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세 가보세 을미적 을미적 병신 되면 못 가리.."

새해를 어디서 맞을 것인가를 두고 여러 생각이 많았는데 발길은 결국 대둔산으로 향했다. 

일본군 기록에 남아 있는 마지막 농민군 토벌, 대둔산에는 우금티에서의 통한의 패배 이후에도 3개월여에 걸쳐 항쟁을 이어간 동학농민혁명군의 항전지가 있다.

그런데 왜놈들이 전하는 기록에야 마지막일 수 있겠지만 어찌 이를 두고 마지막이라 하겠는가?

농민군의 항쟁은 을미의병으로, 정미의병으로.. 

이름도 없이 성도 없이 싸우다 산과 들에서 죽고 논밭에서 썩어 흙이 되고 거름이 되어 역사의 굽이굽이마다 일어나고 또 일어나고 또 일어나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어떤 이는 "갑오년에 쏜 총알이 아직도 날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12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하는 말들이 결코 과장되이 들리지 않는다. 

예나 지금이나 희망은 민중들에게 있다. 오직 민중들만이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고 새로운 역사,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 수 있다. 

결정적 승리를 향해 앞으로..

 

대둔산 최후항전지에서 밤을 보내고 새해를 맞기로 하고 저녁 9시가 다 되어서야 본격적으로 길을 잡아 나선다. 

지난해 3월 단 한 번 가본 길인지라 밤중 산행으로 잘 찾아갈 수 있겠는지 걱정이 됐지만 흔쾌히 함께 하는 동지가 있으니 든든한 뱃심이 발동되었다. 

 

 

산정으로 향하는 오름길에 동학농민혁명군의 대둔산 항전 관련 내용을 담은 팻말을 본다. 

하지만 이 표지판은 실제 항전지와는 인연이 없는 곳에 세워져 있다. 

1996년도에 세운 것이니 그럴 만도 하다. 기록이 전할 뿐 그 구체적 장소를 찾지 못한 채 등산객들이 많이 오가는 산길에 어림짐작으로 세워둔 것이다. 

실제 항전지를 찾아낸 것은 1999년도 일이다. 

 

 

마천대에 올라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꽤 험악한 산중인지라 불빛이 참 적다. 

여기에서 얼마간 금남정맥 마루금을 타고 가다 골짜기로 빠지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따로 표시도 없고, 또 거기서부터는 딱히 길이랄 것도 없는 급경사지 산죽밭인지라 다소 긴장이 된다. 

우선은 정맥길을 정확히 가늠해 가는 것이 일이겠다. 그저 좋은 길만 무심코 따라가다가는 엉뚱한 곳으로 빠지기 십상이다. 

두 번째는 골짜기로 빠지는 지점을 정확히 판단하는 것인데 사실 여기까지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다. 

그다음 일은.. 감과 운에 맡기는 거다. 

능선을 벗어난 비탈에서의 최악의 상황은 바위틈에서 비박하는 것이 되겠다.  

그것까지 염두에 두고 나선 길이다. 

 

 

지난밤 내린 비가 산중에서는 눈이었다 보다. 

그걸 생각하지 못해 행전을 챙기지 않은 탓에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가 다소 고생했다. 

그나마 아이젠을 챙긴 것이 천만다행이다. 빙판길만 생각했지 눈을 생각 못했다. 

 

능선에서 빠지는 길은 잘 찾았다.
산죽밭을 미끄러지듯 내려가다 나타난 너덜지대에서 혼동이 시작되었다. 

너무 내려왔다 싶어 작은 능선을 찾아 오르다 보니 이건 또 너무 올라온 듯하고 길을 살짝 트니 험악한 바위들이 길을 막아 나선다. 

다시 꽤 내려왔다 싶은 지점, 분명 이 근방이다 싶은데 천지분간이 안되니 더 이상 판단이 안 선다. 

사실상 포기하고 잠자리나 찾자고 내디딘 발길, 그 마지막 순간에 마치 기적처럼 우리는 목표지점에 도달했다. 

최후 항전지에 도달했음을 알 수 있는 결정적 단서를 계속 주지시켰는데 그것을 영태가 찾아냈다. 

농민군 할아버지들 기운이 느껴진다 해쌓더니 빈말이 아니었나 보다. 

 

 

최후 항전지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두어 길 되는 바위를 타 넘어야 한다. 

목적지에 안착하고 나니 자정을 막 넘긴 0시 5분이다. 

산을 오르고 더듬어 헤매는 사이 을미년 마지막 밤이 가고 병신년 새해가 시작되었다. 

 

 

어느덧 밤이 가고 새해 새 아침이 밝아온다. 

그 옛날 농민군 할아버지들도 이 바위에 올라 세상을 굽어보았겠다. 

앞으로는 산아래 세상이 환히 내려다보이고 뒤로는 대둔산의 기암들이 호위하듯 늘어서 있다.  

대둔산이고 인근 산들이고 제대로 밟아보지 않은 탓에 어떤 산들이 늘어서 있는지 알지 못하겠다. 

별이 총총 박히고 조각달조차 휘황한 빛을 뿌리던 청명한 밤하늘을 보다 잠자리에 들었는데 불과 몇 시간 사이 구름이 잔뜩 끼었다. 

해를 보긴 어렵겠다. 

 

 

용담 방면으로는 물안개가 자욱하다. 

 

 

완주군 운주, 화산 방면

 

 

일출 시각이 지났으나 해는 보이지 않고 붉은 기운만 하늘에 퍼진다. 

붉은 노을 하늘에 퍼져 핍박에 설움이 받쳐..

올 한 해 더 잘 싸워보자는 새해 새 아침의 결의를 다진다.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최후 항전지의 노송. 

그대는 알리라, 그때 그 자리 쓰러져간 의로운 넋들을..

 

 

단 한 사람의 포로도 허용하지 않았던 농민혁명군들의 불타는 항전 의지를 당시 쌓았던 돌담이 말없이 웅변하고 있다. 

 

 

농민군 할아버지, 하룻밤 잘 자고 내려갑니다. 

할아버지들이 주신 기운으로 올 한 해 잘 싸우겠습니다. 

 

대둔산 항전 김석순 접주상 2014, 55X90cm 목판화, 박홍규 作

 

1895년 1월 대둔산 정상 부근으로 도피해 있던 농민군 25명은 일본군과 관군의 공격에 맞서 저항하다가 전원 몰살당했다. 

이 전투는 동학농민혁명 전 과정 가운데 기록에 전하는 가장 최후의 항전이었다. 

마지막까지 항복을 거부한 채 저항하고 있었던 어린 소년 1명과 28~29세의 임산부를 포함한 26명의 농민군 가운데 소년을 제외한 스물다섯 명 모두가 장렬히 산화했다. 

접주 김석순은 한 살쯤 되는 여아를 안고 절벽으로 뛰어내려 자결하였다.

 

 

 

초입에 선 동학농민혁명 대둔산 항쟁 전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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