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과 시청 사이 태평로에서 대회를 마친 농민들은 상여를 앞세우고 광화문을 향한 행진을 시작했다. 

행진 대열이 신세계 백화점 앞을 지나 명동, 을지로, 청계천 거쳐 종로에 도착한 것은 오후 5시 30분경. 

보신각 옆 도로에서 다리쉼을 한 농민들이 다시 상여를 앞세우고 차벽 앞으로 나아갔다. 

6시경 차벽 앞에 당도한 농민 상여는 숨돌릴 겨를도 없이 물대포에 부서져 산산조각나고 상복 입은 농민들은 물대포의 표적이 되었다. 

참담하기 이를데 없었다. 그러나 그대로 물러설 수는 없었다. 

헌법을 깔고 앉아 서슴없이 불법을 자행하는 경찰차벽과 물대포에 맞선 투쟁이 시작되었다. 

싸움은 격렬했다. 물대포에 박살난 상여에서 나온 각목을 무기 삼아 켑사이신을 뿌려대는 경찰들을 견제하며 어렵사리 차에 밧줄을 걸었다. 

끌려나오는가 싶던 버스가 무슨 장치를 걸어놓았는지 요지부동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1시간여의 끈질긴 노력에도 버스 장벽은 허물어지지 않았고 고농도 최루액을 섞은 무자비한 물대포에 부상자만 늘어갔다. 

내가 사진기를 집어넣고 대열로 돌아간 것이 6시 48분, 그 사이 보성 농민 백남기 회장님은 한번도 내 카메라에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불과 10여분 후 대열 속에서 차벽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나와 밧줄을 잡는 백남기 회장님의 모습이 오마이뉴스 동영상에 잡혔다. 

백남기 회장님은 곧바로 물대포의 표적이 되어 아스팔트 위에 쓰러졌다. 


그날로부터 여러날이 지나면서 그날의 정황을 밝히는 새로운 사실들이 밝혀지고 있다. 

무엇보다 주목받는 것은 백남기 회장님이 걸어오신 생의 발자취이다. 

백남기 회장님은 농민들의 행진이 차벽에 가로막히고 상여가 물대포에 박살나고 처절한 투쟁 속에서 부상자가 실려나가는 모습을 1시간 동안이나 지켜보셨을 것이다. 그리고는 물대포가 난무하는 투쟁현장의 맨 앞으로 걸어나오셨다.  

평생을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농민운동으로 일관해오신 백남기 회장님의 당시 심정과 각오의 경지를 감히 가늠하기 어렵다. 




"억울해서 못살겠네 분통이 터져서 못살겠네"

"아니된다 아니된다 밥쌀수입은 아니된다"


상복 입은 농민들이 물대포의 표적이 되었다. 




무방비 상태의 사람을 겨냥한 물대포의 위력






정권의 비수가 되어 민중에게 내리꽂히는 물대포를 보라.





흡사 레이저포 혹은 광선검을 방불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