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 1박2일 상경투쟁을 마치고 강원도 정선으로 튀었다. 
정선으로 떠나는 길 150만 광화문 인파를 헤쳐나오느라 매우 애먹었다.
사람들 틈에 끼어 한결 늘씬해진 느낌..

안먹는 아침까지 차려먹고 멧돼지 사냥을 준비한다.
밤새 산을 파헤친 멧돼지 흔적을 확인(사냥꾼들은 이를 두고 '발을 끊는다'라고 한다)한 사냥꾼은 살짝 흥분한 기색이 역력하다.  
왼쪽부터 길안, 산돌, 소서노, 속초, 이 놈들 포스가 여간 아니다. 
안동 길안면 출신 길안은 경력 10년이 넘는 노장, 3년 전 올무에 걸린 녀석을 구출해준 인연이 있다. 
소서노는 몸집은 작지만 주력 좋고 사냥 실력이 빼어난 녀석이라 했다.
속초는 속초 출신일 것이고 산돌은 소서노와 모자지간인데 어미보다 배는 크다.
3년 전에는 '반달'이라는 아주 풍채 좋은 녀석이 대장이었는데 지금은 없다.
속초와 산돌은 이제 사냥을 배우기 시작하는 '햇개'들..

풋내기 사냥개들은 줄곧 주인 주변을 맴돈다.
사냥꾼은 이런 녀석들을 사람 대하듯 따뜻하게 어루만져준다.
따로 특별히 가르치지 않아도 사냥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실력을 키워간다 한다.
실력있는 사냥꾼과 멋진 선배 사냥개를 만나는게 중요하겠다.

 

길안과 소서노는 멀리 나가고 잘 돌아오지 않는다. 
어쩌다 한번씩 돌아오는 길안은 몹시도 숨을 헐떡거린다. 
나이 먹고 몸이 불어 힘들어 보였다. 

사냥꾼은 눈도 좋다.
낙엽 위에서 월동을 준비하는 뿔나비를 용케도 발견하고 무슨 나비냐 묻는다.
뿔나비는 성충인 나비 상태로 겨울을 난다. 

처음 뒤진 고랑에서는 멧돼지와 조우하지 못하고 다른 고랑으로 이동한다.
평지에서는 오리처럼 어기적거리며 걷는 사냥꾼이 마치 축지법을 쓰듯 날아다닌다.
산 꽤나 탔다는 나는 사냥꾼 걸음 따라잡느라 연신 미끌어지며 허겁지겁, 헐레벌떡이다. 
몹시도 가파른 정선 산빨, 딱히 길이랄 것도 없는 된비알이 쉽게 적응되지 않는다. 

길안이 몹시도 헐떡거리며 나를 스쳐지나간다.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탈길을 내달리는 녀석과 소서노가 보인다.  
잠시 나지막히 으르렁거리는 소리가 나고 멧돼지가 튄다. 개들이 짖어대며 맹렬히 추격한다.
주인 곁을 맴돌던 풋내기 녀석들도 내달리고 사냥꾼도 내달리고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진다.
고라당 깊은 곳 돼지를 붙들고 짖어대는 사냥개 소리가 경쾌하게 산을 울린다.  
정선 사냥꾼을 따라 나선 네번째 시도 끝에 드디어 멧돼지와 조우하는 순간이다. 

나는 렌즈를 갈아끼우느라 아까운 시간을 지체했다. 
가파른 산길을 미끄러져 내려가는 도중 우렁찬 총성이 산을 흔든다. 
아깝게도 내가 도착하기 전에 상황이 종료되고 말았다. 
렌즈고 뭐이고 그냥 내달렸어야 했다. 

크다. 족히 2백근은 되겠다.
소서노와 속초가 사냥감을 이리저리 물어뜯어보지만 이빨도 들어가지 않는다.  

입주뎅이와 발을 묶어 끌고 내려간다.  
임도가 그리 멀지 않아 다행이다. 

오늘의 수훈장 길안이 부상을 입었다. 
개들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려는 돼지 앞길을 가로막다 날카로운 송곳니에 찔렸다.
앞다리의 상처는 뼈에 닿을 정도로 깊고 가슴 부위 상처는 갈비 사이를 뚫어 호흡이 샌다. 
사냥꾼이 현장에 다소 늦게 도착한 탓이다. 
목을 지키던 또 다른 사냥꾼은 일 때문에 자리를 비우고 없었다. 

수술을 마친 길안이 마취에서 깨어나길 기다린다.
사냥경력 10년이 넘는 백전노장, 사람으로 치면 할매 나이, 나이가 많은데다 호흡이 샌 탓에 회복이 꽤 더딜거라 했다.
개 치료를 마치고 멧돼지 해체를 시작한다.
칼을 받아든 사냥꾼네 형님은 "어우 크네" 한마디 하고 대수롭지 않은 듯 익숙한 솜씨로 순식간에 작업을 마친다. 

갈매기살, 안심, 간, 지라, 콩팥 등 얼마 안되는 핵심 부위만을 먹는다. 
집돼지 잡을 때도 잡는 사람들이 다 먹어 없애는 부위들이다.

보기엔 좀 껄적지근해도 무척 맛나다. 

그리고 고기보다 더 맛난 내장, 오소리감투, 막창..

냉장고 속 송이도 나오고 간소하지만 수라상 부럽지 않다.  
그 이름 정선, 아리아리 정선..
정선의 밤이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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