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전 해장 일이 몸에 밴 농민들답게 늦잠 자는 사람 하나 없이 정해진 시간 이전에 모두들 마당으로 모여 이른 아침을 김밥으로 때우고 파주로 향한다.
몇 가지 절차를 거쳐 개성행 버스에 몸을 싣고 기다리기를 한 시간여.
경색된 남북관계를 반영하는 것인지 출발이 지연된다. 전체 관광일정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을 거라는 현대아산 직원들의 사과방송이 몇 차례 있은 후에야 차량이 출발한다.
지루한 기다림과 달리 일행을 실은 버스는 순식간에 군사분계선을 넘어 개성에 이른다. 
남측 관광버스의 통과가 이미 일상이 되어버린 듯 시내 일원을 통과할 때 집 안과 거리에서 버스를 향해 손을 흔드는 사람들이 종종 눈에 띈다.

첫 번째 행선지는 박연폭포.

박연폭포. 폭포에 의해 형성된 소가 아니라 물이 떨어지는 위쪽의 못이 박연이라고 해설사가 힘주어 말한다.
단체사진이라고 하나 대략 절반의 인원만이 찍혔다.
해장술에 이미 얼근해진 김제시농 회원의 간청으로 성사된 사진찍기.
박연폭포에서 약 20여분. 관음사.

박연폭포 관람을 마치고 점심식사 장소인 민속여관으로 향한다.

민속여관 전경.

민속여관은 본래 99칸짜리 대저택을 여관으로 개조하여 쓰고 있고 본래 주인은 저금 서울에서 과일장사를 하고 있다 한다.

13첩 반상

맛이 담백하다. 그중에서도 나물 맛이 일품이다. 강한 조미료 맛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맛이 없다고 투덜거리며 이내 숟가락을 놓고 만다.
후식으로 '랭면'을 추가하여 먹었다. 랭면 역시 남쪽의 일반적인 맛과는 많이 동떨어져 있다. 그러나 그 슴슴하고 담백한 맛이 랭면 본연의 맛이라 한다. 평양에서, 금강산에서 여러 차례 랭면을 먹어봤지만 그 맛은 서로 다르지 않다. 맛있게 잘 먹었다

다음은 숭양서원과 선죽교.

 
핏자욱이 선연하다. 그러나 대체로 믿지 않는 분위기이다.
숭양서원
숭양서원 안의 표충비. 코를 만지며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하니 저마다 코 쓰다듬기에 열을 올린다.

다음은 고려박물관.

고려 박물관 입구

박물관 해설사의 안내에 따라 박물관 관람에 들어간다.

 
성균관 은행나무. 가슴높이 둘레 5.25미터

고려박물관은 본래 고려성균관을 박물관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고려성균관 자리에는 그 역사만큼이나 묵은 1천 년 넘은 거목들이 짙은 그늘을 만들어 서늘하고 청량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려 박물관 내부 관람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들은 거의가 진품이라 한다. 고려청자의 시가가 다해서 얼마나 되느냐는 짓궂은 질문에 "부르는 게 값입니다"는 한마디로 짚어버리는 해설사의 능력이 탁월하다.
관리가 너무 허술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우리 북측은 고도로 안정되고 조직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염려 없다"라고 한다.

석등
땅을 뚫고 솟구치는 용의 형상에서 고려인의 힘찬 기상이 느껴진다.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이 수컷이라 한다. 

이것으로 개성관광이 끝났다. 박물관 입구의 기념품 판매소에서 가지고 온 돈은 다 써야 된다며 저마다 선물을 고른다. 주로 술과 담배, 과자가 주류를 이룬다.
나도 들쭉술 두병 사다가 우리 동네 모정에서 한 번에 다 털어먹었다.
시원한 '대동강맥주'가 맛이 좋다.

떠날 시간이 다 되어서인지 그간 동행하면서 친숙해진 북측 안내원들과 우리 회원들 간의 대화가 곳곳에서 무르익어간다. 북측 안내원들은 주로 남측의 사회 상황, 정치정세에 관해 많이 물었다 한다.
그런데 회원들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 우리보다 더 잘 알고 있더라고 한다.
우리는 뭐 주로 북쪽 생활의 깊숙한 내면을 들여다보고자 하는 질문들이다.
"연애도 하냐" - "차라리 밥도 먹냐고 물어봐라"
"이혼하는 사람도 있냐" - "사별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다지 없다"
"유부남, 유부녀가 바람피우는 일은 없냐" - "개하고 사람하고 다른 게 뭐이냐, 1부 1처제는 우리의 좋은 미풍양속이다"
등등... 

갈 때와 마찬가지로 돌아오는 길도 순식간이다.
우리는 불과 몇 분의 시간차로 매우 이질적인, 그러나 너무도 친숙하고 지척에 있는 북에 다녀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