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보이지 않던 가창오리들이 저수지에 그득하다.
오후 3시가 지나면서 서쪽 하늘이 발개지는 것이 노을도 좋을 듯하다.
저녁노을과 함께 가창오리의 군무를 볼 수 있으리란 기대를 안고 저수지에 나가보았다.
10만 군중은 모여있는 듯한 소음에 귀가 먹먹할 지경이다.
이동을 앞두고 대열을 정비하는걸까? 여기저시서 날아오르며 한데로 모여드는 듯 하다.
연한 노을에 비낀 새들의 날개짓이 아름답기 그지 없다.


노을이 짙어지기 시작할 무렵 코도배기로 이동하였다.
군중들의 웅성거림같은 소음만 들려올 뿐 오리떼는 고요히 물 위에 떠 있다.
이쯤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나야 할터인데 별로 그러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해는 이미 떨어지고 얼마나 지났을까?
오늘은 여기서 그냥 자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동도 하지 않던 녀석들이 천지를 뒤흔드는듯한 굉음과 함께 일시에 날아올라 대오를 짓고 순식간에 소나무밭 너머로 사라지기 시작한다.
마치 거대한 마의 기운이 어딘가를 엄습하는 듯한 장관을 이룬다.


상당수가 소나무밭 너머로 사라지고 나머지 오리떼가 다시 대오를 형성한다.
방향을 틀어 저수지 상공을 얼마간 맴돌더니 약간 다른 방향으로 사라지고 삽시간에 정적이 깃든다.
상황 종료.
아! 이 거대한 군무와 행동의 일치성 신속성은 어떻게 보장되는 걸까?
지도자가 따로 있어 지휘를 하는 것인지 그저 본능의 발로인지 매우 궁금해진다. 


돌어오는 길에 나하고 좀 떨어진데서 사진을 찍던 분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8년째 가창오리만 쫒고 다니신다 한다.
해가 떨어지고도 한참 지나서야 날아오른걸로 봐서 멀지 않은 곳에서 밤을 보낼거라 한다.
밤을 지샐 들판의 규모가 어떠한가에 따라 전체가 한덩어리로 날아가기도 하고 일부 대오를 나누어 다른 곳으로 날아가기도 한다고 한다.
규모가 큰 들판으로는 이삼일 연속 날아가기도 하고 매일 시계방향으로 조금씩 이동해간다는 것이다. 
오늘은 분명 우리쪽으로 날아올거라 예상했는데 이놈들이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버렸다고 실망스러워하신다. 
오리떼의 동향을 알려달라며 명함을 내민다. 
올 겨울 오리떼의 동향을 감시하는 정보과 노릇을 해야 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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