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대 옷 입고 밀대 모자 쓰고 서울시내를 누비는 농민들을 보았는가? 

지난달 14일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박근혜 정권의 살인적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회장님이 계신 서울대병원 앞에 농성장이 꾸려진지 보름이 넘었다. 

백남기 회장님의 쾌유와 강신명 경찰청장 파면, 박근혜 사과를 요구하며 투쟁하는 농성장의 주력은 하루도 빠짐없이 상경하는 농민 실천단이다. 

농민들은 1박 2일 일정으로 맞교대 하며 전국 방방골골에서 매일 올라오고 있다. 

지난 월요일 저녁 상경하여 화요일 일정을 함께 했다.  

 

 

저녁 7시, 실천단의 행처를 물으니 광화문 시국미사에 함께 하고 있다 한다. 

애당초 국정원 대선개입을 규탄하며 시작된 시국미사가 세월호 참사를 지나 이제 정권의 살인진압 문제로까지..

기원하고 바로잡을 일들이 켜켜이 누적되었다. 

날이 풀려 늦가을 차림으로 올라왔더니 다소 춥다. 

미사가 끝나고 농성장으로 복귀한 실천단은 늦은 저녁을 먹고 하루를 돌아보는 평가 후 잠자리에 들었다. 

동지들의 온기와 숨결로 데워진 농성장은 매우 아늑하고 따뜻하다.

 

 

새벽 다섯 시 반, 농민들은 보편적으로 새벽잠이 없다. 

일찌감치 잠에서 깬 농민들이 누운 채 부스럭거리거나 앉아 있다. 

농성장 맞은편 나지막이 누워 있는 낙산 성곽길을 걸어볼 요량으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밖으로 나선다. 

혜화문에서 동대문까지 대략 한 시간쯤 걸린다 했으니 아침 실천이 시작되는 7시 반까지는 충분히 돌아올 수 있겠다. 

 

 

낙산 정상 부근에서 대학로 방면을 내려다본다.

서울대병원임을 알리는 네온사인이 밝게 빛나고 그 아래로 농성장과 농성장에 걸린 현수막이 보인다. 

 

 

7시 반, 복장을 잦춰 입은 농민 실천단이 피켓과 현수막을 챙겨 들고 출근길 시민을 상대로 한 아침 실천에 나선다. 

실천단의 복장은 박근혜가 경끼를 일으키고 강신명이 오줌을 지린다는 마대 옷에 밀대 모자다. 

서울의 첨단 패션으로 오인한 중국인 관광객들이 본국에 돌아가 모방하지 않겠는가 염려하기도 하는 농민만의 독창적인 투쟁 복장이다.  

  

 

혜화동 사거리 곳곳에 현수막과 선전물을 펼쳐 들고 실천단이 섰다. 

나는 닷새쯤 전에 섰던 그 자리에 다시 섰다. 

우리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표정이 사뭇 달라졌다. 

저 사람들이 뭐하는 사람들인가 하던 표정들이 많이 가시고 우리를 알아보겠다는 눈길을 보낸다. 

이제 쌩뚱맞은 표정을 짓는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개인택시 기사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고 1톤 트럭 운전사는 경적을 울리고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2차 총궐기 성사를 위한 약간의 토론과 결의를 다지는 아침 조회 시간 전농 김영호 의장님이 마이크를 잡았다. 

"놈들이 탄압의 칼날을 들이대고 있지만 이는 궁지에 몰린 권력집단의 두려움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가는 이 길이 승리의 길입니다. 동지 여러분 신명 나게 싸웁시다" 

대략 이런 말씀을 하신 듯.. 

 

 

그저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선전이 되고 교양이 되는 농민 실천단이 지하철로 이동하고 있다. 

 

 

11시 반 청운동사무소 앞, 백남기 회장님 가족이 교황에게 보내는 편지를 전달하기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농민 실천단이 든든한 배경대, 투쟁의 버팀목이 되었다. 

백남기 회장님의 따님들이 옆을 스쳐 지나갔지만 뭐라 위로의 말조차 건넬 수 없다. 

옆에 있던 광전연맹 부의장이 "힘내세요"라고 작은 목소리로 겨우 말을 건넨다. 

 

 

다시 지하철 실천을 하며 국회로 이동한 농민들, 이번에는 쌀 협회에서 주최한 쌀 토론회에 참석한다. 

쇠 귀에 경 읽기도 유만부득이다. 

토론자로 나온 농식품부 관계자의 영혼 없는 발표와 답변에 치가 떨리지만 우리말도 해야 되겠기에 참고 듣는다. 

 

 

오후 7시, 어느덧 어둠이 깃들었다. 

장충 체육관에서 열리는 인권 콘서트, 오늘의 마지막 일정이다. 

입장객을 상대로 서명과 선전활동을 벌이다 맨 마지막에 입장하였다. 

 

 

"저항하는 자 인간이다" 

한국사회의 희망이 여기 다 모였다. 

식량주권 지키고 마음 편히 농사짓는 세상을 위하여..

 

 

집으로 돌아가는 길 어귀 농협 앞에 차려진 농성장에 아직 불이 들어와 있다.  

빈대떡에 통닭에 소주잔을 기울인다. 

"그래 12월 5일 날 또 한바탕 잘 싸워보드라고.."

 

때 아닌 겨울 장마가 지리하게 이어지는 2015년,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농민에게 돌아온 것은 살인적인 물대포에 테러분자라는 정권의 낙인이다. 

12월 5일 2차 총궐기를 막아보려는 박근혜 정권의 탄압 공작이 집요하지만 끓어오르는 농민의 분노와 저항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는 죽어도 살아서 투쟁할 것이고 끝내 승리하고 말 것이다. 

갑오 농민군의 정신으로, 백남기 회장님의 기백으로..

 

 

 

지금 이 순간에도 농민 실천단의 활동을 알리는 카톡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다. 

어제는 비를 맞고, 오늘은 눈을 맞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