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다 만 글을 발견했다. 세월은 참으로 빨라 벌써 5년 묵었다. 
그해 겨울 나는 갑자기 찾아온 허리디스크로 하여 무지하게 고생했다. 하지만 대략 3개월 만에 완벽하게 나았는데 그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려다 작파하고 말았던 것이다.    

지난해(2016년) 12월 겨울 채비를 미처 해놓지 못해 며칠간 땔나무를 했다. 다소간의 도끼질, 사흘간의 톱질 끝에 가벼운 감기가 왔으나 사나흘 만에 나갔다. 감기쯤이야.. 그런데 진짜가 남아 있었다. 어느 순간 일어나 걸을라 치면 다리가 좀 당긴다 싶었다. 12월 21일이었다. 하지만 통증은 가벼웠고 그러다 말겠지 했다. 이튿날 아침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걷다 격렬한 다리 통증에 주저앉고 말았다. 왼쪽 엉벅지를 무딘 송곳으로 찌르는 듯했고 종아리 바깥쪽으로는 녹슨 칼로 후벼 파는 듯했다. 통증은 발등을 지나 발가락 끝까지 전해졌다. 깊고 격렬했다. 도저히 걸을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앉거나 누우면 통증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하지만 시간이 더 지나면서 앉아 있을 수도 없었고 그저 누워 있는 것만이 그럭저럭 견딜만했다.  
이건 뭐지? 처음 당하는 일인지라 어리둥절했지만 곧 낫지 않겠나 싶었다.  하루 하고도 한나절을 구들장을 지고 쉬었지만 통증의 강도는 더해만 갔다.  급기야 잠시 서 있기도 어려웠다. 몸 전체가 잔뜩 긴장한 탓에 소변조차 보기 힘들었다. 이대로는 살 수 없겠다 싶어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나 갖은 욕설을 퍼부어가며 제자리걸음을 걸었다. 5분.. 10분.. 어라? 통증이 잦아들기 시작한다. 대략 20여분.. 통증이 거짓말처럼 가신다. 살겠다 싶었다. 하지만 잠시 뿐이었다. 잠시라도 걸음을 멈추면 참기 어려운 통증이 반복되었다.  일어나 움직일 때마다 격렬한 통증에 맞서 한바탕 제자리걸음을 걸어야 했다. 일어나기가 두렵고 그저 누워 있고만 싶었다. 
병은 소문을 내라 했던가? 익산에 있는 한의원을 소개받았다. 충분하게 듣고 묻고 에스레이를 찍고 이모저모로 진단하더니 허리디스크 초기라 했다. 여느 한의원과 달리 환자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진중해서 믿음이 갔다. '도침'이라는 다소 아픈 침을 맞았다. 침이 굵고 침 끝은 끌처럼 생겼다. 아프다. 하지만 효과는 꽤 탁월했다. 1주일에 두 번씩 2주간 다니며 침을 맞았다. 걸음조차 걸을 수 없을 정도의 격심한 통증은 '도침'으로 잡았다 보면 되겠다.  다른 한편 분당에 있는 몸살림 요법을 시전하는 한의원에 가서 고관절을 바로잡고 집에서 하라는 자가 교정을 꾸준히 시행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걷는 것이었다. 꾸준히 걸었고 걷는 거리를 늘려나갔다. 20여분 이상 걸으면 통증이 어지간히 사라졌다. 걷는 것이 제일 편안했다. 다소 무리가 되지 않겠는가 싶었지만 태백산 해맞이 산행도 다녀왔다. 네 시간 이상 산을 탔지만 걷는 동안은 편안하고 좋았다. 이제는 앉아 있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 누워 있는 것도 편치 않았다. 오직 걷는 동안만 편안했다. 밥 먹고 자는 등의 불가피한 시간을 제외하고는 산으로 갔다. 산길을 걷는 것이 일이 되었다. 

여기까지다.
저장 일자가 1월 7일, 12월 21일 증상이 시작됐다 했으니 통증 발생 초기 보름간의 기록이라 보면 되겠다.   
그 후 1월 한 달은 거의 산에서 살다시피 했다. 산길을 걷는 사이 통증은 점차 사라졌다. 격심한 통증이 완화되고 통증이 발생하는 부위도 점차 축소되었다. 1월 말경에 접어들면서는 무릎 아래 종아리 바깥쪽에 통증 한 덩어리를 남기고 거의 사라졌다.

2월 초 지리산을 종주하는 사람들(진달래 산천) 틈에 섞여 지리산을 탔다. 나는 의신마을에서 선비샘으로 올라 합류했는데 세석에서 하루 자고 천왕봉 거쳐 중산리로 하산했다. 그날 이후 남아 있던 한 덩어리 통증마저 사라지고 나는 허리디스크로부터 해방됐다. 지리산은 영험했다. 산은 역시 지리산이라는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당시 안면을 텄던 진달래 산천 사람들과는 지금도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그날 영신봉에서 일몰을 맞았다. 왕시루봉과 반야봉 사이 무등산 부근으로 해가 넘어갔다.

나는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는 사람을 만나면 나의 경험담을 들려주고 그리 해보라고 은근히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걸으니 편안해지더라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 못했다. 내 말대로 해보겠다 마음먹었던 절친 형님도 결국 포기하고 수술을 받았다. 내 경우가 별나고 특이했던 것인지  다른 사람들이 통증을 잘 이겨내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좌우튼 나는 그리 해서 나았고 지금까지 재발 없이 잘 살고 있다. 

 

'먹고 놀고..'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롱이 되어버린 환자를 아시오?  (0) 2022.08.31
문수사 단풍놀이  (0) 2018.11.04
태풍의 선물  (3) 2018.08.24
  (3) 2018.07.16
4월의 꽃샘추위  (1) 2018.04.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