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길 한번 빡쎄게 걷고 싶었다. 빽따구가 노골노골해지드락..
지난 겨울 눈길을 헤쳐 첫발을 내밀어놓았던 영산기맥의 첫산, 입암산과 방장산을 단숨에 타넘겠다 작정하고 나섰다. 
지금은 정해리라 이름을 바꾼 시얌바대 깊숙히 장성새재 입구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장성새재는 정읍 시얌바대와 장성 남창골을 잇는 고갯길이다. 
새재는 큰 고갯길 내장갈재(추령)와 장성갈재(노령) 사이의 '사잇길' 정도의 의미로 붙인 이름이 아닐까 싶다.
장성새재 말고 순창새재가 하나 더 있다.
순창새재는 복흥면 대가리에서 불바래기 고랑을 지나 장성새재로 넘어오는 고갯길이다.   
새재 입구에서 고갯마루까지는 대략 2km, 콧노래 부르며 할랑할랑 걷기 좋은 길이다. 

고갯마루 산길 사거리에서 남창골 방향으로 잠시 걷다 보면 입암산으로 오르는 길이 나오는데 정규 등산로가 아니라고 막아놓은 곳으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오늘 가는 산길에서는 이처럼  길을 막아놓은 목책을 네번 넘어가게 된다. 
출입을 금한다기보다 국립공원이 관리하는 정규 등산로가 아니라는 의미라고 생각해둔다.  

한시간가량 땀을 쏟아 입암산 주릉에 당도했다. 
주릉에는 아직도 꽤 견고하게 남아 있는 산성 성곽이 북문을 지나 갓바위 부근까지 이어진다. 
성벽을 두른 듯 몹시 가파른 산세에 더하여 내부에 평평한 분지를 품고 있는 입암산은 그 자체로 천혜의 요새라 할 만하다.
옛 사람들은 여기에 산성까지 쌓아놓고 외적의 침입에 대비했다.
입암산성에서 벌어진 큰 싸움은 몽고군의 침략에 맞서 성을 사수한 것과 임진왜란 당시 성을 지켜 싸우던 별장 윤진이 전사했다는 기록으로 역사에 남아 있다.  
또한 122년 전 동학농민혁명 당시 우금티 전투에서 패배한 전봉준 장군이 농민군을 해산하고 스며들어 하루를 묵어가기도 했다.  

성곽을 밟고 얼마간 오르다 보면 입암산 정상에 이른다. 
갓바위를 정상이라 생각하기 쉬우나 정상은 따로 있다. 
다만 갓바위에 비해 특색 없이 밋밋하고 주요 등산로에서 벗어나 있을 따름이다. 
정상 부근에서는 입암산 안팎으로 시야가 잘 터진다. 
코끼리 한마리 웅크린 듯한 불바래기 능선과 삼성산, 그 너머로 내장산 주릉이 펼쳐져 있다. 

펑퍼짐한 산성의 내부, 그 너머에 방장산이 솟았다.
사진 오른쪽 갓바위에서 왼쪽 시루봉 거쳐 가파른 암릉지대 지나 장성갈재(노령), 그리고 그 너머 방장산.
오늘 저기 저 너머 방장산 끝자락 양고살재까지 간다.

셀카

북문 지나 갓바위

갓바위에서의 조망은 거칠 것이 없는데 우리 동네에서 보는 갓바위는 영락없는 거북 모양인지라 우리동네 사람들은 거북바위라 부른다.
가야 할 길, 갈지자 능선길이 손에 잡힐 듯 하다. 

방장산 지나 영산기맥 산줄기가 아스라이 이어지고..
성송 암치 지나 솟아 있는 고산이 가장 도드라져 보인다. 
영광 불갑산도 저 어디 있을 것이다. 

눈을 좀 더 남쪽으로 돌리면 무등산.
무등산 앞에 버티고 선 산은 병풍산과 불태산, 저 멀리 아스라이 솟은 산은 조계산으로 보인다.  

고개를 좀 더 외약짝으로 돌리면 지리 주릉, 여기에서 보는 지리산 주봉은 단연 반야봉이다. 

동쪽으로는 장수, 진안, 임실 지나 내장산으로 달려오는 호남정맥 산줄기가 치열하다. 
바로 앞 삼성산, 내장산 망해봉 말고는 식별되는 산이 하나도 없다. 

북쪽 방향으로는 드넓은 호남평야 위에 고부 진산 두승산이 홀로 솟았다. 

서쪽 방향, 선운산 경수봉과 화시산, 소요산이 경합하고 칠산바다 저 멀리 위도가 아스라하다.

갓바위에서 시루봉은 생각보다 멀다.
여긴가 싶으면 다시 저기.. 양파 껍질 벗겨내듯 산길을 까고 까야 시루봉에 당도한다.
시루봉에서 바라본 갓바위와 두승산은 서로 마주보며 뭔가 교신하는 듯하다.
갑오년 그 시절 녹두장군의 안위를 묻고 있지는 않았을까?

시루봉에서 갈재로 내려서는 길은 꽤 험하다.
연속으로 암릉이 나타나고 암릉은 오르기보다 내려가기가 더 까다롭다.
우회로를 선택하는 것이 현명했겠는데 어설피 덤볐다가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암릉에 매달려 오도가도 못할 뻔 하기도..
선운산 가는 길 할매바위에서 익혔던 바위타기 경험이 나름 도움이 되었다. 
갈재 너머 방장산을 바라보자니 과연 저 길을 오늘 중으로 다 축낼 수 있겠는가 하는 걱정이 앞선다. 
시간도 어중간하고..

갈재 옛길, 찻길이 뚫리기 전 넘어다니던 그 옛날 진짜 고갯길이다.
산을 넘던 국도 1호선도 이제는 4차선으로 확장되어 터널로 통과하게 되어 고속도로, 고속철도, 호남선 철도 모두가 이제는 산 밑으로 통과한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자동차의 굉음이 가장 크다. 


방장산을 갈까 말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으나 발길은 순식간에 갈재를 지나 어느새 방장산 주릉에 올라서고 말았다.
갈재 지나 방장산 써레봉까지는 고도 500여미터를 급격히 올려야 한다.
산 하나를 완전히 새잽이로 오르는 고행길이 되었다. 

한시간가량 땀을 쏟았다. 라면 두개 끼레묵고..
이제는 방장산에서 입암산을 굽어본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갈 길은 멀지만 막힘 없는 황홀한 조망이 오름길에 바친 땀의 노고를 순식간에 날려버린다. 

지리 주릉과 무등산이 한 눈에 잡힌다.
일일이 구분해낼 수는 없지만 이 화면 안에 내노라 하는 남도의 산들이 대부분 망라돼 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방장산은 가히 호남 최고의 조망터라 할 만하다.  
방장산은 또한 영산강 서쪽 영산기맥에서 으뜸 가는 맏형같은 산이다. 이름하여 영산기맥의 맹주.
나는 이런 방장산을 굽어보는 데서 학교를 다녔다. 
'바앙장산 굽어보는 희망찬 동산 내애일에 기둥들이 갈고 닦아서..'

쓰리봉이라는 봉우리는 대관절 어디서 온 이름일까? 
고창 가평 사는 사람들은 써레봉이라 부른다.
고창 신림, 성내 방면에서 바라보면 써레를 거꾸로 엎어놓은 듯한 형상이기에 그렇게 부른다 했다.
언제부터인지 쓰리봉이라 하는 국적 불명의 이름이 이제 버젓이 표지목에까지 새겨져 있는데 조사, 규명해야 할 문제다.  
일단 써레봉이라 부를란다. 

진안, 장수 방면 호남정맥의 산군


입암, 백암 산줄기 너머 지리 주릉

지리산과 무등산 사이 호남정맥의 산군

무등산

방장산 너머 영산기맥의 산군

방장산 주릉 너머 칠산바다로 지는 해

경수지맥과 소요지맥의 산군, 그 너머 위도

저 섬 위도에 핵폐기장을 세우겠다 해서 한바탕 난리가 난 시절이 있었다.
위도에 앞서 영광과 고창에서 쫓겨간 핵폐기장은 유치공모 마지막 밤 전북도지사 강현욱과 부안군수 김종규의 짝짝궁 속에 순식간에 부안으로 불똥이 튀었는데 당시 대상지가 바로 저 위도였다. 
뒤끝이 살짝 헤리긴 했지만 부안군민들의 영웅적 투쟁으로 핵 불똥은 다시 군산과 경주로 옮겨가고 유치경쟁 주민투표라는 광풍 속에 핵폐기장은 근소한 차이로 승리(?)한 경주시민 차지가 되었다. 
노무현 정권 때 벌어진 일이다. 

곰소만과 변산반도의 산군

방장산에서 발원한 갈곡천이 곰소만으로 흘러든다. 

어둠이 깃들고 산 아래 불이 들어온다. 
이마빡에 불을 달고 갈길을 서둘러보지만 이제 어둠으로 인해 속도를 내기 어렵다.  
방장산 주릉길은 약 5km,  어차피 늦은 길 할랑할랑 걸어가자. 

방장산 정상

벽오봉

양고살재에 당도하니 밤 아홉시가 넘었다. 
입암산과 방장산, 장성새재에서 양고살재까지 산길 사십오리, 12시간이 넘게 걸렸군..
거리에 비해 시간이 다소 많이 걸렸다. 
산 두개를 통으로 잡아 넘는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기분좋은 뻐근함이 사지육신을 엄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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