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직불금 부정수령자 명단이 비로소 공개되었다.
명단에 포함된 각계 고위층, 고소득자들에 대해 언론이 앞다투어 보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아직 직불금 부당수령 의심자일 뿐이다.
실경작 여부를 확인하는 현장실사 과정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에서 명단 공개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농촌 현장에서는 이미 쌀 직불금을 받았거나 신청했다고 자진 신고한 공직자 명단에 대한 현장실사가 진행되었다. 
현장실사는 읍면동 단위로 구성한 '실경작확인 심사위원회'에 의해 진행되고 여기에 이장, 농민단체 대표 등이 참여하고 있다. 행안부 장관은 수도권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공무원이 적법하게 직불금을 수령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현장실사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농민대회 준비가 한창이던 23일이었다.
도연맹에서 함께 일하는 순창 회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자진신고자에 대한 실사가 진행 중인데 이게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실사단에 참여하고 있는 농민회원들조차 농촌사회 내부에 실타래같이 엮인 '이웃사촌'이라는 그물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또한 직불금 수령자는 이미 타지인이 되었을지라도 그 친인척과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고, 소작권 유지를 바라는 실경작자의 입장을 외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직불금 부당수령자들은 그런 관계를 파고들어 읍소하기도 하고 은근한 압박을 가해오기도 한다. 
정당한 자기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하고 이를 공론화한  사람이 오히려 '똘놈'이 되어 입장 곤란해지고 난처해지는 그런 경우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농민회 회원조차 이 문제로 인해 고심하고 있다면 문제는 간단치 않다고 생각되었다.
농민회 회원들이라면 가장 원칙적이고 비타협적인 사람들로 농촌 사회에서 인식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 우리는 지금 '지역사회'라는 이름의 농촌공동체의 덫에 걸린 것이다.
행안부 장관의 자신감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 짐작되고도 남음이 있다.

일을 어디서부터 바로잡아야 할까?
농촌현장의 동향에 둔감했던 우리 농민회 각급 조직의 문제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직불금 부당수령자들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고 목청은 높이면서도 정작 발밑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제때에 대처하지 못한 것은 큰 실책이 아닐 수 없다. 반성하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직불금 부당수령자들을 현장에서 확인하고 최종적으로 적발해낼 주체는 농민회를 비롯한 현장 농민조직의 성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이미 제기되어 왔던 터이다. 
전농은 이 문제에 대해 일찍이 조직 방침을 정하고 읍면단위 일선 활동가들에게 원칙적이고 공명정대한 잣대로 현장 실사에 적극 참여할 것을 독려하면서 조직 내의 관심을 환기시켰어야 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직불금 문제의 몸통은 이제야 드러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해당 지역의 지역민들과 언론 및 시민사회단체가 함께 검증 작업에 나서야 한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미 직불금 문제가 터진 지 2달이라는 기간 동안 부재지주와 소작농 혹은 마을 이장 사이의 말 맞추기는 끝나고도 남은 시점이기에 지역사회 전체가 검증에 함께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 되었건 현장실사의 핵심 열쇠는 우리 농민들이 쥐고 있다.
이제 우리 농민들이 입을 열어 질곡을 깨고 진실을 밝혀야 할 때이다.
이 시각 우리가 주저한다면 직불금 문제는 찻잔 속 폭풍이 되어 조용히 사그라지고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