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간다. 하지만 제주에서 어디로 갈 것인지는 정하지 못했다.

이른 아침 영실에 데려다 달라 했다. 어디로 넘어갈 것인지는 올라가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내심 돈내코 방향을 생각하고 있었다. 

어젯밤 꿈 속에서는 하늘다람쥐가 날아다녔다. 

상쾌한 출발, 조짐이 좋다. 



영실 오름길 솔 숲은 참으로 좋다. 

곧게 뻗은 소나무의 기상이 하늘을 찌른다. 

손톱만치나 남아 있던 술기운이 개운하게 가신다. 



그런데 그만 못 볼 것을 보고 말았다. 

개울 건너 샛길이 보였다. 

붉은 표지기의 치명적인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오름나그네](김종철 선생의 저서)에 따르면 영실 오름길 도중에 이스렁오름으로 가는 길이 있다 했다. 
틀림없이 그 길일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돌아와 책을 뒤지니 "영실 등산로 접어들어 처음 만나는 맑은 물이 흐르는 게곡에서 등산로와 헤어져 서쪽으로"라고 쓰여 있다. 

약간의 망설임 끝에 순식간에 밀림에 안겼다. 

조밀하게 자란 조릿대와 꽝꽝나무가 바닥을 뒤덮고 있어 길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붉은 표지기가 인도하는 방향으로 한땀 한땀 수를 놓듯 발을 내딛는다. 



갑자기 시야가 터진다. 이스렁오름과 볼레오름 사이의 어스렁오름 자락이다.



정규 등산로를 타고 윗세오름으로 오르는 등산객들의 말소리가 아주 가깝게 들려온다.



조선 사람들 좌우튼 돌탑 좋아한다. 

그러나 나는 도무지 모르겠더라. 돌탑을 쌓는 그 마음..



이스렁오름과 멀어지지만 오늘은 무조건 표지기를 따르기로 작정했다.  



이스렁오름과는 영영 멀어지는 듯.. 

하지만 이제는 도리가 없다. 

이스렁으로 가려거든 지나온 개활지에서 그짝 방향으로 길을 잡았어야 했다. 

아무튼 나는 오늘 쳇망오름까지 갈거다. 



아~ 이 물맛 잊을 수 없다. 



거친 길을 헤쳐왔다. 

다시 시야가 트이고 볼레오름이 건너다보인다.



이렇게 깊은 곳에 무덤이 있다니 놀랍다. 

이스렁오름을 바라보고 있다. 

묘지는 잘 관리되고 있었다. 

표지기가 사라졌다. 사방팔방 아무리 둘러봐도 없다. 

묘지를 잃지 않으려는 후손들의 표지기였던 모양이다. 

더 이상 길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는다. 

음.. 대략 난감이로군.. 

위성 사진을 들여다보며 고민을 거듭한 끝에 쳇망오름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이스렁오름으로 간다 한들 길이 나타날리 없다.

쳇망오름 방향으로 길게 형성된 개활지에 최대한 빨리 가닿는 것이 관건이라 판단했다.     



이스렁오름, 다음에 다시 보더라고..



북사면에는 눈이 있다.

그래봐야 잔설..



위성지도를 살펴가며 길을 잡아나간다. 

이제는 뭐 내가 가는 길이 길이다. 

다행히 가시덤불 우거진 잡목 숲이 아니다. 



한땀 한땀 걷다 보니 개활지가 나왔다. 

개활지는 온통 키 작은 조릿대로 덮혀 있다.  

개활지의 조릿대는 신발등을 살짝 덮거나 종아리를 넘지 못할 정도로 키가 작지만 지표면을 완전히 점령했다. 

이스렁오름이 상당히 멀어졌다. 



왼쪽부터 노로오름, 노꼬메오름, 산세미오름




조릿대가 온 천지를 뒤덮고 있다. 

철쭉이며 시로미 군락지를 조릿대가 잠식해간다. 



바위에 의지한 시로미 군락이 위태롭다. 



흙 색깔 좋다.



한라산 화구벽이 손톱만큼만 보인다.



볼레오름, 이스렁오름



드디어 쳇망오름이 보인다. 

쳇바퀴같아 쳇망이라 한다 했다. 



쳇망오름 뒤로 어승생오름이 보이고..



그 뒤로는 제주시 시가지가 보인다.



어째야 옳아 이 조릿대를..

식생이 조릿대로 일색화되고 있다. 





저 멀리 1100도로 휴게소, 삼형제오름, 살핀오름, 붉은오름..

그 뒤로 노로오름, 노꼬메오름, 산세미오름..



김밥 두줄 먹고, 한라봉 하나 까먹고..



윗세오름 너머 화구 북서벽, 새가 없어 산을 당겼다. 



이제 내려가야 할 시간, 어디로 가야 할까..

망망한 바다 위 쪽배 탄 기분, 어디로 내려갈 것인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인터넷을 뒤진다. 검색에서 건진 사진 하나,



음.. 이렇게 내려간단 말이지..

비슷하게 내려왔군.. 

아랫부분에서 틀어진 것은 작은 실개천 차이라고나 할까..

길은 뭐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러니 일정하게 방향만 견지하면서 발 딛기 좋은 곳으로 한땀 한땀..



내러오는 길, 새 한마리 나를 스쳐 날아 앞쪽 나무가지에 앉았다. 

엥 소쩍새? 아니지 소쩍새가 있을 시기는 아니고 큰소쩍새다. 

대처 귀깃도 크고 몸집도 더 크다.

서로 노려보며 렌즈를 갈아끼운다. 더디다 더뎌..

조준하는 순간 보이지 않는다. 아.. 어딨지..
다시 찾았으나 조준하는 순간 또 보이지 않는다. 

아.. 녹이 슬었다. 천하의 조복도 실력이 받쳐주지 않으니 별 수 없구나.

간밤 꿈 속에 날아다닌 하늘다람쥐가 큰소쩍새로 나타났으나 놓치고 말았다. 

하릴없이 나무 위 겨우살이를 잡아당겨 보지만 허탈하기 짝이 없다.  



다 왔다. 1100도로가 보인다. 

대략 7.5km 거리를 6시간 반 동안 걸었다. 

시종일관 조릿대와의 싸움, 산길은 의외로 순탄했다. 

얼결에 다녀온 쳇망오름. 불법에 의지한 것이니 너무 책망 마시라. 

그보다는 조릿대에 대한 대책이 시급해 보였다. 

말을 방목한다느니 여러 대책을 세우는 듯 하더니 어찌되었는지 알 길이 없다. 

원희룡 지사는 제2공항, 영리병원 작파하고 조릿대 대책이나 세워라. 


도로를 따라 얼마간 내려가니 어리목 삼거리, 그 곳에 버스 정류장이 있더라. 

제주시로 내려가 모닝 한대 빌려타고 가시리로 간다. 



가시리 가는 길, 한라산 너머로 해가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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