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릉도 2박3일은 다소 짧은 감이 있다. 

어느새 돌아가야 할 날이 밝아온다. 

오늘은 일행과 떨어져 저동에서 섬목까지 걷기로 한다. 

일주도로가 아직 없는 울릉도, 걷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구간이다.

이 구간에는 내수전에서 석포에 이르는 옛길이 포함되어 있다. 

어제 행남등대 부근에서 설핏 스쳐지난 청띠제비나비가 눈에 삼삼하다. 

산과 마을을 지나며 할랑할랑 걷다보면 청띠제비나비는 물론 울릉범부전나비도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하는 기대가 있다. 


울릉도의 아침은 고창보다 20분이 빠르다. 

내수전 일출전망대를 목표로 길을 나섰으나 거리타산이 잘못되어 내수전마을 입구 바닷가에서 해를 맞았다.  

해는 죽도와 북저바위 사이에서 떠올랐다. 

언제나 올라올까 싶게 동짝 하늘만 붉히더니 떠오르자마자 하늘로 담박질친다. 



북저바위 일출


저동항 방파제에서 해를 본 친구들이 북저바위와 어우러진 멋진 일출사진을 보내왔다. 

북저바위가 해돋이 명소라더니 이를 두고 하는 말인 모양이다. 


섬참새

 

다시 길을 나서는데 한무리의 섬참새들이 발목을 잡는다. 

섬참새는 울릉도에서 흔하게 번식하고 번식기가 지나고 나면 울릉도를 떠나 경북 해안지대에서 월동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빛이 미약하고 거리를 주지 않아 150mm로 담는데는 한계가 있다. 



바다를 버리고 숲으로 접어드는 포장길을 한참을 걸어올랐다. 

2km 남짓의 지루하고 땀나는 길이다. 한여름에는 차를 이용해 오르는 것이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겠다. 

오르는 내내 낮고 음울하게 울어대는 흑비둘기를 찾아 솦 속을 들여다보지만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이따금 계곡을 가로질러 날아가는 뒷꽁무늬만 바라볼 뿐이다.  


드디어 찻길이 끊겼다. 우선 내수전 일출전망대로 향한다. 

다시 돌아내려와야 하는 길이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기껏 왕복 800미터에 지나지 않는다. 



저동항



북저바위



성인봉을 중심으로 좌우의 날개를 활짝 펴고 있다. 

관음도와 죽도도 내려다보이지만 나무들이 살짝 가리고 있다. 

전망대에서의 조망이 생각보다 시원하지 않다. 


다시 돌아와 석포 방향으로 길을 잡아 나선다. 

약간의 포장길이 더 이어지나 이내 차가 다닐 수 없는 산길로 접어든다. 

내수전에서 석포에 이르는 옛길(약 3km)이 시작된 것이다. 



섬초롱




여우꼬리사초



섬단풍




공작고사리


성인봉을 등반한 경우 내수전에서 석포에 이르는 옛길은 그저 평범한 숲길과 다를 바 없겠다.

성인봉 등반길의 축소판이랄까.. 그리 높지 않은 산을 두개정도 넘는다 보면 무리가 없다. 

숲에는 울릉도 특산식물들이 널려있다 하나 보는 눈이 짧아 알아보기 어렵고 더구나 꽃이 귀한 계절이다보니 심심하기도 하다. 

 


다시 포장길이 나타났다. 흑염소 한마리 그늘에 숨어 나를 쳐다본다. 

사람으로 치면 중딩정도 되겠다. 



석포마을 버스종점에서 내려다보는 죽도는 영락없이 하늘을 향해 누운 거대한 와불이다. 

그래서인지 자꾸 이 섬을 관음도라 착각하게 된다. 사람 하나 살고 있다 한다. 



조선시대 독도지킴이 안용복 기념관을 지나 좀 더 내려가니 송곳봉이 보이기 시작하고 바다에는 코끼리바위가 떠 있다. 

교회도 있고 경로당도 있는 석포마을을 지나면 본격적인 내리막길이다. 

청띠제비나비 홀연히 나타났다 미련없이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사진기 들고 이리저리 뛰어보지만 매번 헛탕만 친다. 


얼마간 내려가다 석포 전망대로 오르는 길(왕복 1km)로 접어든다. 

역시 되돌아와야 하는 길이지만 지나칱 수 없다. 

러일전쟁 당시 일본군이 러시아 함대를 감시하던 망루가 있던 곳이다.  

일본은 동해해전에서 러시아 발틱함대를 격파하고 전쟁에서 승리했다.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일본제독이 이순신 장군 추종자였으며, 장군에게 제를 올리고 장군의 전법으로 싸워 이겼다는 사실을 고등학교 국사 시간에 들은 기억이 되살아난다. 



석포전망대, 관음도와 죽도가 보인다. 그렇게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던 청띠제비나비가 사진 속으로 뛰어들었다. 



천부방향, 송곳봉과 바닷 속 코끼리바위. 



일본군의 망루가 서 있던 자리에 팔각정이 세워져 있다. 

일본놈들은 섬 사람들을 동원해서 이 가파른 산길로 대포를 끌고 올라 설치했었다 한다. 

남의 나라 전쟁놀음에 동원되어 고난받았을 섬 사람들을 생각하니 치가 떨린다. 



저동과 섬목을 오가는 페리호가 관음도를 돌아 들어오고 있다. 



농가의 옛집, 전통 투막집과 현대식 가옥의 중간형쯤 되어보인다. 

눈이 많이 내렸을 때 내부에서 활발하게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어 있는 원형 투막집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섬목에 거의 다다른 계곡, 꽃을 피운 나무(나무를 눈여겨보지 않았다)에 모여든 청띠제비나비 무리를 보았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짧다. 택시를 대절하여 일주관광을 하고 있는 일행과 만날 시간이 임박하였다. 

마음이 급하다보니 좋은 사진을 남기지 못했다. 

페리호가 접안하는 선창에서 일행을 만나 관음도 입구까지는 택시로 이동하였다. 

저동항에서 선창까지 대략 14km 거리를 6시간가량 걸었다. 


선창에서 석포 오르는 길 초입에서 내수전으로 넘어가겠다며 길을 묻는 부부를 만났다. 

석포로 오르는 길이 공사중이어서 버스가 다니지 않아 걸어오르는 수밖에 없는데 여름날 만만치 않은 일이겠기에 성인봉 산길도 다녀왔다 하니 굳이 가지 않는게 낫겠다 조언해주었다. 

가기 싫은 기색이 역력한 아내를 기어이 끌고 간 남편, 다툼 없이 그 길을 잘 넘어갔을지 두고두고 궁금하다. 

정상적인 내외간이라면 반드시 싸우면서 넘어갔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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