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이 제법 빡세게 살았다.

겨우내 제껴두었던 일 이제야 손에 잡은 것이니 자초한 어려움이다. 

그 일이 얼추 마무리되어간다.

거듭되는 술자리로 몸은 무거운데 가슴속 응어리는 활시위처럼 팽팽하다. 

 

때는 바야흐로 꽃 피고 새 우는 따스한 봄날, 백두대간이 나를 부른다. 

그래 씻고 와야지.. 가야겠다.. 길을 잡아 나선다. 

늦은 밤 홀로 기울인 막걸리 석잔에 출발이 늦어졌다. 

고속도로 타고 오르던 길, 화서IC에서 내린다. 

낯익은 지명들이 나타난다. 

 

 

길은 화령 지나 비재, 갈령으로.. 백두대간 속리산 구간을 왼짝에 두고 늘재로 이어진다. 

녹색으로 표시된 도로가 화령에서부터 이어진다 보면 무방하다. 

늘재에 차를 두고 청화산을 오르는 것이 이번 대간길의 들머리가 되겠다. 

 

늘재 성황당 안에 붙은 벽보

늘재에는 성황당이 있다.

그럴듯하게 개축해 놓았으나 전혀 관리받고 있지는 못한 듯, 문짝은 다 떨어지고 내부는 텅 비어 있다. 

그 안에 벽보 하나 붙어 있더라. 

청화산인 이중환의 택리지가 나오고, 십승지 우복동이 나오고..

이 근방 산줄기와 옛사람들 간에 얽힌 사연이 함축돼 있다. 

 

"속세에 지친 나그네 길손들이여

이 곳 성황당에 마음 비우고

구름처럼 바람처럼 대자유인이 되소서"

 

그게 맘대로 되나? 좌우튼 글쓴이의 그 마음 좋다. 

 

 

정오가 돼간다. 출발이 너무 늦었다. 

몸이 무겁다. 땀이 비 오듯 흐른다. 

꽃 피고 새 울고 나비 날아다니고 똥은 마렵고 발목을 잡는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봄날의 백두대간이 쉽지 않군.. 오늘 목표지점에 다다를 수 있을까? 

그나 우복동은 어디에 있다냐? 소 뱃속처럼 편안하다는데..

지나온 속리산 줄기가 손에 잡힐 듯하다. 

 

 

정국기원단, 이 시설물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정국'이 나라를 평안하게 한다는 의미를 지녔다 하나 일본어 '야스쿠니'와 같고 우리는 일반적으로 쓰지 않는 말이다. 

이밖에도 백의민족, 민족중흥, 삼파수, 중원지 등의 말을 잔뜩 쳐발라놨는데  이 자리에서 삼파수 운운하는 것도 터무니없거니와 백의민족, 민족중흥을 떠들면서 이 지점을 백두대간의 중심으로 보는 것도 황당하다. 

그래 백두대간이 지리산에서 설악산까지란 말인가?

무슨 사업가라는 사람이 세웠다 하는데 그 사람의 정신세계가 심히 의심스럽다. 

사진을 그럴듯하게 찍어놓아서 그렇지 커다란 향로 하며 시설물 또한 조잡하기 짝이 없다. 

철거돼야 마땅하다 본다. 

백두대간 보전 운운하며 툭 하면 길 막고 감시카메라 설치하면서 이런 사설 시설물은 아무렇지 않게 방치하는 산림청이나 국립공원 공단의 처사가 심히 잘못되었다. 

 

 

 

진달래 흐드러졌다. 

그러고 보니 어제가 4.19..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마다
그 날 쓰러져간
젊음같은 눈사태가
맺혔던 한이 터지듯
여울여울 붉었네

그렇듯 너희는 가고
욕처럼 남은 목숨
지친 가슴 위에
하늘이 무거운데
연연히 꿈도 설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뭘 봐요? 힝둥새 한 마리 퉁방울 눈을 하고 날 쳐다본다.

뭘 보고 있는게 누구냐? 나냐 너냐?

 

노랑제비꽃
양지꽃

 

그래 꽃은 기다리고 나비가 날아드는 것이다. 

 

멧팔랑나비

꽃에 앉아 있으니 이쁘다. 

 

산호랑나비

 

이 녀석은 갓 나왔나 보다. 참으로 깨끗하다. 

근데 너 말고 애호랑나비를 봐야 하는데..

애호랑나비와의 접선을 기대했으나 끝내 보지 못했다. 

애호랑나비야, 니 생과 내 생 언젠가 한 번은 교차하지 않겠느냐.. 

그 날을 고대하노라. 

 

 

몸이 무거운데다 산길이 이 지경이니 속도가 날 리 만무하다. 

오늘 버리미기재까지 가기는 틀렸다고 본다. 

 

 

청화산에 이르니 이미 오후 두 시가 되어간다. 

힘들게 올랐다. 이제야 몸이 산에 적응된다. 

속도를 좀 내볼까 싶다. 조항산에 이르는 구간은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는다. 

 

 

그새 이만치 왔네. 청화산이 저만치 멀어졌다. 

청화산에서 조항산 가는 길 중간쯤 되는갑다. 

속리산 주릉이 아스라하다. 

늦은 점심을 먹는다. 오늘도 먹을거리를 준비하지 못했다. 
목메는 누룽지에 에너지바로 배를 채운다.

 

 

조항산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조항산이 늘어뜨린 산자락 깊숙히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지나온 길을 더듬는다. 

산길은 늘 갈지짜..

 

 

 

보고 또 보고.. 이제 그만 되돌아보자. 

먼길을 왔다고 돌아보지 말라 했거늘..

 

 

 

조항산, 그 너머 가야 할 길..

 

 

고모치에 이르러 고민에 빠졌다. 

예서 내려갈 것인가? 계속 이어갈 것인가? 
6시 반, 해가 길어졌다 하나 곧 저물 것이고..

대야산 너머 버리미기재에 이르는 길은 험하다는 이유로 등반이 금지된 비탐구간,

한참을 망설이다 와약짝 괴산 삼송리 방면으로 하산..

4년 전만 같았어도 "에요 작것" 하고 가부렀을 것이다. 

작년 다르고 올 다르다는 말은 결코 남의 말이 아니다. 

늙었다. 늙어지면 소심 해지는 법, 예쁘게 포장해서 지혜로워진다고도 하는 모양이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이 날 나의 판단은 소심하긴 했지만 지혜로운 것이었다. 

내일 가보면 알제.. ㅎㅎㅎ

 

 

 

산마다 진달래요, 골마다 렬사비라, 붉은 마음 나래펴니 연변은 궐기한다.

연변의 조선족 시인이 노래한 '산마다 진달래',

우리는 언제나 우리 산하의 진달래에 스민 선열들의 붉은 넋을 위로하는 참다운 열사비를 세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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