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사를 넘나드는 병상을 박차고 나선 형은 2008년 5월 대간 종주를 시작하여 3박 4일 만에 육십령에 도달하였고, 일주일 후 한걸음에 덕유산을 벗어나는 괴력을 발휘했다.  

나는 날수로 닷새, 기간으로는 한 달이 걸렸고 이제 이틀간 덕유 주릉을 밟아 무풍(소사고개)까지 갈 계획을 세웠다. 

형은 대간 종주 이후 온 나라 산줄기를 부리나케 답파하고 마라톤에 심취하는가 싶더니 홀연 세상을 뜨고 말았다. 

철인 같은 모습으로 변모하여 제일 오래 살겠다 싶었는데 순서고 예의고 싹 다 무시해버리고 형제 간들 중에 가장 먼저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났다. 

작년 8월이었다. 내 인생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던 형이다. 형은 거종이고 나는 대종이다. 

지나오는 대간길에서 행여나 형의 흔적이 있나 더듬거렸으나 부질없는 일.. 세월이 많이 흘렀다. 

 

형 말작시나 나도 이제 백두대간 일병이다. 가는 걸음에 탄력이 붙는다. 

2월 24일, 육십령에서 길을 나서는 오늘은 삿갓골재까지 삼십 리 정도만 가면 되기에 다소 느긋하게 길을 나선다.

지리산 종주에 함께 했던 순창 농민 정룡이가 함께 한다.  

함양 상림 역사공원 조병갑 선정비가 어떤 꼴로 서 있나 확인하고 괘관산 자락 남도부(하준수) 사령관 생가를 답사한 후 육십령에 서니 열 시가 넘었다. 

 

 

육십령에서 할미봉에 이르는 구간은 편안한 뒷동산 같은 산길이다. 

조망 잘 터지는 할미봉에서 지나온 길을 더듬어본다. 

멀리 괘관산과 백운산 사이로 천왕봉이 보인다. 

 

 

가야 할 길, 장수덕유와 남덕유를 바라본다. 

남사면의 덕유산은 봄이 오고 있는 듯 눈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날씨 또한 푸근하다. 

 

 

할미봉을 지난 산길에서 대포 바위(일명 X 바위)를 본다. 

새 잡는 준망원렌즈는 무겁게 지고 올라와 여기서 단 한번 써보고 말았다.  

다음에는 반드시 내려놓고 오겠노라고 마음먹는다. 

 

장수덕유와 남덕유

 

장수덕유(서봉)에 서니 지리 주릉이 한눈에 잡힌다. 

서봉이라 새겨진 표지석은 이제 아예 눈에 안 띈다. 

나도 굳이 장수덕유라 이름 부르고 싶다. 

장수덕유를 지난 산길은 갑작스레 완연한 겨울산으로 변모한다. 

아이젠을 차고도 걸음이 조심스럽다. 

 

 

 

남덕유 정상에서 사방을 둘러본다. 동서남북으로 막힘이 없다. 

함양 서상면의 좁다란 들판 뒤로 백운산과 지리 주릉이 원근감을 버리고 바짝 붙어 있다. 

 

 

덕유 주릉을 다시 한번 눈으로 더듬고..

 

 

순창 농민 김정룡은 아직 여유가 있어 보이나 이미 외약 물팍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고생스레 대피소에 당도했으나 회복되지 않아 이튿날 안타까움을 뒤로하고 황점으로 하산하였다.  

 

 

산 아래 황점마을과 월성마을, 그 뒤로 버티고 선 금원산, 기백산이 보인다. 

 

 

삿갓봉 가는 길, 이것이 긴가? 아닌가? 더 가나? 하며 비슷한 봉우리 몇 개를 지나치거나 넘어야 한다. 

마치 양파껍질 벗기듯 까도 까도 나오는 봉우리가 힘겨워질 즈음에야 삿갓봉에 도달할 수 있었다.  

 

 

물팍 아픈 정룡이는 산장으로 직행하고 나는 삿갓봉에서 일몰 맞을 준비를 한다.

 

 

남덕유 동짝으로 지리 주릉이 아스라하고..

 

 

동짝 하늘까지 괜스레 불그스레 달아오르니 저 멀리 고개 내민 향적봉이 수줍어 보인다. 

봉이 아닌 산 이름 자를 붙인 무룡산이 주봉인 향적봉을 압도한다.  

 

 

해는 장수덕유 서짝으로 넘어간다. 

정확히 6시 22분 꼴까닥, 산으로 지는 해라 일찍 지지 않을까 싶었는데 군산 앞바다 일몰 시각과 정확히 일치하였다.  

 

 

지리산 한번 땡겨보고..

 

 

산 아래 동네에 불 들어온다. 

발걸음을 재촉하니 대피소까지 채 15분이 걸리지 않는다. 

 

백두대간육십령삿갓골재1박소사고개.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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