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3일 밤늦게 도착한 소사고개 아래 하늘땅 정보화마을, 정보화마을 운영위원장 정도화 농민과 접선한다. 

든든한 빽을 둔 덕에 공짜라 좋긴 한데 겨우내 한 번도 손님이 들지 않았다는 방은 좀처럼 따뜻해지지 않았다. 

보일러에 문제가 있는 듯.. 방바닥을 지나는 호스에 공기가 들어간 모양이다. 

데워진 물이 기름보일러와 전기보일러 사이에서만 맴도느라 방바닥을 데우지 못한다. 그저 미적지근한 정도.

보일러실을 몇 번 들락거렸으나 해결하지 못했다. 

내리던 눈이 그치고 보름을 앞둔 달은 휘영청 밝은데 산줄기를 훑어내리는 매서운 바람이 밤을 새워 불었다.  

 

새벽녘에야 눈을 붙여 늦잠을 자고 말았다. 서둘러 소사고개 탑선 슈퍼로 간다. 차를 세울 곳이 마땅치 않다. 

길가에 세우고 앞바퀴 위에 열쇠를 올려두고 길을 나선다. 

밤새 불던 바람은 날이 밝아오는데도 잠들지 않는다. 지리산 종주 때만큼이나 춥다. 

 

 

 

 

초저녁 내린 눈이 얄포름하게 쌓인 고랭지밭을 지난다. 대간을 밀어 일군 밭에 군데군데 수확하지 않는 배추뜰긍이 발에 차인다. 

오름길의 대덕산은 낮고 유순해 보이는 반면 삼봉산은 기세가 등등하다. 

 

 

 

이미 높이 솟은 해, 멀리 가야산 봉우리가 도드라진다. 

초점산(삼도봉) 부근에서 장장 100km가 넘는 합천 방향 수도기맥이 분기해나간다. 

 

 

전북 무주, 경남 거창, 경북 김천이 경계를 이루는 초점산 삼도봉. 

초점산이라는 산 이름이 있긴 하나 크게 대덕산 덩어리에 딸린 봉우리라 해도 무방할 듯하다. 

 

대덕산, 정상 주변에 눈꽃이 피었다.

 

 

건너편 삼봉산과의 사이에 드넓은 고원이 형성되어 있다. 

삼봉산이 무주 방향으로 늘어뜨린 산줄기가 오히려 굵직하고 거창과 경계를 이루는 대간 능선은 고랭지밭 사이로 힘겹게 이어진다. 

대간 좌우 거창과 무주의 경계는 모호할뿐더러 무의미해 보일 정도다. 

이런 탓에 도 경계 또한 정확히 대간 줄기를 따르지 않고 있다. 탑선(소사) 마을은 대간 경계를 넘어 무풍 쪽에 있으면서 거창군에 속해 있다. 

 

 

멀리 구름을 인 향적봉이 보이고 삼봉산이 내려뜨린 잘 발달된 능선이 한눈에 잡힌다.  

이 능선은 설천면과 경계를 이루며 나제통문에 이른다. 

거창을 넘는 소사고개 양쪽으로 형성된 드넓은 분지와 무주 방면으로 형성된 굵은 산줄기를 보노라니 무풍이 과거 백제가 아닌 신라 땅이었던 이유가 짐작되고도 남는다. 

신라 땅 무산현은 고려시대 '무풍'이 되고 백제땅 적천현은 고려시대 '주계'가 되었으며, 조선 태종대에 무풍과 주계를 통합하여 오늘날 무주군이 되었다. 

무풍은 십승지의 땅이다. 예서 보니 그럴듯해 보인다. 

무풍 현내리에 조선말 민 씨 척족 민병석이 건립한 99칸짜리 궁실(명례궁)이 있었다. 

난세의 피난처로 삼고자 건립했으며 민비에게 쌀을 상납하여 명례궁으로 개명하고 행궁으로 인정받았으나 일제 강점기 민병석의 차지가 되었다. 

지금은 이리저리 매각되고 뜯겨나가 흔적도 없으며 다만 그 목재만이 한켠에 쌓여 복원을 바라는 민원의 소재가 되고 있다 한다. 

 

대덕산

 

 

가야 할 길, 저 멀리 민주지산(맨 왼쪽 봉우리), 석기봉, 삼도봉. 

삼도봉 지나 황악산 방면 대간 줄기가 가늠된다.  

오늘은 삼도봉 600미터 전방까지 가서 해인리 방향으로 내려가 해인 산장에서 묵을 작정이다.  

 

 

하얀 눈꽃이 만발하였다. 흡사 꿈에서 보는 매화꽃 같다. 

 

 

눈이 많다. 눈이 신발을 넘어 양말을 탐한다. 

행전을 챙겼다가 차에다 두고 왔는데 후회막급, 별 수 없이 도움을 요청한다. 차 열쇠를 바퀴 위에 두고 와서 다행이다. 

 

 

 

행전을 챙겨 덕산재로 달려온 무풍 농민 정도화, 무주군 농민회 회장을 역임한 바 있는 농민운동가이자 하늘땅 마을 운영위원장이다. 

소사고개 바로 아랫동네 부흥동에 살고 있다. 

나하고는 동갑인데 산중에서 험하게 농사지어서 그런지 나보다 헐 나이 들어 보인다. 

행전을 챙겨 들고 다시 길을 나선다.  

 

 

 

저 멀리 삼도봉을 향하여.. 

 

 

 

비자나무 비슷한데 무슨 나무인지 모르겠더라.. 꽤 거대했다. 

 

 

부항령

 

 

부항령, 김천 부항면과 무풍을 잇는다. 고개 아래 터널이 뚫려 있다. 

 

 

부항령에서 점심을 해결한다. 

으.. 니가 콩나물국밥이면 나는 어린 왕자다. 

그래도 국내산 쌀을 사용했다니 기특하다. 

농협 하나로마트에서도 수입산 쌀로 만든 갖가지 상품들이 판매되는 세상이다. 

 

 

 

오가는 사람 없는 깊은 산중, 요사이 산 아래 내린 비가 산중에는 신설로 쌓여 있다. 

그 누구도 지나가지 않은 눈길. 

눈에 묻혀 사라진 길을 열고 백두대간을 간다. 

 

백수리산(1,034m)

 

 

사진 속 대간길은 고요하기 짝이 없는데 실상은 영판 다르다. 

무지막지한 바람이 분다. 

휘날리는 표지기, 바람에 흩어지는 눈가루 정도가 사진으로 잡아낼 수 있는 전부, 현장의 진실과 사진 속 풍경은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실상은 비행기 폭격장에 들어앉아 있는 느낌, 폭격기들이 머리 위를 맴도는 듯한 착각 속에 산길을 간다. 

이따금 거센 바람이 능선을 할퀼 때면 흡사 폭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몸이 휘청거린다. 

"혼은 영혼과 함께 날아가고 백은 육체와 함께 흩어진다", 하루 점드락 혼비백산. 

지리산 이후 잘 꺼내 입지 않던 바람막이 외투를 하루 종일 입고 다녀야 했다.  

 

 

지나온 길을 돌아본다. 

대덕산과 덕산재 넘어 밟아온 산줄기, 그 너머 삼도봉에서 가지 쳐나간 수도기맥 산줄기, 우뚝 솟은 가야산 봉우리가 보인다. 

덕산재 지난 대간길은 이리저리 휘감아 돌며 굴곡 심하게 이어진다.  

곧장 짓쳐온다면 머지않을 길을 굽이굽이 돌고 돈다. 

굴곡 없이 곧게 뻗은 대간길은 상상하기 힘들뿐더러 재미도 없을 것이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 곡절 없고 부침 없는 인생이 어디 있겠으며 설령 그런 생이 있다면 무신 재미가 있겠는가. 

숱한 봉우리를 넘으며 드는 생각, 걸음마다 막아서는 봉우리 앞에 주저앉았다면 내 여기까지 왔겠는가? 

한발 한발 내딛는 재미에 여기까지 왔고 그 속에서 깨달은 바는 능히 넘지 못할 시련은 없다는 것이다. 

 

 

다 와간다. 오른짝 끝 삼도봉 직전 계곡으로 떨어지면 꿈결처럼 따뜻한 잠자리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방 따땃하게 데워놓으시라 미리 전화해놓았다.

 

바로 여기 해인산장.

 

 

가파른 내리막길 500여 미터에 시멘트 포장도로 1.5km, 한 시간 남짓 걸어내려가니 마을이 나오고 초입에 해인 산장이 있다. 

대보름 동계 추리다 왔다는 주인아저씨가 차려준 밥을 먹고 방값을 치른다. 

방값, 밥값 합쳐 17,000원.. 대간길 걷는 사람들은 특별 우대해서 싸게 받는다 하신다. 

주인아저씨는 7년 전 형이 묵어가며 사진에 담아놓은 사람 좋은 모습 그대로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나무 타는 냄새 향긋한 뜨끈한 방에 들어 일찌감치 몸을 누인다. 

 

 

백두대간소사고개해인산장.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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