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조선낫의 세상살이

북에서는 모내기를 그냥 모내기라 안하고 모내기 전투라 하는 모양이더라. 

다른 건 몰라도 모내기에 전투를 붙여 부르는 것은 십분 공감이 간다. 

일도 일이거니와 무엇보다 우리민족 전래의 주식인 쌀을 생산하는 첫번째 공정이 아니던가? 

제아무리 우리쌀이 천대받고 수입밥쌀이 주인행세를 한다 해도 쌀농사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우리 농업의 미래이자 희망이다.   

무엇이 질기고 누가 살아남는지 두고 볼 일이다. 



침종, 5월 13일


쌀농사 경력 26년차, 26번째 씨나락을 담근다.

종자 발아기에 담궈 약 48시간이면 침종 과정이 완료된다. 

과거 1주일에서 열흘까지 물 갈아가면서 담그던 때에 비하면 많이 간편해졌다. 

반면 각종 병해가 늘어나 못자리를 실패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종자 소독에 갖가지 방법이 동원된다. 

최근에는 60도 정도의 뜨거운 물에 10분간 담갔다 꺼내 찬물로 행구는 열탕 소독이 인기다. 

예전에는 종자 모자라면 생나락 쭈갱이만 걸러내고 바로 낙종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5월 14일,로타리발 교체



5월 15일, 늦은 쟁기질


봄 내 비가 잦아 제 때 논을 갈지 못했다. 

달팍달팍 넘어가는 쟁기밥을 보고 있노라면 이놈의 세상도 쟁기질하듯 달팍 엎어버리고 싶은 충동이 인다. 

농사꾼 심정 다 같을 것이다. 



낙종, 5월 16일


종자를 친다. 

공장식 기계노동을 체험한다. 

일단 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기계 속도에 맞춰 각자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며 맡은 바 작업을 쉼 없이 해내야 한다. 

최소한 여섯명 정도가 조를 이뤄야 작업이 가능하다. 

손이 모자라 객지에 나가 있는 큰딸을 불렀다. 

종자를 친 모판을 사나흘 쌓아 잘 덮어두고 싹이 나오길 기다린다. 

매우 중요한 과정인데 이때 고온장애를 받거나 하면 모판을 엎는 수가 생긴다. 

농사 짓다 모판 엎는 일만큼 심란하고 울화 치미는 일도 드물긴 한데 그렇다손 쳐도 박근혜 농정 개지랄보다는 낫겠다. 

못자리야 다시 하면 된다지만 지금 이 정권은 돌이킬 수 없는 길을 너무도 서슴없이 태연자약하게 가고 있다. 



5월 17일, 초벌 로타리

물이 잡히는 대로 틈틈이 논을 삶는다. 



5월 21일


19일 샇아둔 모판을 바닥에 깔았다. 

일제히 싹이 올라오면 새싹의 힘이 얼마나 센지 모판들이 죄다 기우뚱해지고 시기를 놓치면 무너지기도 한다. 

콩나물처럼 노랗거나 하얗던 싹은 볕을 보는 순간 녹화가 진행되고 불과 이틀만에 보기 좋게 이렇게 자랐다. 

벼는 물로 큰다. 물을 잘 줘야 한다. 



5월 30일, 첫 모내기


이앙기도 없고 논농사도 별로 없는 나는 모를 심어주는 것으로 기계도 얻고 품도 얻는다. 

해를 거듭하는 동안 이앙기질에 관록이 붙는다. 

내 농사 짓던 초기는 이앙기가 막 보급되어 손모가 사라지는 시점이었다. 

이앙기가 시원치 않아보였던 꼽꼽쟁이 농사꾼들이 손모를 심었다. 

나는 투묘를 선택해서 공중에 모를 뿌렸더랬다. 첫 모내기를 생각하면 참..

그조차 일손이 딸려 포기하고 다음에는 담수직파, 하지만 풀을 못이겨먹어 직파도 포기하고 기계이앙으로 돌린지 오래되었다. 

벌써 까마득한 옛 일이 되었다. 

보행 이앙기가 승용으로 바뀌고 승용은 갈수록 커지고 첨단화되어 이제는 비료에 풀약살포까지 일거에 해치운다. 



논은 습지다. 가다 보면 수렁도 있고, 수매 깊은 논에서는이앙기 빠지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빠지면 건지고..

이래서 모내기는 전투다.



바이칼 호수에서 왔다는 러시아 모쟁이들은 몽골 사람들보다 더 우리랑 흡사하게 닯았다.

어쩌면 아주 먼 옛날 우리 뿌랑구 하나씨 손들인지도 모르겠다. 

오후 6시만 되면 칼퇴. 

갈수록 일손 구하기가 어려워지는 한국농촌은 이렇게 존나게 글로벌하게 뻗어나간다. 


러시아 사람들이 가고도 대략 두시간은 더 모를 심는다. 

술 한잔 하면서 저녁 먹고 집에 들어오면 9시, 씻고 나면 9시 반쯤 된다. 

연중 가장 바쁜 시기임에 틀림없다. 



6월 4일, 우리집 모내기


재벌 로타리에 평탄작업까지 마친 논에 모를 낸다. 

못비가 촉촉히 내렸다. 

스물여섯해 모를 내는 동안 내 모내는 날은 아마도 3분의 2는 6월 6일이었다. 

꼭 그날 하려는 건 아니었는데 하다 보면 그리 되었다. 

그런데 올해는 이틀이나 빨라졌군..

술 고픈 김에 '고시래'도 안하고 술잔을 비웠으니 올 농사 심히 걱정된다. 



마지막 배미 마지막 바퀴를 남겨놓았다. 

이렇게 모내기가 종료되었다. 

이제 언제 클까 싶던 어린 모들이 땅맛 알고 숙쑥 크기 시작하면 그 속도만큼이나 농사꾼 1년도 쏜살같이 가버릴 것이다.  

농사꾼 1년은 모내기가 끝나면서 사실상 저물어간다고 봐도 무방하다. 

어.. 어.. 몇번 하다보면 어느새 창고 속 먼지 쌓인 콤바인 끄집어낼 가을인 것이다. 


농촌에 일손이 사라지고 기계화되면서 공동노동이 사라지니 농촌 공동체도 급격히 무너졌다. 

두레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지 오래고 품앗이조차 특별한 관계의 소규모 집단 속에서 근근이 이어질 뿐이다. 

오늘날 농촌 사회의 개인주의 바람은 노동의 기계화와 개별화, 농가들간의 과도한 경쟁과 반목을 부추기는 잘못된 정부 정책에서 기인한다. 


대한민국 농사꾼들이 이처럼 모내기 전투를 치르는 동안 박근혜 정부는 무슨 짓을 했는가? 

박근혜는 또 다시 밥쌀수입 공고를 냈다. 

농민들 눈코 뜰새 없을 때 해치우겠다는 심산이다. 


정부는 지난해 3차례의 밥쌀 수입 입찰공고를 내 6만 톤을 수입한 바 있다. 이로 하여 쌀 재고량은 늘어났고 아무런 대책 하나 없이 쌀값은 20년 전 수준으로 떨어졌고, 지금도 폭락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밥쌀 수입과 국내 쌀값 폭락이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쌀값 폭락은 오직 생산과잉에 따른 자연스런 시장 현상일 따름이고 수입된 밥쌀은 식당, 급식업체 등을 통해 소비되기 때문에 쌀값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무지 해석이 불가능하지만 농식품부의 공식 입장이다. 


정부는 이런 논리에 따라 국내산 쌀에 대해서는 쌀농사를 줄이는 대규모 감산정책을 펴는 한편, 밥쌀 수입에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다. 밥쌀 수입의 주된 이유는 수요처가 있다는 것인데 그 수요처는 식당과 급식업체라고 밝히고 있다. 뻔뻔하고 가증스럽게 짝이 없다. 도무지 납득할 수도 없다. 이런 식의 정부 정책이 불러올 결과는 너무나도 뻔하지 않은가? 이는 주권을 포기하는 매국행위에 다름 아니다. 


밥쌀의 주요 수입처는 미국이다. 미국산 밥쌀 수입이야말로 지난해 쌀값파동의 주역이며, 농민총궐기 투쟁을 불러온 핵심 사안이다. 물대포에 쓰러진 백남기 농민의 요구 또한 밥쌀수입 반대였다. 정상적인 정부라면 풍년농사에 따른 생산량 증대를 수입량을 줄이고 자급률을 높일 기회로 삼아야 함에도 박근혜 정부는 거꾸로 가도 완벽하게 거꾸로 간다. 


피땀흘려 지은농사 제값 받는 것은 고사하고 이제는 숫제 죄인 취급까지 당하며 농민들은 오늘도 논과 밭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이런 농민들을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박근혜 정부는 농민들이 논밭에 묶여 있는 지금이야말로 밥쌀수입을 발표하고 강행할 절호의 기회로 활용하고 있으니 참으로 이 나라는 무엇을 위한 누구의 나라인가?


제 나라 백성을 적대시하고 강대국에 한없이 아부굴종하는 것은 사대매국노의 공통된 심성이다. 

박근혜 정권은 틀림없는 사대매국 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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