옅은 안개, 하늘엔 구름. 
어제 내린 비까지 생각하면 쉽게 이슬이 걷히들 않겄다. 
메밀 타작, 콩 타작이 걸리지만 어차피 기계는 오후나 돼야 오겠고..
실로 오랜만에 망원렌즈 장착하고 길을 잡아 나선다. 
저수지 아래 들판 둘러보고 후포 지나 갈곡천 하구 주변 들판까지 훑어볼 요량이다. 

저수지를 들여다보니 다수의 기러기떼, 소수의 큰고니 그린 듯 앉아 있다. 
백여 마리도 채 안돼 보이는 가창오리들만이 어지러이 날고 있다.  
올해는 조류독감 소식이 없어 다행이다. 탈 없이 넘어가길..

후포 지나 갈곡천 하구 배수 갑문을 지난다.  
썰물의 정점. 갯벌에 물이 전혀 없다. 
갈곡천을 빠져나온 물이 갯고랑창으로 쫄래쫄래 흘러든다.  
수앙리 들판, 얼핏 황새가 스쳐 지난다.  

 

차를 멈춘다. 후진..
도합 다섯 마리, 한 마리를 제외하고는 죄다 가락지를 차고 있다. 
사람의 손길을 탄 녀석들, 그래서일까? 유유자적.. 황새 특유의 까칠함이 없다. 

곰소만 줄포 앞 갯벌에는 매년 황새들이 찾아와 겨울을 난다. 
이 녀석들을 가까이에서 보자면 만조 시간에 맞춰야 한다 생각했다. 
그런데 물이 완전히 빠져 드넓을 갯벌이 드러난 이 시각에 이처럼 들판에 머무르고 있다니..

그 옛날 텃새로 흔했다는 황새, 
텃새로 살던 마지막 황새 부부의 슬픈 사연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 그로부터 50여 년..
이제는 가락지 부착한 겨울 철새로 황새를 본다. 
중학교 때던가.. 동림 저수지에 황새가 한 마리 왔다. 
면장이 테레비에 나와 "방장산 맑은 물.." 어쩌고 하며 인터뷰하던 장면이 기억에 또렷하다.  
그러고 얼마 후 황새가 변사체로 발견되고 면장은 목이 달아났다. 
그런데 이 기억을 실증할 수가 없다. 편집된 것인지, 왜곡된 것인지..
언제 날 잡아 제대로 검증해봐야겠다. 
좌우튼 나는 황새만 보면 그 양반이 생각난다. 
얼굴도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방장산 맑은 물.."은 생생하다. 

 

마을 뒤편 대숲 너머 큰 나무에 둥지 틀고 마을 앞 들판을 오가며 새끼를 키우는 황새 부부를 우리는 다시 볼 수 있을까? 
그런 날이 올까? 그런 날이 온다면.. 온 마을 골목을 휘저으며 뛰노는 어린아이들의 쾌활한 웃음소리도 다시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은 정녕 헛된 꿈일까?
아련하고 애닯다. 

황새야 말해보라..
말이 안 나오거든 부리라도 딱딱 부딪쳐보라.
그러니 희망을 버리지 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