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시산

갈곡천에서 바라본 화시산, 맨 왼쪽 높은 봉우리가 화시봉이고 오른쪽 가장 낮은 지점에 굴재가 있다. 
화시산은 불화에 화살시, 불화살산이다. 
참 멋진 이름이다. 어째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방장산 자락, 화시산을 마주보고 사는 신림면 임리 사람들은 화시산의 불기운을 억누르자고 물을 상징하는 오리 솟대를 높이 세웠다. 
풍수는 모르겠으나 해질녘 석양이 붉게 물들면 임리에서 보는 화시산은 온 산이 타는 듯 불덩이로 보일 수 있겠다. 

화시산은 선운산과 방장산 사이에 꽤나 길게 누워 있는 산줄기와 그 덩어리 전체를 통칭하는데 주봉인 '화시봉'에서 이름을 따왔다고 보면 되겠다.  
하지만 고창 사람들은 화시봉 정도를 입에 올릴 뿐 화시산이라는 이름은 통 불러주지 않는다.
(그나마 나는 얼마 전까지도 '하씨봉'으로 알고 살았다. )
야트막한 산이지만 골이 깊고 꽤 넓은 분지를 품고 있어 만만히 볼 산이 아니다.
운곡습지와 굴치고랑, 고인돌 떼무덤 등을 거느리고 있다.
화시산이 품고 있는 굴치고랑을 거슬러 산을 넘던 고갯마루가 굴치, 그 고갯길을 무장에서 기포한 농민군이 타 넘어 고부로 짓쳐 들어갔다. 

혁명의 그날 무장을 출발하여 고창 인근을 지나던 농민군의 행로에 대해서는 딱히 하나로 정리되어 있지 않다.
전봉준 장군의 태생지인 당촌을 경유했다는 것과 굴치를 넘어 행군했다는 입장, 그리고 둘 다 맞다는 의견도 있다.
선발부대와 본진, 후발부대 등이 각각의 임무에 따라 다른 길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충분히 있고 각기 나름의 고증이 있기에 다 맞다고 본다.
다만 굴치를 넘는 행로가 좀 더 은밀하고 빠른 길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다른 일로 지체됨이 없이 보다 신속히 고부에 당도해야 할 주력부대가 이 길을 택했을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굴재 고갯마루에서 바라본 두승산

굴치를 넘은 농민군들은 여기 굴재에 이르러 비로소 고부의 진산 두승산과 마주하게 된다.
나는 여기를 굴치로 알고 올랐다. 올라보니 시멘트 포장길이 산을 넘는다. 
부안면 용산, 아산 반암 사람들 넘나들던 작지 않은 고개였겠다. 
굴재에서의 조망은 다소 답답하다. 
하여 시원한 조망을 찾아 길을 나선다.  

추수를 기다리는 누런 들판 너머가 고부땅, 두승산은 구름 속에 들었다. 

얼마간 능선을 타고 오르니 조망이 좀 시원해진다.
하지만 사면팔방으로 시원하게 터지는 조망은 아직 허락치 않는다.
이 근방은 아무래도 무슨 굴하고 인연이 많은 모양이다.
굴치, 굴재, 상굴마을.. 최근에는 선운사로 통하는 새로 낸 4차선 때문에 산 아래로 굴이 뚫렸다.
그 굴을 벗어나 선운사에서 나오는 4차선 포장길이 막무가내로 곧게 뻗어 있다. 
산 따라 물 따라 굽이굽이 휘돌아 찾아가던 선운사길은 이제 옛길이 되었고 그 정취도 사라지고 없다.

잔대

정금

고창 사람들은 '징금'이라 한다. 

화시산 주릉

왼쪽 화시봉에서 촛대봉, 시루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낙조대에서 배맨바위, 쥐바위를 거쳐 사자바위로 이어지는 선운산 능선과 흡사하다.  
굴재에서 화시봉에 이르는 능선길은 대략 3.5km로 굴곡이 심하고 생각보다 멀다. 

무재등 전경

거친 산길을 톺아올라 무재등에 당도하였다.
비로소 화시산 주릉에 올랐다 보면 되겠다. 화시봉이 지척이다.  
매산, 운곡 방면 산줄기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화시봉 전경

화시봉에 오르니 구름이 몰려와 온 산을 뒤덮고 좀처럼 가시지 않는다. 

화시봉에서 발길을 되돌려 무재등 지나 굴치 방향으로 산길을 잡는다.
시야를 가리던 안개같은 구름이 걷히기 시작한다.
구름이 걷히자 볼썽 사납게 산을 파먹고 들어온 골프장이 눈에 들어온다.
굴치고랑 깊숙히 골프장이 파고 들어왔다. 
화시봉의 운무는 골프장을 가리우려 했던 모양이다. 

거북바위 전경

거슬러 올라온 능선이 발 아래 놓였다.
저기 멀리 산줄기 가장 야트막한 곳이 굴재, 굴치를 지난 농민군은 굴재를 넘으면서 비로소 두승산과 마주하고 목전에 다다른 혁명의 열기에 휩싸였을 것이다.
굴재를 넘은 농민군은 갈곡천을 건너 바닷가 마을 흥덕현 사포와 후포를 지나 줄포 거쳐 고부로 직행하였다.
농민군이 밟고 지나간 진격로가 추수를 기다리는 누런 들판으로 눈 아래 고스란히 펼쳐져 있다.  

선운산 방면

투구바위(시루봉)

소요산 방면

화시봉

무재등에서 굴치 방향으로 진행하는 능선은 갖은 기암들이 도열해 있어 흡사 선운산 배맨바위 주변 능선을 연상케 한다. 
사면팔방 조망이 시원하게 터지고 시야를 가리우던 구름이 걷히면서 산과 하늘이 시시각각 변화무쌍하다. 

제법 듬직한 산줄기 하나 눈에 잡힌다.
산줄기 끝 삼각봉으로 우뚝 솟은 소요산, 소요산은 인천강을 사이에 두고 선운산 경수봉과 자웅을 겨룬다.
소요산은 전봉준 장군의 태몽에 등장한다.
장군의 아버지께서 소요산을 통째로 삼키는 태몽을 꾸고 전봉준 장군을 얻었다 한다. 

산줄기 좋아하는 사람들 방장산 파리재(고창고개) 부근에서 분지하여 이 곳 화시산을 거쳐 소요산까지 이르는 산줄기를 '소요지맥'이라 이름지었다. 
소요지맥은 인천강과 갈곡천을 양 옆에 끼고 바닷가에 이르게 되는데 화시산은 그 중간 지점이 되겠다.  
산줄기는 굴치가 아닌 굴재를 지나 소요산으로 이어진다. 

투구바위를 스쳐 지나 소굴치로 향하는 능선에서 일몰을 맞는다.
이런 하늘 참으로 좋다.

뭔가 일이 벌어질 것 같은 하늘과 굽이치는 산하, 후천개벽을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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