 그 길은 단 하나다.  


백두대간에 꽂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80년대 말 일제가 날조한 산맥에 의해 왜곡되고 잊혀진 우리 고유의 산줄기들이 고서점의 먼지를 털고 세상에 튀어나왔다. 선구적 산악인들이 몸소 그 실체를 입증해냈다.  민족사가 복원되고 민족정기가 되살아나는 듯한 희열이 있었다.  

나도 언젠가 그 길을 가리라 늘 마음먹고 있었다. 이제 비로소 그 길에 발을 내민다. 

개척 당시의 가시밭 덤불길은 이제 고속도로처럼 잘 닦여 있다 한다. 

하지만 대간길은 아직 미완의 길이자 상처 투성이다. 

분단 철책이 걷히지 않는 한 우리는 대간길을 걸어 백두산에 다다를 수 없으며, 지금 이 순간에도 무지몽매한 권력과 탐욕스런 자본이 백두대간을 제멋대로 갉아먹고 있다. 

민족사의 비극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백두대간 굽이굽이마다 우리 민족사의 곡절과 민중들의 희로애락이 고스란히 아로새겨져 있다. 

반토막일지언정 그 길을 조용히 그리고 신속하게 댕겨오고자 한다.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올해 안에는 마무리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