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격히 날이 풀어지고 눈이 마구 녹아내린다. 

오는 봄을 어찌 막을쏘냐. 

하지만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한파의 위력은 어마 무시했다. 

얼어붙은 저수지, 눈 덮인 들판은 월동 중인 가창오리들에게는 꽤 큰 시련이었을 것이다. 

지금 동림 저수지에는 가창오리들이 없다. 

아마도 해남 방면으로 더 내려갔겠지..

그런데 눈 덮인 논바닥에 내려앉아 먹이활동 중인 가창오리 한 무리를 보았다. 

신림 들판 차들이 쌩쌩 달리는 도로변 농사가 잘 되지 않아 수확을 포기한 채 방치된 논이었다. 

 

 

누가 보건 말건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우기에 여념이 없다. 

가창오리는 본래 밤에 먹이 할 동을 한다. 

지금 이 시각이면 드넓은 호반에 모여 앉아 한가로이 휴식을 취할 때이다. 

하지만 강추위와 폭설이 불러온 위기상황에서 녀석들은 대규모 군집생활과 야행의 습성을 유보했다. 

소규모 부대로 산개하여 대낮에 먹이를 찾아 생존을 위한 투쟁에 나섰겠지.. 

눈더미를 헤쳐 실한 나락 모가지를 건져 올리는 장면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횡재한 녀석들이다. 

 

 

녀석들의 위기가 나에게는 행운이 되었다. 

가까이에서 녀석들을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오묘한 태극문양으로 치장한 수컷에 비해 암컷은 그저 수수한 오리 얼굴일 따름이다. 

뺨의 태극문양으로 하여 북에서는 태극오리라 부른다더라. 

 

 

암수 서로 정다운 장면이 아니다. 

"나의 먹이활동을 방해하지 말라"며 수컷이 암컷을 쫓는 상황..

사진은 현장의 진실을 다 말해주지 않는다.

 

 

배고픈 녀석들..

 

 

게 뭐 없나? 나락 목아지 계슈?

 

 

날아라 가창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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