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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탄다는 건 무얼까? 먹는걸까 입는걸까..
이러던 내가 이번 가을은 웬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
"타는 김에 화끈하게 타고 돌아오자."
그 마음으로 나선 길, 호남정맥으로 간다. 
재작년 이맘때 발을 떼놓고 한번도 가지 못했다. 
같은 전북이지만 무진장은 심리적으로도 실제로도 무진장 멀다. 
고창 쪽으로 좀 당겨놔야 틈 날 때마다 정맥길을 축낼 수 있겠다 싶었다. 

밀목재 혹은 밀목치, 장수 IC로 나와 장수읍 뒤쪽으로 돌아 오른다.
고갯마루 못미쳐 무령고개에서 이어온 정맥길 출구에 차를 세우고 고개를 넘는다.

동화댐 수몰민들이 산다는 신덕산 마을을 지나 다다른 산길 초입.
페러글라이딩 활공장을 지나 사두봉 거쳐 수분령까지, 그리고 신무산을 타 넘어 자고개까지 갈 계획을 세웠다. 
그란디.. 벌써 한시 반, 좀 늦었다. 
과연 계획대로 목적지에 가 닿을 수 있겠는지..
좌우튼 나는 산서 사는 갑장한테 단단히 부탁하고 길을 나섰다. 
"꼭 태우러 오라고.. 전화 안받으면 X 돼야부니까.."

활공장, 시야가 툭 터진다.
가을 하면 역시나 구절초, 구절초 없는 가을은 쓸쓸하다.
구절초 때문에 쓸쓸한가?
아니 쓸쓸한건 필시 슬피 우는 으악새와 구르는 낙엽 때문인 게다.  

장수읍 뒷편 노곡리를 둥그렇게 에워싼 산줄기, 그 너머로 장수덕유와 남덕유가 보이고..

지리산 천왕봉을 살째기 엿본다. 

낙엽 뒹구는 스산한 능선길, 눈발이 날린다 해도 어색하지 않겠다. 

도토리만한 쥐밤들이 곳곳에 수북하다.
도토리나 쥐밤이나 도토리 키재기.
먹을 것 잘 안챙기는 탓에 늘 배고픈 산길에서 좋은 요깃거리가 되었다. 
까먹고 또 까먹으니 배가 든든해지더라.

사두봉(1014.8m),
산줄기가 뱀머리같고 능선길이 굽이굽이 뱀이 전진하며 올라가는 모양이라서 사두봉이라네. 
조망은 전혀 터지지 않는다. 

돌탑을 쌓는 마음 알 길 없어라. 

내내 조망이 터지지 않던 산길, 수분재 가까운 벌목 지대에서야 조망이 터지고 지리 주릉이 시선을 압도한다. 
여기서 보는 지리산은 만복대가 두드러지고 반야봉은 잘 보이지 않는다. 
예서 보나 제서 보나 지리산은 늘 가장 멀리에 버티고 있더라. 

걸어온 길을 돌아본다.
저 멀리 사두봉, 꽤 걸었군..

자주쓴풀

당재, 이제 곧 수분재

수분재로 내려서는 산길에서 나는 한바탕 길을 헤매였다.
그저 이정표대로 시맨트길을 따라 내려갔으면 탈이 없었겠는데 약간의 이정표 오독도 있었고 이 근방 지형이 복잡했다.
거미줄 늘어붙는 거미줄같은 산길에서 20여분 헤매인 끝에 다시 길을 잡고 보니 거의 제자리..
사진에 보이는 노란 기둥이 수분령 휴게소 표지판이다. 
뒤에 보이는 게 신무산.

밀목재와 밀복치가 혼용되더니 수분재는 수분령과 혼용된다. 
그나 벌써 다섯시 반, 여기서 멈출 것인가 신무산을 타 넘을 것인가?
십리가 채 되지 않는 산길.. 까짓것 가보자고..
여기는 무진장 먼 곳이 아닌가? 나선 김에 최대한 땡겨야지..

마침 산서 친구한테서 전화가 온다. 
상가집이 생겨서 나를 계남 친구한테 인계했다 한다. 
7시 반경 자고개에서 보기로 계남 친구와 통화하고, 산길에 깃드는 약간의 어둠을 뿌리치고 길을 나선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완전히 어둡기 전에 신무산 정상에 가 닿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 있었다. 

지나온 길을 더듬는다. 
과연 사두봉, 이름 잘 붙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 너머 장안산, 맨 뒤에 있는 산은 백두대간 백운산.

산 속 깊이 파고 든 사과농장과 창고를 옆에 두고 깎아지른 절개지와 가시덤불 우거진 벌목 구간을 헤쳐올라 뒤를 돌아본다.
산길이 좋지 않다. 
어둠이 깃드는 산, 저 멀리 지리주릉..
나는 여기서 얼마 가지 못하고 가시덤불 속에서 30여분을 허우적거리다 간신히 탈출하여 산을 내려가야 했다. 

본격적으로 어둠이 내리자 나는 머리전등을 찾았다. 
그란디.. 없다. 아뿔싸, 배낭 옆구리에 낑겨오던 옷이 사라졌다. 전등은 거기에 넣뒀는데..
그래 가시덤불에 걸려 빠진 모양이다. 
오던 길을 되짚어 옷을 찾아 내려가다 나는 그만 거시덤불에 갇히고 말았다. 
날은 완전히 어두워지고 길은 왼편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 몸은 자꾸 길에서 멀어져 간다. 
결정적으로 방향을 왼편으로 틀었다가도 가시덤불에 막혀 길을 찾다보면 다시 제자리..
사나운 가시는 사방에서 달려들어 발목을 휘어잡고 팔뚝을 할퀴고 누구 말만따나 염병도 못허겄다. 
이제는 치고 내려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과수원 철책이 나오건 임도가 나오건 어차피 지척에 있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과수원 반대편 임도로 탈출했다. 
발 아래 외딴집과 마을이 보인다. 
7시가 다 되어간다.
주소를 검색해 계남 친구한테 보내고 허탈한 걸음으로 터덜터덜..

다시 돌아온 밀목재, 차 문을 열자니 쇳대가 없다. 
아 이런.. 잃어버린 옷 속에 있다. 
혹시 빠질까 싶어 주머니에 넣고 착실히 쟈크까지 여미어 두었는데 옷을 통으로 잃어버렸으니 에~에..
보험사에 연락하니 이번이 마지막이란다. 
다섯번 출동에 세번이 문따기..
건망증이 발전하면 치매가 되는 것이 아닐까 불현듯 무섬증이 밀려온다. 
어둔 산길에서도 오지 않던 무섬증이.. ㅋㅋ

결국 나는 고창에 돌아가지 못했다. 
옷을 찾아야 한다. 그 옷 속에 많은 것들이 들어 있지 않은가. 
오늘은 여기까지..

금남호남정맥 밀목재-수분재.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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