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도를 읽는 동안 몹시도 제주도에 가보고 싶었다.

5월 3일, 못자리 낙종을 마치고 그 걸음으로 길을 나섰다. 

목포발 0시 30분 배를 예약해두고 2박 3일 일정을 짰다. 

하루쯤은 어디가 되었건 밖에서 잘 요량으로 야영 짐을 꾸려 짊어지니 등짝이 묵직하다. 

어린이날을 낀 황금연휴 탓에 타고 다닐 차량을 확보하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 

어떻게든 되겠지..

 

배에 손님이 가득하다. 

먼저 눕는 게 임자라고 비좁은 객실 바닥을 차지하고 일찌감치 다리를 뻗었다. 

비좁고 무덥고.. 꽤 고역이었다. 

제주항에 도착하니 아침이 환하게 밝았다. 

버스 편을 알아볼까 하다 마침 호객 중인 택시에 올라타고 관음사로 향한다. 

관음사에서 산천단까지 걷는 것으로 제주 유랑의 첫발을 내딛는다. 

산천단에서 관음사로 오를까 생각도 했으나 내리막길을 선택했다. 

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다녀야 하니..

 

 

4.3 항쟁 시기 관음사는 주로 무장대의 영역이자 주요 거점 중의 하나였다. 

주요 회의가 열리기도 하고 관음사 승려가 무장대에 직접 가담하기도 하는 등 이래저래 인연이 깊었다. 

그런 차에 49년 2월 토벌대가 관음사를 온통 불살라버리고 주둔소로 강점하게 된다. 

당시 토벌대가 남긴 흔적이 관음사 주위에 참호, 방어선 등의 형태로 남아 있다. 

누가 세운 안내판일까?  4.3 사태라니.. 

 

 
 

 

이 흔적들은 대부분 토벌대가 남긴 것이다. 
굵은 나무 등걸이 흘러가버린 세월을 말해준다. 

 

 

나한전이었던지..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관음사 부속건물 앞에 서니 제주 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산자락 끝의 커다란 건물은 아마도 제주대학교, 바로 그 인근에 산천단이 있다 보면 되겠다. 

4.3 당시 제주시내라 할 성내에서 산천단까지 14~5km, 산천단에서 관음사까지 대략 4km..

당시 산천단은 사람 사는 마을과 한라 산록을 가르는 경계이자 입구였을 터이다.

도시가 팽창한 것 말고는 지금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관음사가 왜 전략적 요충지였겠는지 짐작이 간다. 

이 일대에 얼마나 많은 무장대의 비트가 산재해 있었을까를 가늠하며, 성내에서 산천단을 거쳐 관음사에 이르는 길을 오갔을 연락원들의 거친 숨결과 내 호흡을 일치시켜본다. 

 

아미봉의 토벌대 참호

이 또한 토벌대가 남긴 것이다. 

 

 

숨을 죽이고 정면을 응시해 본다. 

컹컹거리는 노루, 무심하게 지저귀는 새소리만 들릴 뿐 아무 기척이 없다. 

나는 무엇을 기대한 걸까?

 

 

 

금새우란을 본다.

야생에서 처음 본다. 단아하고 신비롭더라. 

 

 

 

이번에는 흰눈썹황금새 한쌍을 본다. 

멋진 수컷, 수수한 암컷..

 

 

둥지를 틀려는 겐가. 나무에 패인 구멍을 부지런히 들락거린다. 

4월 중순에서 5월 중순 사이 통과하고 주로 중부 이북에서 번식한다는 데.. 모를 일이다. 

 

참꽃나무

진달래의 다른 이름인 참꽃과는 또 다른 꽃이다. 국내에서는 한라산에서만 자생한다. 

이쁘다. 

 

 

그저 절로 가지는 않는다. 

힘써서 걸어야 하는 길..

 

 
 

 

산천단 곰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있다. 

 

산천단 총알비석

산천단은 백록담에서 지내던 한라산 산신제를 장소를 옮겨 제를 올리던 곳이다. 

토벌대가 쏜 총알이 아직도 박혀 있다는데 총알을 확인하지 못했다. 

총알 맞은 자욱이 남아 있다는 것이 아니겠는지..

산천단에서 소설 화산도에 나오는 절벽과 동굴을 찾지 못했다. 

지금은 사라진 것인지 소설에만 나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서너 채의 농가와 조금 떨어진 곳에 몇 채가 서 있을 뿐인 작은 산촌마을'인 산천단 마을은 토벌대에 의해 불탔다. 

<<산천단-1948년 11월 19일 낮 12시 45분, 약 10명의 경비대원들이 가옥 4채를 방화했다(F-1). 오후 1시 미군은 L-5 비행기에서 그 마을에 경비대원들이 있는 것을 목격했다. 그때 마을은 불타고 있었다(A-2)>>

목격은 무슨 놈의 목격이란 말인가? 제놈들이 지휘, 감독한 일을 두고..

 

 

산천단 정류장에 가니 서귀포 시내로 넘어가는 버스가 있다. 

서귀포 사람과 접선하여 갈치 호박국에 한라산으로 갈증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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