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이 바뀔 때면 사람이라는게 뭔가 야릇해지는 모양이라..
왠지 쓸쓸해져 보고도 싶고, 그 기운에 취해 옛 생각도 해보고 싶고..
하여 궁리한다. 어디로 튈 것인가..
세월 속에 무너져 가는 성벽,  속절없이 뒹구는 낙엽, 때맞춰 까마귀떼라도 날아준다 헐 양이면.. 
그래 산성으로 가자, 그리 마음 먹고 주위를 둘러본다. 
입암산성, 우금산성, 고산성, 두승산성.. 산성 많다.
미답지 금성산성으로 간다. 

이 길을 지나면서 깨달았다. 음.. 사진기를 두고 왔구나.
전화기 뒀다 국 끼래묵을 것도 아닝게.. 아쉬움을 달랜다. 
산성 주차장에서는 돈을 받더라. 

보국문(補國門), 금성산성 외성 남문에 해당한다.
보국문은 이 곳에서 항전을 벌였던 동학 농민군을 기려 붙인 이름(1994년 산성 복원사업)이라 한다.  
오르는 길에서 본 '동학농민혁명군 전적지' 표지석에 <<이 곳 금성산성 전투를 지휘하던 전봉준 장군이 식량보급차 옛 전우 피노리 김경천을 찾았다가 밀고로 체포되었다. 광주, 담양, 장성, 순창 지방 농민군 1천여명은 전봉준 장군의 뒤를 따라 20여일에 걸쳐 피비린 항전(1894.12.2~20일)을 벌였다. 이 때 산성 내의 모든 시설이 전소되었다.>>는 요지의 글이 새겨져 있더라. 

담양군과 담양 향토문화 연구회에서 세운 것인데.. 곰곰이 생각해본다.

우금티전투 이후 전봉준 장군의 마지막 행적을 보면 태인에서의 마지막 전투(11월 27일) 이후 28일 입암 대흥리, 29일 입암산성, 30일 백양사에서 각각 하루를 묵고 12월 2일 피노리에서 피체되었다. 
추격하는 관군을 피해 백양사에서 담양 방면으로 급히 떠났다는 사실만이 전할 뿐 12월 1일의 행적은 묘연하다. 
전봉준 장군이 금성산성 전투를 지휘했다는 것, 식량보급차 피노리를 찾았다는 것은 담양 지방 민간에 전승되는 전설같은 이야기일 것이다.
역사상 드러난 어떤 기록에 근거한 것인지 알 수 없으니 하는 말이다. 
전봉준 장군은 후일 신문 과정에서 당시의 잠행을 "한양으로 향하는 길이었다"고 답한다.
정세의 추이를 판단하고 재기를 도모하기 위함이었다.
하면 이렇게 추측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 
12월 1일 전봉준 장군 일행은 금성산성에서 하루를 머무르며 농민군 지휘부와 비밀리에 접촉했다. 
그리고 이런 다짐을 남기고 다시 길을 나섰다. 
"나는 한양으로 가오. 내 반드시 돌아올 것이니 기다려 주시오. 동지들 다시 만납시다."
허나 전봉준 장군은 피노리에서 피체되고 이 소식을 접한 산성의 농민군들은 피의 항전으로 생의 마지막을 장렬히 마감했다. 

자칫 오해할 수 있는데 위에 열거한 날짜들은 모두 음력이다. 
양력으로 바꾸면 전봉준 장군이 입암산성에 스며든 날이 12월 25일이다. 
북풍한설 몰아치는 엄동설한이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해 겨울 눈도 많았다는데..
정읍, 순창, 담양 일대는 남하하는 호남정맥이 용트림하는 구간이라 산줄기가 매우 복잡하고 치열하다. 
입암산성, 백양산, 금성산성, 피노리 모두 호남정맥상에 위치해 있거나 지척에 있다. 
산줄기의 흐름을 놓고 봐도 백양사를 나선 장군 일행이 금성산성에서 하루를 묵었을 가능성은 적지 않다.
괘념치 마시라, 그저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을 뿐이니..

빛 바랜 쑥부쟁이

충용문, 내성 남문에 해당한다. 

 

노적봉에서 바라본 보국문

철마봉, 저 건너 추월산

 

담양호

 

외성 서문

 

저기 저 멀리 여분산과 회문산, 저 산줄기 너머에 피노리가 있다. 

외성 북문

 

험준한 산줄기에 쌓아올린 성곽을 보며 옛 선인들의 노고와 피땀을 생각한다.

때깔 짱짱한 쑥부쟁이

운대봉

금성산성은 예로부터 구국항전의 근거지가 되었다. 
임진왜란으로부터 동학농민혁명, 정미의병으로 대대로 항일의 격적지가 되었고 한국전쟁 시기 빨찌산들의 항미 투쟁으로 이어졌다. 
항전의 와중에 성 내 시설은 대부분 파괴되고 전소되었는데 이는 모두가 근거지를 없애기 위한 토벌대의 행위였다.  

저 멀리 회문산

강천산 계곡

시루봉

병풍산, 불태산에 황혼빛이 내린다.

잠자리를 찾는가? 까마귀떼 우짖는다.

외성 동문

시루봉에서 지는 해를 맞는다. 

 

내성 동문

금성산성 한바꾸, 보국문을 나선다.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산길, 척양척왜, 보국안민의 기치 높이 생을 불태운 농민 혁명군을 생각한다. 
오늘 하루 쓸쓸하고 싶었는데.. 노래가 나온다. 흥얼 흥얼..
"내 그대~를 처음 만나던 밤 그 밤과 같이 별은 반짝이고 .... 그대 찬란한 미래를 위하~여 승리하고 돌아오라"

언제부턴가 산에서 맞는 어둠에 익숙해졌다. 
어둠이 드리우는 적막감이 좋다. 
뭔가 튀어나올 듯한 적당한 긴장감.. 
어릴 적 이불 속, 어머니의 옛날 이야기, 길 잃은 나그네 앞에 불쑥 나타나는 고래등같은 기와집을 기대하는지도 모르겠다.
그 기와집에는 항시 어여쁜 아씨가 살고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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