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동에서 닭을 많이 키우는 수호 형이 부탁한 청미가 준비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청미는 덜 익은 푸른 나락이 도정 과정에서 색체선별기에 의해 걸러진 것이다. 

일종의 싸레기라 할 수 있겠는데 좀 다르다. 보조 닭 모이로 쓰려나 보다. 

좌우튼 잘 되얐다. 떡 본 김에 제사 지내더라고 청미 2톤가량을 싣고 영동으로 달려간다. 

노래가 절로 나온다. 

팔팔에 곰배팔 구구 닭 모시.. 

 

 

3월 12일, 수호 형 댁에서 자고 이른 아침 추풍령으로.. 

추풍령에 관한 이러저러한 얘기를 듣는다. 

수호 형은 돌아가고 금세 금산에 올랐다. 꽃샘바람이 매섭게 몰아친다. 

추풍령면 소재지를 내려다본다. 추풍령면은 옛 황금면을 91년도 개명해서 오늘에 이른다. 

과거 번성했던 추풍령을 그려본다.

 

그 옛날 일본과 조선을 왕래하는 사신이 추풍령을 경유했다 하나 문경새재에 비해 한가한 길이었다 한다. 

그러던 것이 일제강점기 경부선 철도가 깔리고 부산 가는 길목 가장 고지대인 추풍령역에서 증기기관차를 교체하고 물을 채우는 등 중요한 일을 하게 되면서 추풍령의 영화가 시작되었다. 충북에서 가장 먼저 우체국이 세워졌다 하니.. 

여기에 박정희 시대 경부고속도로가 뚫리고 추풍령 휴게소가 세워지면서 명성을 이어간다. 

고개 영마루도 가늠하기 힘든 추풍령이 높고 험한 고개로 인식되는 것은 이런 사연에 더해 구름도 쉬어가고 새들도 쉬어간다는 노랫말이 덧씌워진 탓이다. 

 

경북 김천 땅에 있는 추풍령 휴게소는 박정희와 관련된 꽤 특이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와 일본 육사, 해방 후 조선 경비 사관학교(육사 전신)를 두루 거쳤는데 추풍령 휴게소를 조선 경비 사관학교 동기인 이상국에게 선사하고 휴게소에 대통령 전용공간을 두고 늘 드나들었다. 휴게소에는 지금도 박정희 의자가 보관되어 있다. 

또한 박근혜가 공주 시절 자주 드나들어 거닐던 '근혜 숲'이 휴게소 뒤편 어딘가에 있다 한다. 

(스토리의 보고 김천을 이야기하다 : 추풍령 휴게소, 영남일보)

휴게소 운영권은 세습되어 여전히 이상국 일가에 부를 쌓아주고 있을 것이고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 

단물은 엄한 놈들이 쪽 빨아가 버린 추풍령은 이제 쭉정이만 남았다. 

 

한홍구의 역사 이야기 기회주의 청년 박정희! 를 참고하시라. 

 

 

 

금산은 반쪽짜리 산이다. 일제강점기 채석장이 된 금산은 해방 이후에도 계속 허물어지다가 최근에야 폭약 소리가 멎었다.

그 사이 딱 반쪽이 사라졌다. 일제가 금산을 허물기 시작한 것은 대간의 정기를 끊기 위함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일본 놈들은 그랬다 치고 우리는 뭔가? 아슬아슬하게 능선을 남기고 위태롭게 서 있는 금산을 보며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을 생각한다. 

탐욕뿐인 자본의 안중에는 민족이고 정기고 없다.  

 

 

 

 

추풍령 지나 상주로 향하는 대간길은 낮고 순하지만 사람을 뺑뺑이 돌린다. 

추풍령에서 큰재까지 직선거리 8.5km를 산길 19km로 늘어 빼놓았다. 

저기만 올라가면 조망이 터지겠다 생각하는 찰나 눈 앞에 있는 묘함산 봉우리를 두고 갑작스레 방향을 틀어 홱 잡아 돈다. 

대간길에서 지루박 스텝을 밟는다.   

 

 

북방부가 개설한 임도와 산길을 번갈아타며 대간을 이어간다. 

지나온 길 가성산, 장군봉, 눌의산이 눈에 잡힌다. 

 

 

 

이 집안 대간 기운 지대로 받아가겄다. 

 

 

여덟마지기고개, 성황댕이고개 등의 다른 이름이 있는 작점고개. 

김천시는 문 말하고 연관이 있는가? 가는 데마다 천마총에서 튀어나온 듯한 말 그림을 붙여놨다. 

 

 

처음으로 지팡이 짚고 길을 나섰다. 

속도 내는 데는 그만이네. 

눈이 사라진 탓도 있지만 지팡이를 들고 가니 괴춤에 손 찔러 넣고 할랑할랑 걷던 걸음이 휘적휘적 새 쫓는 걸음이 된다. 

추풍령에서 큰재에 이르는 19km 구간을 한나절 짧은 산행으로 마감하게 한 1등 공신이다. 

돌아가면 이 지팡이는 장기 임대하는 걸로 교섭해봐야겠다. 

 

 

이런 작은 고갯길을 많이 만난다.

금산에 몰아치던 꽃샘바람은 이제 살랑거리는 봄바람이 되어간다. 

고갯길 따라 내려가다 보면 계곡 근처 노루귀, 복수초 피어있음 직한데 능선에는 아직 아무런 꽃도 보이지 않는다.  

 

 

조망 터지지 않는 헬기장 넓은 용문산 지나..

 

 

지팡이 짚고 휘적휘적 산길을 내질러 간다. 

 

 

드디어 조망이 터진다. 왼짝으로 황악산부터 가성산, 눌의산 거쳐 지나온 산길이 가늠된다. 

반토막난 처연한 몰골의 금산은 다른 산이 가려주고 있다. 

 

 

국수봉 직전의 작은 조망대에 섰다. 

미약해진 대간 줄기를 넘어 신라 땅이 침범하기 시작한다. 

외약짝은 영동, 오른짝은 상주 땅.. 

오른짝 가상으로 흐르는 대간 줄기보다 오히려 굵직한 학무산, 지장산 줄기가 도경계를 대신한다.

양짝 동네 사람들은 서로 왕래가 얼마나 있을까? 궁금하다. 

저 아래에는 한동네나 다름없는데 반으로 나뉘어 도가 갈리는 마을도 있다. 

 

 

 

국수, 물을 움켜쥔다. 분수령의 의미를 달리 표현한 걸로 해석한다. 

웅이(곰귀)산, 곰산 등의 다른 이름이 있다.

 

 

 

큰재로 오르내리는 길이 보이고 이제 대간 양편이 온전한 신라 땅, 상주에 본격적으로 접어들었다. 

 

 

나를 태우러 온 영동 청년 농사꾼 차가 보인다. 

대간 주변 전국 각처에서 땀 흘리는 농사꾼 동지들 덕에 참 호화스럽게 대간을 탄다.  

상주 땅을 한참 밟고 내려가 백화산 줄기를 넘어야 영동 땅이 나온다. 

 

 

 

 

노근리 학살현장을 지난다. 

노근리는 영동읍에서 추풍령으로 향하는 국도변에 있다. 

미군은 노근리 일대와 경부선 철도가 지나는 저 짧은 굴다리에서 비행기 폭격, 기총사격 등의 방법으로 수백 명의 양민을 집단 학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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