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로 연수를 가자니 쿠바에 대해 아는 게 너무나 없었다.  

오래전 건성으로 읽었던 쿠바 혁명사는 머릿속에서 지워진 지 오래고 피델 카스트로, 체 게바라 말고는 아는 사람이 없었다. 

쿠바에 대한 새로운 탐구가 필요했고, 이 과정에서  '호세 마르티'를 알았다. 

쿠바의 독립영웅으로 추앙받는 그는 1895~1898년에 이르는 2차 독립전쟁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지만 전쟁 개시 한 달여 만에 스페인군의 흉탄에 희생(5월 19일)되었다. 

때는 1894년 농민전쟁(동학농민혁명)을 전개한 전봉준 장군이 처형(4월 24일)된 시기와 겹친다.

나는 그의 죽음과 생몰연대에 주목했다. 그는 전봉준 장군과 동시대를 살았다.  

전봉준 장군보다 2년 빠른 1853년 태어났고 같은 해에 생을 마쳤다. 

평생을 혁명에 바쳤고 침략자에 의해 죽임을 당함으로써 역사가 되었다. 

지구 반대편, 쿠바와 조선이라는 각기 다른 땅에서 살았지만 같은 시기 제국주의 식민통치와 침략에 맞선 반제투쟁에 몸을 바치신 분들이다. 

나는 호세 마르티를 '쿠바의 전봉준'이라 부르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연수 과정에서 만난 쿠바 사람들한테는 '조선의 호세 마르티'라고 전봉준 장군을 소개했다. 

 

 

쿠바 사람들에게 전할 연수단 선물로 '녹두장군'(박홍규 작) 판화를 준비했다. 

"이 분은 한국의 호세 마르티, 이 분이 있어 우리가 있다"는 요지로 선물의 의미를 설명하면 쿠바 사람들은 눈을 빛내며 판화 속 녹두장군을 주의 깊게 들여다보곤 했다. 

그리고 귀중한 선물에 대한 감사 표시와 잘 건사하겠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체 게바라 기념관 부관장(두 번째 가는 책임자라 했으니..)에게 '녹두장군'을 선물하며 판화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 

 

 

선물 장을 보러 갔다가 호세 마르티를 새긴 판화를 발견하고 바로 구입했다. 

도장 찍듯 꽉 눌러 찍었다. 언제 날 잡아서 홍규형한테 선 보여야겠다. 

  

 

벌판 같은 이마, 시대를 꿰뚫는 형형한 눈빛이 서로 빼닮았다. 

 

호세 마르티 사후 3년, 쿠바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다. 

하지만 쿠바인들의 지난한 독립투쟁을 가로챈 미국이 전승국으로 되어 군정을 실시한다. 

쿠바 독립군은 미군과 연합하여 스페인군과 싸웠으나, 미국의 지배 야욕(미국은 쿠바를 합병하려 했다)에 맞서 다시 미국과 싸워야 했다. 

쿠바의 저항이 거세지자 미국은 3년 군정에 이어 새로운 지배전략을 내놓는데 1903년 미국의 강압으로 조인된 이른바 ‘플랫 수정안’이 그것이다.  

이에 따르면 미국은 어느 때라도 쿠바에 군사적으로 개입할 수 있으며, 쿠바는 미국에 협력해야 한다. 

(이슬람 포로에 대한 잔혹행위가 자행되던 관타나모 기지는 지금까지 존속하는 그 시대의 유물이다) 

이후에도 미국은 쿠바에 친미 독재정권을 세워 쿠바에 대한 실질적 지배를 이어갔다.
오늘날 우리의 현대사와 무엇이 다른가? 

 

호세 마르티의 생애와 사상은 후세대 혁명가들, 특히 피델 카스트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1953년 몬카다 병영 습격은 호세 마르티 탄생 100주년에 즈음한 거사였으며, 1956년 그란마호 상륙작전은 1895년 호세 마르티의 관타나모(마리시 곶) 상륙에서 영감을 얻은 것이다. 

산악과 농촌을 거점으로 도시를 공략해 들어가는 게릴라 전술 또한 호세 마르티로부터 비롯된 것이라 한다. 

호세 마르티가 이루지 못한 식민 지배로부터의 해방, 자주독립의 비원은 1959년 혁명을 통해 성취되었다.  

그리고 오늘날 쿠바는  60여 년에 걸친 미국의 고립압살 책동에 맞서 숱한 난관과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당당한 자주독립국가의 길을 드팀없이 걷고 있다. 
59년 혁명 이후 쿠바는 우리(한반도 남녘)와 완전히 달라졌다. 

 

전봉준의 후예들이 살아가는 오늘날 우리의 자리를 돌아본다. 

1960년 4월, 1980년 5월, 1987년 6월, 지난겨울의 촛불 혁명..

'척양척왜' '보국안민' '제폭구민'.. 숱한 투쟁과 항쟁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루지 못한 전봉준 장군의 비원을 생각한다. 

정녕 우리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정녕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쿠바연수1] 쿠바는 굴하지 않는다.

얼마 전 쿠바에 다녀왔다. 그새 보름을 넘어 한달이 되어간다. 누가 말해줬다. "가슴 속에 느낌이 살아 있을 때 메모라도 해놓게. 기억력은 시간 따라 바래고 기억은 편집되는 거라네." 이 말씀을

nongmin.tistory.com

 

 

 

'먹고 놀고.. > 여행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몽골 풍경  (0) 2019.08.08
여우가 온다.  (0) 2019.07.30
[쿠바연수3] 치졸한 미국  (0) 2017.12.29
[쿠바연수1] 쿠바는 굴하지 않는다.  (0) 2017.12.21
야성의 섬 울릉도에 가다.  (5) 2010.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